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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Jun 07. 2023

나로 살기

함께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조금씩 작아진다. 다소 작은 사람 이더라도 어려서 작은 충격이 남아 있다면 그 내면의 성장은 멈추게 되어 있다. 유독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유독 작은 것에 집착하고, 조금만 떠나 있어도 큰 오해가 되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보통 이렇다. "하지 마", "안 돼"

아이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도 없고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 잡을 수 없는 상태다. 그저 본능이 아이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뿐,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은 지극이 드물긴 하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아이의 사고는 금세 변해가고 자신이 관리 가능한 상태에 접어들긴 한다.


어린이에게 늘 하는 말 "안 돼, 하지 마",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것일까. 물론 논란의 여지없이,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때로는 아이아 어질러 놓은 거실이 지저분하지 않기 우해서 꺼내 드는 단어라는 건 틀림없다. 공원 땅바닥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흙놀이를 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하게 지켜볼 만한 부모는 찾아보기 쉽지가 않다. 보통 이때 어른 들은 더러워지는 옷을 빨래하는 생각부터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하는 말. "그만해"


나야 뭐 심리학자도 아니고, 오은영 박사처럼 많은 아이들의 성장 패턴을 연구한 사람도 아닌 입장에서 본다면, 아이들에게 "안 돼", "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통제의 수단에 익숙하게 하는 불필요한 성장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 말라고 하고,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는 더 해보라고 말하는 건 정말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나 역시 쉽게 말할 수는 있지만, 말처럼 그리 쉽게 아이의 행동에 무조건 적으로 받아주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이도 자신의 편에서 자신만을 위해 말해주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본다고 한다. 포장되지 않은 마음으로 자신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부모를 바라보며 성장한 아이는 그만큼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게 되는 걸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건전하고 건강한 아이의 자아를 바탕으로 한 자존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만큼 행복한 일상에 과한 욕심으로 하루를 괴롭게 되는 걸 내버려 두지 않게 된다. 그게 바로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지 않고 편안한 하루를 허락해 준다.


어디서든,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행복하고 인생의 성취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게 하지 못하는 게 바로 나를 인정하고 받아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두는 것이다. 나의 존재에 환한 미소로 받아 줄 수 있는 나만의 힘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건강한 자아실현 욕구를 가지게 되고, 늘 하는 일마다 잘 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감성 수치가 높게 올라간다.


어렸을 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의 자존감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위아래 편차가 심했다. 무언가 시작을 해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경우가 적을 정도로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친구와 저 앞쪽 나무 밑에까지 빨리 달리기 내기를 하는 데 중간에 친구가 내 앞에 있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뭐랄까 앞서 달리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패배감이 결승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에 쫙 퍼지는 느낌이었다. 중도 포기의 나.


무언가 시작을 해도 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나름의 습관인가 보다. 내 어린 시절의 포기하는 습관이 결국 자존감을 구축할 수 있는 나만의 심리적 장벽을 세우지 못하면서 무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위축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조금 더 진전된 마음으로 잘 안되더라도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기까지 스스로 느껴야 할 부담은 늘 크기만 하다. 낮은 자존감 그리고 사랑받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


photo by Paris_shin


나를 인정해 주세요.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시대는 길어지고 있다. 멋진 수입차를 사고 엠블럼이 보이는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나의 존재감을 만끽하는 요즘 같은 세상. 그렇게 나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자 생존 방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돋보이려 애쓸수록 내 마음은 안정을 찾기보다는 혼돈이 계속되고, 그렇게 찾고자 했던 나는 결국 저 방구석에 남겨지게 된다. 


사실 사회에서 나를 알리기에 세상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지 않은가. 행여나 내가 가진 것 없는 밑바닥에 서 있을 때, 내 마음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은 나를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한다. 나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으로 중간정도에 올라서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게 된다. 이때 나는 무너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더한 노력으로 한 단계 올라서게 되는데, 그렇게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서게 된다.


문제는 내가 잘났거나 나름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어갈 때쯤 사람들은 나를 시기질투하기 시작한다. 물론 대놓고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상은 나의 성장과 내 자존감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경쟁상대로 나를 바라보게 된다. 여러 번 부딪히고 싸우고 나서 얻게 되는 깨달음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만족시킬 수 도 없다. 그러니 나 하나만 바라보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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