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by 한상권

인간이 삶을 살아 나가는 걸 '인생'이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자기만의 고유의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을 얘기할 때 행복은 빠질 수 없는 단골이다.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독립선언문에 넣은 문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의 권리를 부여받았다"


여기에서 추구한다는 뜻은 참 사려 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철학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삶에 필수 요건 모두 인간은 추구할 수 있다는 희망적 문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행복이라는 것을 가지는 것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권리의 보다 한참 기본적 소재로 행복을 다루고 있으니, 이또 한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국가는 알고 있다는 말일까.


'목적을 이룰 때까지 쫓아 구하다' 추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인데, 행복을 쟁취할 때까지 쫓아갈 권리는 가지고 있으나 결국 행복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개인의 인생에 달려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조금은 섭섭하다. 행복 추구권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이러하니, 역시 인생이란 행복에 관한 고찰 없이는 얘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인생이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할 인간의 가장 큰 기억이 된다.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지금처럼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마다의 생활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데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예기치 않게 자기가 의도하지 못하는 길로 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빚을 내어 창업을 했지만 결국 대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청춘은 아직도 늘어진 어깨를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아직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청년 자살률이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씁쓸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저마다의 자리잡지 못한 우리의 청춘은 아직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삶은 살아져야 하는데 이렇게 인위적 일상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한 뻣뻣한 결과물로 연결되는 것이다.


KakaoTalk_20210923_075025473.jpg Photo by@paris_shin. 한상권


사람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운명이란 자신이 살아가야 할 경로를 말하는 것이지만 굳이 정해진 경로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운명을 받아들일 때 중요한 것은 그 운명을 바꿔야 하는지 따져 볼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이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나는 중심잡기라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 균형감각이 있을 때 바로 운명을 바꿔나갈 수 있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바꿀 수 있는 운명이란 심령에 빗댄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인간만큼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박찬호 선수도 운명을 건 메이저리그 도전에 성공하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운명을 한 차원 다른 곳으로 옮겨놨고, 우연히 들은 피아졸라라는 클래식 밴드의 내한공연을 보고 운명적으로 "“내 운명을 바꿔 놓은 피아졸라, 한 곡 한 곡 영혼 갈아 넣었죠"라고 말하는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말처럼 운명의 길이 어느 한순간의 자극으로도 바꿀 수 있다는 건 믿을만한 이야기다.


인생이 이렇게 자신의 의지대로 변하는 삶이라면 정말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여유에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삶에 충분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게으른 경우도 있다. 곰 발바닥이 두꺼운 이유는 곰이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서 생긴 걸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 중 꾀 쓸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보고 싶고,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걸까. 행복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닐까. 행복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두통수 전두엽 인근이 두피질을 강하게 강타하는 게 나뿐일까. 과연 행복은 우리가 찾아내거나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의 대가일까. 행복하려면 먼저 기뻐야 하는 건 아닐까.


분명한 것은 행복은 삶의 기쁨의 크기가 아니라 빈도수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해 나감으로써 행복에 가까워진다는 얘기보다는 행복의 빈도수를 늘리는 게 더 현실적인 행복을 영위하는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행복이 중요한 이유야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는 수많은 매체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받고 있다. 행복을 위한 노력은 호모사피언스가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역사적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삶의 목표가 된 지 오래이다.


행복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전부라고 말해도 틀린 게 아니듯 행복해지기 위한 삶이 중요한 시기다. 또 하나의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삶의 목표란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우리는 평소에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력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사그러 들지 않지만 말이다. 굳이 노력하고 쫓아가야 잡을 수 있는 노력의 대가가 행복이 아니듯이 평소에 작은 일에 감사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인생이고, 살아볼 만한 삶 아닐까. 작은 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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