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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Sep 30. 2021

희망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흔들어 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정말 싫다. 심리적인 부담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내가 파헤쳐지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부쩍 요즘 들어 그런 일들이 많아지는 듯해서 기분이 썩 밝지만은 않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이유를 고민해본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면서 공동체가 되고 사회가 되는 거라면, 직장은 생존 도구를 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는 조직이기도 하다. 다른 공동체와 다른 점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아침이면 대문을 밀고 나가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는가.


그래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를 하나 찾아본다면,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을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떤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록, 여러 공동체에서도 생존을 위한 허울 좋기만 한 말짱한 나인 듯 자존감을 내세워 보지만 글쎄, 별 볼 일 없는 하나의 구성원이라는 걸 바람에 묻어 날아가는 흙냄새처럼 내 자존감도 이내 이곳을 빠져나가는 듯할 때가 있다.


그래도 움직여야 하고 심리적 부담감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이직 내일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내 삶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솜사탕 같은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아지고 내일의 모든 상황은 나아질 거라는 자기 암시는 이내 상황을 반전시킬지도 모른다.


Photo by@paris_shin


희망이라는 글자는 너무 희망적일 때가 많다. 제 아무리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그 글자라도 근거 없는 희망이 되어서는 또 안된다. 맹목적인 사랑은 배신을 낳는 것처럼 무조건 적인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말에는 조금의 강제가 있는지 또 짚어볼 수 있다. 그게 희망이 가지고 있는 함정일 수 있는데, 우리는 가끔 조건 없는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무조건 적인 희망을 품는다는 건 일종의 무모한 생각의 번뇌일 수 있다. 생각에 자기 최면을 거는 것처럼 내 소유가 아님에도 내 손에 쥐고 있는 듯한 자기 암시로 번져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조금 위험한 심리적 강제가 될 수 있다. 피그말리온의 갈레테리아에 대한 사랑이 조건 없었지만, 우리 세상의 생각에는 최소한의 조건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걸 생각하는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가끔 사람들과의 관계는 진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듯할 때가 있다. 여러 생각의 구덩이에 정리되지 못한 심리상태는 결국 기분이 태도로 변하는 걸 묵도할 수 도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제일 피하고 싶었던 게 희망고문이었다. 대학입시원서를 내고 "합격할 거야"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 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라는 어디론가 숨을 구석을 만들었던 게 마음이 좀 더 편했다. 여기에서 오로지 잘 될 거야만 외치는 게 왜 이렇게 불안하기만 했을까. 물론 고르지 못한 내 심리상태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변수가 생길 것에 대비한 심리적 충격 완화장치를 스스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정신을 자극한다. 나는 희망을 현금으로 사지 않는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머릿속 깊이 내재된 희망의 글귀다. 가끔 누군가는 희망을 품지만 그 희망을 움직이게 할 무언가의 행동은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무조건적이고 무의미한 희망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희망에 조건이 있어야만 하는 건 또 아니다. 다만 나는 희망이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내 경우에는 그랬을 뿐이니 모든 사람에게 해당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도 그들 무리 속에서 서로 간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한다. 침팬지 무리를 보면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 또는 우두머리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침팬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하고, 가끔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체들은 그들 공동체 안에서 생기는 관계에서 오는 심리상태는 만연 행복하지만은 않다. 인간이라고 뭐 다른 거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좁은 공간에서 나를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라면, 그게 없이 막막한 시간만 흐른다면 그 건 일종의 고문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넓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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