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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Apr 03. 2023

봄이 오려면

예년 보다 일찍 시작된 벚꽃이 그 끝을 향한다. 대부분의 봄꽃이 그러하듯 벚꽃 역시 5일에서 7일 정도의 짧은 개화기를 갖고 곧바로 시들어버린다. 그 꽃잎은 산들바람에도 기분 좋게 흩날리며 봄에 내리는 눈을 연상케 한다. 왠지 모를 설렘이 기다리는 봄은 어느덧 그렇게 봄이 찾아왔다. 


내가 벚꽃을 그렇게도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 만 같은 희망적인 기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해서다. 봄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어려운 겨울을 이겨낸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온전하게 따뜻한 계절의 포근함을. 그저 따뜻하기만 한 그런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물론 잘 지내면서 잘 행동하고 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괜찮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 두 가지의 고민거리를 달고 사는 것 같다.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뤄내지 못하는 완성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더 많은 듯하다. 왜 그렇게 사람과 힘들어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지, 늘 이렇게 힘든 상황을 경험하며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심리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갑자기 생각해 본 건 아니고, 오래전부터 마음이 불안정함을 느낄 때마다 꼭 해보고 싶었던 상담이다. 불안정함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복잡한 마음을 걷잡지 못해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곽찬 느낌으로 살아갈 때를 말한다. 그런 심리적 복잡함은 보통 사람으로부터 오는 공격적이고도 해소하지 못한 어려움에서부터 나온다. 말 그대로 관계가 틀어져버린 상황.


일단 잠을 잘 못 잔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잠을 못 자는 이유는, 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나 충격 때문에 내가 왜 한 마디도 못하고 왔을까 라는 억울한 감정이 들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상대가 나에게 기분이 상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그 상황의 끈적거리는 기억은 대략 이러했다. 업무도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일을 하며,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몸을 낮추고 일을 한다.


그런데, 가끔은 내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다 윗사람의 눈 밖에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딱 그런 케이스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윗사람에게 잘 설명이 안 되다 보니, 오해를 낳게 되고, 또 누군가를 화나게 한 모양이다. 그렇게 발전한 게 나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나는 며칠 밤을 매일 그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나는 아무런 변명조차 하지 못했는지. 억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벚꽃이 만개한 따사로운 봄이 찾아와도, 내 마음의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하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심일 텐데, 나는 그 욕심조차 없는 것인가. 그저 나도 똑같이 대응을 못 한 게 한으로 남는 듯하다. 꼭 찾아가서 한마디 더해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밤잠을 설치는 건가 보다. 나도 생각하고 움직이는 생물일 텐데. 아직도 내게 봄은 멀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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