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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Dec 18. 2022

크리스마스의 기억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특별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늘 그렇듯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그만큼의 크기가 될 텐데 말이다. 며칠 전 회사 직원들과 1년에 한 번 있는 송년회 겸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나름의 파티라고 우리는 의상 콘셉트를 정해서 시상을 하기로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 껏 내보려는 기획자의 의도라고 해야 할까.


의상 콘셉트는 "크레이지 크리스마스"였다. 말 그대로 의상을 늘 볼 수 있는 그런 산타 할아버지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만 한 그런 독특한 의상을 기대 했던 것이다. 어떤 직원들은 나름 자기만의 콘셉트를 보기 힘든 '하드코어'적 모습으로 참석한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내가 유치원 때의 일이다. 집 근처 교회에 친구따라 다니던 철부지 아이였을 때, 크리스마스는 교회만큼이나 그 의미를 되새기고 즐거움을 나누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행복감에 빠지고 싶던 아이였던 시절인데, 좋은 기억만 남아 있지가 않다.

유치부 선생님의 기대 속에서 우리는 교회 앞 무대에서 연극을 준비했다. 나름 주말의 시간을 전부 쪼개어 반납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한 작은 연극이 펼쳐지는 그날에, 나는 세상에 혼자 남아 있는 듯한 외로움도 쓸쓸함, 무엇보다도 자존감이 하늘로 증발해버리는 경험을 했다.


유치원복을 입고 가야 했던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나는 오랜만에 머리도 감고 치카치카를 하면서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반바지와 반팔밖에 없던 나는 그대로 그것을 입었는데, 스타킹도 신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양말 하나만 신었던 것이다. 추웠지만, 나는 유치원복이 그렇게 밖에 있지 않았으니, 유치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유치원복만 외투도 없이 챙겨 입고 나섰던 건데.


교회 선생님과 아이들의 연극을 기다리던 어른들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키득키득 비웃는 것이었을까. 사실 그때 당시 내가 느꼈던 게 오해였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웃음은 그저 낯선 옷을 입고 있는 나를 격려하기 위해 먼저 웃어 보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웃음들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는 것.


하얗게 터진 볼과, 하얗게 일어난 맨살이 드러난 무릎과 다리를 나는 부끄러운 줄 몰랐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나, 나는 그저 옷 입고 오라고 해서 그것 만 입고 나선 것뿐이니까. 그냥 어른들이 외투를 벗어 나에게 따뜻하게 덮어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때의 작은 아이가 추운 바람을 맞으며 반바지 유치원복을 입고 교회에 들어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낄낄거리는 어른들의 모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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