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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Apr 06. 2023

길을 잃었을 때

한동안 흰색 지팡이로 앞을 '톡톡' 두드리며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던 아저씨를 볼 수 없었다. 뭔가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다른 출근 방법이 생겼으니 이제는 더 이상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어버린 걸까. 혹시라도 아픈 거 아닌가? 앞을 볼 수 없는 핸디캡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건 아닐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순간에 하게 되었다. 버스가 도착하면 당당한 목소리로 "몇 번 버스예요?"라고 물어보고 400번 버스라는 누군가의 답변이 떨어지면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섰던 모습이 스쳐갔다.


그렇게 1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 청년은 20m 정도 앞쪽 조그만 삼거리에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니라 반대편으로 톡톡 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헤매고 있던 거였다. "아, 달려가서 도와줄 까..."라는 생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저 일상에 지쳐 늘어진 엿가락처럼 그냥 알아서 잘 찾아오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내가 도와주기 전에 방향을 이쪽으로 바꿔서 잘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 흐리멍덩한 생각.


다행히도 방향을 바꾸어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쪽이에요, 버스 타는 곳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입에서 맴돌기만 했던 내가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휴대폰을 보느라 정신을 빼앗겨 신호등 건널 타이밍을 놓치거나, 스피커 건너편에 있는 친구와 떠드느라 버스정류장을 지나치곤 했는데, 이 청년은 온 정신을 집중해도 이렇게 지나칠 수밖에 없다. 오늘 길을 잠시 잃었지만 금방 잘 찾아온 청년을 보면서 왠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도 길을 잃으면 저렇게 잘 찾아올 수 있을까. 누구나 잃어버릴 수 있는 길, 그리고 방향은 올곧게 다시 찾아낼 수 있을까. 흰색 지팡이를 든 청년은 생에 길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을까. 그리고 다시 자리를 찾아냈을까. 그렇다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내는 그 청년을 움직이게 만든 에너지는 무엇일까. 한동안 청년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닮고 싶어 진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길은 잃어버리는 게 아니야. 찾아내야 하는 것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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