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중세시대에 4대 덕목 중 하나로 불릴 만큼 현세를 살아가는 동물(인간을 포함)에게 필수인 심리 상태다. 우리는 사자의 얼굴을 하고 칼을 높이 세우고 상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고대 국가의 전사의 모습을 보고 보통 용맹하다 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용맹함은 죽음 앞에서도 결연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죽음도 뛰어넘는 사상적 무장이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용맹함에는 용기를 수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요일 아침 자다 벌떡 일어나 아내를 대신해서 아침밥을 짓는 자세 또한 일종의 용기를 태동한 용맹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상이라는 평범한 상태에서 자신과 밀접 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모든 상황에서의 행위는 일종의 도전정신에도 맞먹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전례 없는 시절에 선구자적 위치에서 삶을 바꿔보겠다며 시도해온 많은 시대의 현인들 또한 자신의 역할에 구성이 맞아떨어지기까지의 노력은 또 하나의 용기를 기반한 도전의 결과물일 수 있다.
사실 도전정신이라는 용어에서 나오는 수많은 해석은 기본적으로 용기가 없다면 그 뜻의 철학적 개념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조금은 상황 증폭일 수 있으나 그것이 동물의 세계나 고대 국가 이전의 모든 인간사에서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조직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게 만드는 기본 정신이었던 용맹함은 그래서 도전정신과 용기를 따로 분리하기 쉽지 않다. 조금 더 현실로 돌아와서 얘기해보자. 우리에게는 국경과 맞닿아 있는 실황 속에서 오는 긴장감을 꾸욱 누르며 버텨오는 분쟁의 과정에서 오는 전투력의 다른 표현인 용기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필수 용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째, 사랑할 용기다. 부모 자식 간의 서먹한 밥상머리에서의 교감하는 그런 답답한 사랑이 아니라. 순수 애정이 담긴 그런 사랑을 말한다.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최대 행복의 원칙을 말하는 것도 아닌 그저 바라보고 아껴주는 그런 가족 간의 사랑이다. 오늘날 부모님의 재산이 나에게 얼마나 상속될까 계산기를 두드려 얼마짜리의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손해 없는 부모공양이라고 볼 수 있는지 고민의 모습이 아닌, 식사자리에서 아이의 하루가 궁금하고, 아버지의 하루 그리고 또 어머니의 하루가 궁금하고 이야기의 1인칭이 아닌 우리라는 3인칭의 문장들과 이야기를 공감하는 귀찮아도 꺼내놓는 그런 용기다.
연인 간의 사랑은 가족 간의 사랑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보는 게 합당하다. DNA가 하나도 섞여 있지 않은 철저한 남이 우리 서로가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랑을 나누어 가는 게 정치인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말을 신뢰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앞만 바라보는 사랑이다. 자칫 한눈을 파는 순간 그 사랑의 거리는 금세 벌어지게 되고 다른 이물질이 그 틈바구니를 채우게 되어 결국 다시 붙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진정한 연인 간의 사랑은 그 사람만 바라보는 것 아닐까.
Photo by@paris_shin. 한상권
둘째, 인정받지 못할 용기다. 생일날 아침 가장 먼저 일어나 휴대폰 카카오톡에 생일축하 메시지가 얼마나 도착했는지 확인하게 하는 인정욕구는 일반적이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사회 생활 심리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인정이라는 것은 나의 자존감과 상당히 높은 연관성이 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나 하나의 존재감이 떨어지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과 같이 꽉 찬 사회에서 나는 인정받는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경 우 우리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존감을 추스리기조차 힘든 심리적 상실감을 맛보게 되는데 이때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사회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게 되면서 결국 나의 가치는 스스로 망가트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게 나는 나 하나의 존엄을 인정하는 나만의 암시가 중요하다.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또 5등 안에 들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이다. 누군가에게 듣는 칭찬에 목마른 사람일수록 이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의 결과로써 자신을 유지하는 데, 과부하로 인해 벌겋게 달아 오른 자동차의 엔진과 도 같아 보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상황의 가속 페달은 내가 밟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 알고 있는가. 당신의 삶은 고귀하고 찬란하다. 더 이상 당신의 인생의 다른 사람의 눈과 귀에 의탁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에 중심을 잡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지만 필요 이상의 인정을 받을 필요 없는 삶이 나를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더이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솔깃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솔직히 내 인생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타인을 의식하고 살아갈 이유가 있는가.
셋째, 도전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을 이겨내며 성장과 생존해왔다. 그 원동력에는 멈추지 않고자 하는 도전의 힘이 아니었을까.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그 앞이 밝게 빛나겠지만 현재에 머무른 사람은 과거의 삶에 집착하며 후진하는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도전에는 여려 종류가 있겠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가 손녀와 소통을 이어나가고 싶어 '스마트폰 뽀개기 수업' 참여는 아름답다 못해 고귀하기까지 하다.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고자 종이를 오려 붙인 날개를 달고 언덕을 뛰어내리는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용기라는 것은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큼 아픔 없이 지낼 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몸을 움직여 이뤄낸 성과물이다. 믿음을 꿈으로 이뤄내는 힘을 가진 도전할 용기는 우리가 왜 꿈을 꾸어야 하는지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사실 우리가 하루를 지내면서 오만가지의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직장상사의 터무니없는 업무지시에 "그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고, 여름 피서지에서 강물에 떠내려 가는 내 슬리퍼를 잡아 올리기 위해 뛰어들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 우리네 삶이자 인생아닐까. 나를 인정하는 자세에서 용기는 솟아나는 것 같다. 나로서 살아가는 그 용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