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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Feb 21. 2023

큰 그림은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고 있다. 아내와 리아가 후쿠오카 외갓집에 3주 동안 여행을 갔기 때문이다. 일본에 데려다주고 며칠 후 나는 귀국해서 열심히 삶의 현장에서 내 역할을 다한다. "드디어 자유다!" 가족 간에 장기간 떨어져 지내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나와라 한 잔 하자" "왜 그래 요즘 바쁘다고 하더니 이제 좀 시간이 있나 봐"라는 친구에게 나는 자유가 된 듯 대답한다. "3주일 휴가야"


그렇게 시작된 나만의 시간, 첫 1주일은 정말 편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행복과는 조금 다른 느낌에 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설거지를 안 해도, 퇴근하자마자 씻지 않고 쇼파에 드러누워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일종의 자유로움이었다. 물론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좋다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맛보는 나만의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았을 뿐이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난 지금, 아내와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특히 아내와 삼겹살을 구워놓고 파전을 구워놓은 밥상에 노란색 양은 사발에 꽉 채워져 있는 막걸리를 손가락이 담기게 집어 올려 한 사발을 쭉 들이킬 때의 행복이 그리웠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작은 회식을 하면서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내려놓으며 서로의 하루를 들어주며 공감하는 시간이 이제야 그립게 느껴진다. 그리 오래전 일들도 아니고, 그저 사소했던 작은 일들, 빨래를 하면서도,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아내와 집안에서 여는 작은 회식이 너무나도 그립다.


그동안 보면 작은 일들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1년 정도 전부터는 크게 다투는 일이 없어지는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 서로의 존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그런 느낌이다. 간혹 가다 보면 결혼한 이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부부를 볼 수 있지만, 사실 자주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은 아니다. 그런 것처럼 나 역시도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평생을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겪어야 한다고. 그런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은 신혼처럼 마냥 신나고 밝지만은 않다고 말이다.


얼마 전 또 다쳤다. 집 안에서 뭔가를 하다 크게 다쳐서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앞니도 몇 개가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뭘 또 이렇게 다치고 피까지 보게 되는 걸까. 나도 참 주의 깊지가 않나 보다. 급하게 휴지로 입을 지혈하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도 뭐랄까. 내 처지를 바로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그 택시는 내가 타본 택시 중에서 가장 조심하고 안전하게 운전하지 않았나 싶다. 아픈 사람은 아파본 사람이 잘 안다고 했던가. 그래서 택시기사님도 내 처지를 이해하고 조심조심 운전하지 않았을까.


응급실 원무과에 급하게 접수하고, 휴대폰으로 다친 곳과 상태를 타이핑 쳤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입을 다쳤으니 의사에게 설명할 만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응급실인데 금방 선생님께 진찰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응급실에서도 나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걸 이때 알았다. "뭐지, 응급실에서도 기다려야 한다니" 다소 의아하고 아픈 몸이 짜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건너편 의자에는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사회 초년생처럼 보이는 딸이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서로를 위로하며 앉아 있었다. "엄마, 괜찮을 거야. 간호사님이 해준대로 손가락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금방 지혈될 거야"라고 말하며 딸은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아팠지만, 내 귀는 또 그 모녀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들리는 얘기를 종합해 보면 요리를 하다가 엄마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칼에 베인 것 같다. "엄마 걱정하지 마, 금방 지혈될 거야"라고 말하고는 "조금 있으면 아빠도 오신대, 엄마"라고 말하는 딸이 정말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조금 있다. 중년의 남성이 엄마의 옆자리에 앉고서는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안아주기부터 한다. 그러고는 그 굵은 손으로 어쩌면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처럼 느끼는 듯 그 굵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아내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 하는 그 가족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야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응급실에 갔지만, 마음을 먼저 치료한 느낌이었다. '나도 이런 가족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평소에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기도 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하고 살기도 한다. 그런데, 곁에 없으면 그 허전함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게 가족이기도 하다. 사람은 아프면 소중한 사람에게 잘하지 못했던 걸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곁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이 참 신기하지만, 그래도 소중함을 알았으니 다행이다. 아내와 리아가 오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있어도 혼자서 처리해 버리는 게 아니라, 큰 그림은 가족과 함께 그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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