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권 Mar 20. 2023

예쁜 손

예전에는 이 정도로 강력하게 갖춰야 하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서 나눠줘야 한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긴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노동력을 사업주에게 제공하고 나는 그 대가를 지불받기 위해서는 일종의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조건들을 성문화 한 게 근로계약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배웠던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재화의 공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일종의 거래 관계라고 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 계약서에 쓰여 있는 만큼만 재화를 공급하고 그 대가를 받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계약서 이상의 일을 요구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저 있고 그만큼을 해내면 월급을 받기로 한 계약서를 초과하는 내 일과 무관한 수준의 업무를 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상부상조 문화,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부르는 알 수 없는 희생의 문화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해서 청소를 시키는 회사도 있으니 아직도 그런 곳이 있다고.


요즘처럼 일상의 선이 명확한 삶을 살고 있는 세대에게는 근로계약서 이상의 업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직원에게 로열티를 잃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조금은 딱딱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 없어 보이겠지만, 어떨 수 없지 않을까. 그렇게 회사와 나 그리고, 상대와 지켜야 할 약속인 계약을 잘 이행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렇게 잘 이뤄지는 경우도 드물다.


남자는 결혼하고 나면 많은 게 달라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음... 정말이다. 많은 게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함을 느꼈다. 그동안 우선은 나 하나만 건사하기 바빴다면 이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내가 해내야 할 역할을 부여받는 느낌은 꽤 무겁게 느껴진다. 해보지도 않았던 설거지를 해야 거실 분위기가 평온해지기도 하고, 빨래를 집접 널어 보이면서 나도 아내가 하는 일을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그냥 소파에 파묻혀서 리모컨이나 돌리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휴식시간을 갖고 싶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고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만 움직여 아내가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거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좋겠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아내가 하는 일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니, 크게 표가 나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써야 할 때는 의외로 많이 있다.


결혼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다고 느껴본 적이 있을까. 가끔 보면 수월하게 하루를 보내고 행복한 모습에 부러움을 느껴보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것저것 고민하고, 또 평생을 함께 살아나갈 수 있을지 고민도 해보고 난 결과인데, 늘 쉽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 왜 그럴까. 나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데도 온도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가정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다고 느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일방의 시각은 상대가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요즘 들어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손을 먼저 보게 된다. 혹시 오해를 살까 봐 조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인사를 하면서 또는 함께 의견을 나누고 마무리하면서 악수를 할 때에도 손등과 손마디를 주의 깊게 보게 된다. 뭐랄까. 그 사람의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냥 손에 쓰여 있는 인생을 엿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의 손은 어땠을까. 요리를 하면서 뜨거운 냄비를 큰 아픔 없이 만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 그 어디로 사라져 버린 지문들이 우리 엄마의 시간이 결코 녹녹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름 가득한 손등을 부끄럽게 어루만지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니다.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우리 시대 어머니들은 다들 그랬던 것 같다.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청소는 물론이고 요리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해 나가야 하는 심리적 압박은 어땠을까. 집안이 깨끗한 것만 알았지, 어떻게 깨끗해지고 또 유지되고 있는지를 깊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엄마들이 왜 비만 오면 손마디가 시리고, 무릎관절이 비명을 지르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어리 굽혀 바닥을 쓸고 닦고, 고민해서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유지하는 데 몸이 남아났을까. 사실 청소한 물걸레 청소 한 번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동에 해당된다. 관절뿐만이 아니라 몸의 신경과 근육이 남아나질 않는다.


여자의 손은 그래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게 어리거나 성인이 되어 중년에 이르고, 또 황혼에 접어들 때까지도 그 보드라운 손의 진심은 어떤 힘든 일을 겪었더라도 변함이 없다. 우리 엄마도, 누나도, 그리고 내 아내 역시 그렇다. 그러니 주름 잡힌 손등과 잘게 부서진 지문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기를. 다시 보니 아내의 손이 이렇게 예뻤다니, 미안함이 밀려온다.


결혼은 서로가 공평하다고 느껴져야 하는 하나의 계약과도 같다.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계약서에 쓰여 있는 내용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많은 거래 내역이 들어 있다. 한쪽에서라도 불공평하다고 느낀다면 그 계약은 이행되지 않는다. 결혼은 그런 거라고. 서로를 위하려고, 자신의 한쪽 빈 구석을 따뜻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결혼을 선택한다. 그러나 결국 나를 위한 불공정 계약으로 변질되어가는 그런 계약이 나는 걱정된다. 오랫동안 유지해야할 그 계약을 나는 지켜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소소해져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