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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Oct 04. 2021

상실감이란

가끔 마음이 뚫린 하늘처럼 휑한 느낌이 있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모는 심리적 공허함이 나를 더 가볍게 만드는 것 같다. 명절에 자식과 손주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다음날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 찾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공허함, 죽기 살기로 공부한 수험생이 늦잠을 자 시험조차 보지 못했을 때, 그리고 소유하면 모든 게 다 잘 될 줄만 알았던 큰돈을 가졌지만 공허함은 그 끝이 없을 때가 있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 장면에 001번 할아버지는 자신이 게임의 주최자였다는 거을 밝히면서 이런 말을 한다. " 돈이 없는 사람과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가 없다는 거야" 삶이 재미없기는 돈이 있어도 그리고 너무 없어도 마찬가지란 거다. 재미없는 인생이 그 끝을 달린다면 공허함은 그 빈 공간에 투영되는 무감정의 불안적 요소는 상실감의 다른 표현이다.


가장 큰 상실감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수 있다. 반대로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 한다는 상실감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헤어짐이라는 자연 순리에 순응할 경우 헤어 나오기가 쉽다. 다만, 예상치 못하는 인생의 결말을 맞는 사람들의 상실감은 상당하다. 항상 있어야 할 자리에 쏙 빠진 듯 한 빈자리는 상실감을 넘어 공허함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상실감은 불편함과 연관이 깊다.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을 파악해본다면 정말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에 대해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적정한 삶>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실감은 좋아하던 것을 할 수 없는 상황", "불편함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상황"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즉, 일상의 행복함을 상실한 코로사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심리상태는 대부분 '상실감'이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상실의 시간 속에서 하루를 이겨낸다. 코로나 여파로 일상의 상실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평소 만나왔던 사람과의 시간은 이제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편의점 파라솔 밑에 앉아 나누어 마시던 맥주는 이제 볼 수 없듯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잃은 상실감 또한 만만치 않다. 


Photo by@paris_shin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걸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는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즉, 자신의 심리적 상실감을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현재 상태를 알릴 수만 있다면 이미 헤결의 실마리를 찾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적당한 시가기 되면 알아주겠지 라는 생각은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파악했다면,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미 상실감은 '좋아하던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원인을 알았다면, 이제는 처방도 그에 맞게 내릴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해나가는 방법이다. 상황의 제약으로 마음껏 할 수 없다고 해도, 감정의 해소를 할 만한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맛집을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다면, 자신이 직접 한번 만들어 보는 것도 가능하다.


또 다른 상실감은 쉽지 않은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아버지는 평생의 반려자인 어머니를 잃었다. 결혼생활 20년째 되는 해에 어머니는 새벽 이불을 밀어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가슴이 아파 병원을 다니다가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는 병원의 성화에 못 이겨 입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칠을 못 이기고 "집에 가서 새끼들 밥 해먹여야 해"라며 우격다짐으로 퇴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 뒷바라지하지 못하는 어미의 모습은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아픈 어머니의 가슴보다 더 힘들 게 했는 모양이다.


다음날 새벽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갔다. 여태껏 자신의 삶을 한쪽에서 의지해주던 기반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 50대였으니,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고 어머니의 빈자리에 힘들어했으리. 그렇게 상실감을 맛보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든 생이었을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계획된 삶이 한순간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공허함은 빈집이 더 낡고 무너지기 십상인 것처럼 금세 힘을 잃어간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혼자의 힘으로 버텨야 했다.


내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지금의 심리 상태를 마냥 놔둔다면 결국 병이 되고 앞으로는 더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겨내고자 한다면 현재 내 감정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다. 그런 심리적 움직임은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축이 되어주어 결국 극복할 수 있는 심리상태를 완성한다. 다만 아버지는 혼자 이 떫은 인생의 맛을 조용히 삼켰나보다.


뭐든지 가만히 있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특히 자신과 관련한 내면의 이야기일수록 더욱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상실감을 경험하면서 한 없이 나약함을 겪지만, 결국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내 심리 상태를 꺼내놓자니 들어줄 사람이 없고, 용기 내어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이해해줄 리 만무하다면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놓는 게 편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은 병이 되어가고 더 힘든 내일을 맞이하게 해 준다.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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