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매일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질기고 기나긴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얘기. 그 많은 선택 중에서 항상 옳은 선택만을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실망을 넘어서는 실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 때 나를 힘들게 하는 시간이 되는 고통은 쌓여만 간다.
며칠 전 주재 넘게도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 자문위원으로 역할을 하는 정부 단체에서 해마다 여는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서 캐나다 밴쿠버,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출장 시간 중에 발생한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또다시 긴장을 하면서 부터였다.
우리 정부는 해외에서 입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가격리 10일의 조치를 단행했는데, 자가격리 10일이라는 건 출장 시간에 격리 10일 까지 더해서 회사에 출근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출근해야하는데, 오랜 만에 느껴지는 멘탈 붕괴 사태에 나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선택해야 했다. 귀국 일정을 앞당겨야 하는지 아니면 정해졌던 일정을 소화하고 귀국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나는 하루라도 격리 시간을 줄이고자 중도 입국을 선택했다. 그래야만 했다. 하루의 시간에는 나에게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비행기 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탑승 시간이 바로 내가 계약하기로 했던 10억원 가량의 입찰을 넣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잘 쌓아 올린 탑에 점 하나만 찍으면 되었지만, 한국과의 시차를 잘 못 계산한 명백한 내 실수였다.
잘 짜여진 틀에서 인터넷으로 싸인만 하면 되었지만, 인터넷이 안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속만 애태웠다. 두 손이 묶인 듯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애만태웠다. 신이 있다면 지금이 도와주어야 할 타이밍인데, 신결국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에 중도 입국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접속하고 공인인증해서 확실하게 싸인을 했을 텐데, 전혀 손을 못대는 장님같은 모습으로 비행기 창밖만 처다보고 있어야만 했다.
안전 마진이 계약액의 절반을 넘기고도 대부분을 차지한 프로젝트. 주변 정리를 잘 해놔서, 단독 입찰이나 마찬가지. 준비만 3년 걸렸다. 나는 그렇게 허망하게 담배연기 흩날리는 하늘을 바라보듯 날려먹었다. 정말 오랜 시간을 준비했었는데. 그렇게 기회는 없어지고 나는 홀로 무너진 멘탈을 위로하고 있다. 한번 흔들린 정신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면서 투자했던 주식을 30분 차이로 500만 원의 손실을 입어야 했다.
나는 자립해서 성공해 보고 싶은 욕심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작가로서, 칼럼니스트로써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기도 하고, 비지니스를 하고, 한편으로는 조직에 몸을 담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이 모든 행동의 종착역은 빠른 은퇴를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이번은 큰 실수다.
선택이라는 게 그런 건가 보다. 무언가 쫓기듯 하는 선택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가능하면 기존에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과 변경되는 스케줄은 점검해야 하는 리스트를 나열해서 하나하나 확인해서 문제 발생 요지를 최소화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건너뛸만큼 머릿속은 새하얗게 흔들인 상태.
사실 나에게는 10억의 돈을 염두해 둔 프로젝트는 인생을 걸 만큼의 큰 돈이다. 한 번의 잘못된 결단이 결국 또 다른 실수를 유발하고, 흔들린 멘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좀 더 명석하고 뚝심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정말 싫다. 거울 속을 들여다 보는 것도 이제는 지쳐간다.
뭐 다들 그렇겠지 하면서 위안을 삼으려고 하지만 쓰러진 고목을 다시 세우기란 쉽지가 않다. 경제적 안정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현실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돈의 노예라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결국에는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경제력은 삶을 윤택하고 무언가를 추진해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너무 욕심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신은 나를 버린 것일까.
그래도 하나 남긴게 있다면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들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 밴쿠버에서 만난 형과 동생들, 또 미국에서 만난 그들과의 인연, 유럽과 아시아 남미 각지에서 모인 내 형제들 그들이 잃어버린 수억원의 돈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함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들과 조금 더 가깝게 지낼 걸, 조금 더 살갑게 대화에 참여해볼 걸...또 다른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앞으로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건 분명하다. 다시 되돌릴 그 시간과, 그들을 만나 깊이 알아갈 시간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몫이 크겠지만, 그게 나에게 준 신의 선물이라고 믿으면서 또 다른 삶의 활력소를 찾아 오늘도 움직여본다. 정말 미쳐버리기 전에. Mer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