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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pr 06. 2020

방공호처럼 동네 골목으로 숨어서

방공호 같은 동네 생활

매일 확진자 발생이나 코로나 관련 위생 안내사항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온다. 핸드폰이 자주 울리다 보니 이 정도면 모닝콜 아닌가 싶고. 정부가 권고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또 연장됐다. 모임, 운동 등 공들여 습관으로 만들어낸 일상들이 두 달째 사라졌다. 별 수 없다. 영락없는 집콕의 시간이다.


지금의 행동반경은 거의 집 앞 골목에 한정돼 있다. 걸음마를 뗀 이래 가장 파격적으로 줄어든 일상 동선일지도. 많은 사람이 모인 공간에 가기가 꺼려지고 가더라도 마음 한편에서 슬쩍 죄책감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의 반강제적 격리 상태가 달갑지도 않고. 되도록 안전하게, 하지만 움직임의 욕구는 어느 정도 채우면서 살고 싶었다. 


지금 상황에서 안전한 공간은 어디일까. 되도록 가까운 곳을 가자. 사람이 적게 모이는 게 좋겠지. 그런데 자가 격리하는 사람들 중에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이 있다지. 그렇다면 이 좁은 생활의 의미가 유의미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야지.


더듬이를 세우고 좁은 굴 속을 돌아다니는 개미가 된 느낌이다. 그 더듬이를 굴리는 가운데, 예전에는 스치기만 하던 동네의 공간들을 내 일상의 영역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좁은 행동반경에서의 원칙들

일단 집 가까이에서만 움직이게 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집의 기능 확장하기

: 활동적인 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집을 새롭게 감각하기(ex: 집에서 요가수련 꾸준히하기)

2. 동네 가게에서 물건 사기 

: 동네 소상공인과의 상생 목적에서. 단, 소비 촉진의 뿌듯함에서 오는 과소비 금물

3. 안 하던 거 해보기 

: 저녁 운동시간만큼 내 삶에 들어오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 받아들여보기



집=only 주거기능? No!

집의 기능을 주거와 여가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글쓰기와 그림 작업, 몸 쓰는 수련 등등. 코로나 이전의 상황에서 이어가던 활동이 끊기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내 방을 살짝 바꿔보았다. 책상에 작업대를 설치하고(덕분에 장시간 글쓰기 작업에도 거북목 문제가 덜해진다거나), 작업하다가 몸을 쓸 수 있도록 매트도 구비했다. 그 두 가지 설정만으로도 방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추가되니 생각보다 일상이 분주해지는 효과를 경험했다. 


이제 내 방은 작업실이자 체육관이자 상영 방이올시다. 대신 때 되면 저 여러 기능을 위해 활용된 물건들이 너저분해진다. 늘어난 공간 기능이 세 배, 치우는 노력도 세 배다. 눈물.


동네상점 소비생활

집에 부여한 기능이 많아져 분주하다지만 집에서의 일은 '시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분주한 일상은 스스로가 무기력해지면 멈추는 게 문제다. 그럴 때 집 밖으로 나간다.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마련한 공동 작업실에 간다. 작업실에 있다 보면 중간중간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반경이 살짝 넓어진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끼니를 해결하려 할 때 식재료를 사기도 하고, 작업하다가 당 떨어지면 간식을 하러 가기도 하고. 이런 기능들을 소화하기에도 하루가 빡빡하다. 


종종 찾아가는 주변 공간은 원래 알던 곳이기도 하지만 우연찮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잉하게 된 곳이다. 꽃가게인 ‘느림의 미학 연구소’, 디저트숍 ‘달콤한 송이’, 카페 ‘가문비 커피’. 동네 마트인 ‘싱싱마트(어째선지 지금의 상황 이후로 편의점에 잘 안 가게 된다)’. 싱싱마트에 가면 내 필요에 맞는 물건들이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파게티을 많이 해먹는 편인데 관련 소스를 생각보다 많이 팔고 있었다거나, 큰 길가의 다이소까지 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커피 종이가 여기서 판다는 걸 알았다거나. 


소소한 물건을 사면서 상점 주인 분들과 소소한 대화를 해봤다. 어떤 카페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어서 핸드드립으로만 커피를 내린다거나(가격이 3000원대라던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던 ‘다쿠아즈'라는 게 꽤 맛있는 디저트라던가. 녹차와 팥앙금을 더한 디저트가 꽤 맛있다거나(먹는 방향으로 빠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다).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은 다음부터, 왠지 이런 자잘한 정보들이 미묘하게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중이다. 


핸드드립으로 바닐라 라떼를 만들어주는 카페에 앉아 잠시 작업의 고단함을 덜어낼 때. 그 소소한 행복감이 좋다. 뭔가를 사야만 관계망이 생기는 게 살짝 빈약한 느낌이지만, 어차피 할 소비생활이라면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게 나쁘지 않다. 자꾸 말을 섞다 보면 결제 관련 얘기 외에 짧은 근황 토크, 요즘의 가게 상황 등에 대해 조금씩 듣게 된다. 가까운 데에서 매일 대화할 상대가 생긴 느낌이다. 


안해보던 것들: 듣기->연주하기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공간 한 곳에 눈이 꽂혔다. 피아노 학원이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한 번도 들어가지 않던 곳.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집 들어가던 길에 항상 있던 것인데, 피곤한 몸을 달래며 집으로 급하게 퇴근하던 때와 삶의 속도가 달라져서일 수도 있다. 막연한 호기심과 때마침 합창 취미를 갖고 활동하는 친구의 부추김(“하고 싶어 질 때 해야 해")이 더해져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그저 듣기의 영역에 불과한 피아노가 일상 가까이로 훅 들어온 순간이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이란 게, 어느덧 커서 가게 되는 카페나 전시장 같은 예쁜 공간과는 감각이 다르다. 피아노 치러 온 사람들 모두 먹을 수 있게 준비한 냉장고의 다과에서는 집밥 같은 생활감이 묻어난다. 약간 허름한 느낌. 그럼에도 피아노를 치러 온 사람들, 그들끼리 친해져서 보여주는 유대감에서 살짝 끈끈함이 있다. 저런 끈끈함까지 끌어오기에는 일상 여백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커뮤니티의 존재를 옆에서 보면서 어느 정도는 경계 없이 넘나드는 순간이 있겠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일단 하농 1번으로 피아노 치는 손가락의 모양을 잘 잡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나중에 이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공간을 사용하는 감이 달라질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코로나 이전과 이후에는 일상을 직조하는 방식이 좀 바뀌어야겠다는 느낌이 반강제적으로 들고 있다는 것. 바뀐 일상 안에서 그동안 쓰지 않았던 마음과 생활의 잔근육을 쓰기 시작했다는 미세한 감각이 든다. 


다들 요즘 안녕하신지. 각자가 처한 공간에서 어떻게 일상을 꾸리고 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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