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은 나에게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느끼긴 했으니 나름대로 타당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입히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게 보인다. 물감을 입히다 보면 서로 다른 색을 조화롭게 쓰게 되어야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된다. 밝은 색의 컬러만 입히다 보면 그림의 특색이 사라진다. 빛과 빛을 그린다면 사실 빛이 되고, 어두운 색과 어두운 색을 더하면 사실 어두움뿐이지 특별함이 없다. 그림이라는 게 그렇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밝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는, 가끔씩 슬픔이 있어줘야 나에게 다가온 행복한 시기도 그것을 잘 느낄 수 있지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삶을 그려 나가는 우리들의 그림에는 밝고 어두운 색들의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좋겠다.
뉴스를 보면 영락없이 사건사고 이야기뿐이다. 누구를 죽게 하고, 또 누구를 다치게 했다는 뉴스가 없다면 이제는 밍밍해 보일정도 아닌가. 누군가의 신체를 다치게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오히려 더 좋은 학교생활을 하고 좋은 뛰어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은 이제 낯익은 소재가 되어 버렸다. 정치이야기는 물론이다. 자기편 아니면 조건 없이 적으로 대하는 듯한 말과 행동에 사람들의 인내심은 잃어간다.
서로 사랑하기도 시간이 부족한 요즘 같은 시대에, 분노에 자신을 녹여가며 살아 있음을 증명해 봤자 다치는 건 자신 뿐일 텐데, 참 팍팍한 요즘인 것 같다. 마치 음과 양, 나 아니면 누군가가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듯하다. 그 양면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틈도 없이 늘 등을 지고 상대에는 안중에도 없이 나에게만 쏠려 있는 편향된 시선들. 어느 곳에나 있는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이야기들.
하염없이 변해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생물체라면 무엇이든 가지고 있을 감정의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아픔을 느끼고, 기쁨을 즐기고, 또 시간에 약해지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늘 사람에게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한 이유야 없겠지만,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모르는 존재의 가치를 지금이라도 받아줄 수 있다면 한결 부드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뉴스에서 어느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아무런 사건사고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뉴스가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