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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Sep 13. 2021

당신은 아직 꿈을 꾸고 있는가

꿈을 하나쯤 가져야만 했다. 꿈 하나 없는 아이는 성장 가능성이 막힌 듯 더 이상 투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 아이쯤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기때문이다. 그 시절엔 "꿈이 뭐야?" 또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와 같은 생각지도 못한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묻는 어른들의 압박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꼭 하나의 대답은 마련해둬야 했다.


그렇게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는 내 미래에 관한 '꿈'이 과연 내 꿈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이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초벌구이를 이미 한 삼겹살처럼 나를 투영한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연 그때의 꿈이 꿈이었을까.


때로는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꿈을 꾸라고 말한다. 막연한 꿈도 꿈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아이의 두뇌 발달에 목표를 짜서 이뤄야만 한다는, 어쩌면 성공을 위한 줄다리기에 참여하라는 형식을 '꿈'이라는 보기 좋은 표현으로 강제했는지도 모르겠다. 해야한다는 의무가 강해진다면, 그 힘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강제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Photo by@paris_shin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는 어떨까. 과연 어릴 적 꿈이 있기는 했는지, 아련한 두되를 자극해보지만 튀어나오는 것은 이루고 싶은 욕망의 목표와 같은 경직되고 풀냄새 사라진 건조한 상업 문제만이 남겨진다. "고양이를 예뻐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조금은 편하겠다.


우리는 꿈을 꾸는 걸까, 만약 꿈을 꾼다면 어떻게 꿈을 꾸는 것일까.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것일까. 무엇이 꿈이라는 녀석을 소환하게 하여 사람을 자극하는가. 무엇이 다르기에 그토록 갈망하고, 또 아이에게 희망하는가.


꿈을 꾸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다. 찬란하기 때문이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힘의 원천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그런 것이다. 따뜻하고, 아련하고 또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꿈을 꾸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표정은 달라진다. 그것은 이루어내고 쟁취하는, 산 정상에 올라 그 찬란함에 취하고 마는 등산과는 다르다. 그래서 꿈을 목표로 삼는 사람과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신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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