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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15. 2020

사라진 관원의 존재감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렴풋하지만


“인생을 살면 살수록 자꾸 누군가가 사라져.” 어느날 튀어나온 아빠의 넋두리였다. 서른 다섯살의 나는 아빠의 그 말을 흘려버리지 못했다. 마음이 평온한 듯하다가도 가슴께 어딘가가 푹 꺼지는 기분. 이런 종류의 말이 마음에 내려 앉는 건 좀더 나중의 일일 줄 알았다.


사회생활이나 취미생활이나 길게 가는 인연이 별로 없다. 일년 단위로 만나던 사람이 사라진다. 나도 누군가의 일상에서 사라진다. 반면 도장 사람들과의 인연은 호흡이 긴 편이었다. 회사를 옮겨도 도장은 한 곳을 계속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 나조차 10년 넘게 다녔던 전 도장을 나와 지금의 도장에 와 있다.


도장에서 헤어져도 상대가 검도를 계속 하는 한 시합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한번 죽도 맛을 진하게 본 사람은 쉬어 칼을 할 수 있어도 꽂아 칼은 할 수 없는걸.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직접 입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검도에 푹 빠진 덕후들에게 이것은 불문율이다(다른 의견이 있을 순 있겠다).


검도가 싫어져서 아주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내 입장에서는 허전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환경으로 가는 것이니,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이제껏의 헤어짐은 그들이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었던 소식은 달랐다. 전에 다니던 도장에서 함께 수련한 할아버지 선배님의 부고였기 때문이다. 함께 한 공간을 차지했던 누군가가 사라지는 방식이,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완전한 사라짐일 수 있구나. 이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나이가 됐구나. 그 현실감을 느낀 소식이었다.


전에 다니던 도장은 지역구의 체육센터였다. 검도 외에도 수영, 골프, 유도, 배드민턴 등 다양한 체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배님은 부인과 함께 체육센터에 와서는, 치매가 있는 부인 분을 수영 쪽에 보내시고 본인은 윗층으로 올라와 검도를 수련했다.


깡마른 몸. 검은 테 안경. 흰 셔츠와 회색 바지. 얼굴에 가득한 주름. 나보다 검도를 늦게 시작하셨지만 내 입장에서는 대체할 단어가 없어서 ‘선배님'이라 불렀던 분. 가장 연장자로서 도장 관원들의 모임인 검우회 회장이시기도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결혼 언제 하냐" 같은 곤란한 질문을 안 하시는 분이라, 다른 노장부 선배님들과 비교했을 때 좀더 기억에 남아있다.


“검우회 회장 일도 본인이 원해서 하셨다기보다, 해야 하게 되서 맡아서 하신 거였어. 차분하게 얘기하시는 편이었고 성격이 부드러우셨어.” 늦은 나이에 검도를 시작했지만 그에 대한 열정도 있으셨다고, 나보다 더 오래 할아버지 선배님과 도장생활을 한 애인이 말했다.


나도 그분에게서 의외의 열정을 엿본 기억이 난다. 승단심사나 시합장에 종종 찾아오셨던 순간. 젊은 사람도 당사자가 아니면 심사장에 안 오는데 무슨 일이시지 하고 내심 놀랐다. 심사장의 분위기, 승단심사할 때의 심사위원들 행동 등을 유심히 관찰하셨던 듯했다.


그분의 모습과 목소리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분과의 구체적인 대화나 에피소드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선배님을 안 보고 지낸 지 5년이 지났으니 기억이 흐릿할 법도 하다. 그래도 나를 살뜰히 챙겨주던 실력 좋은 선배님과의 추억은 10년 전의 일도 제법 기억하는데. 누군가의 기억을 마음에 담는 일은 내 마음 속에서 공평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타인을 일일히 신경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운동 시간도 겨우 틈내어 오는 상황에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촘촘하게 살피기란 피곤한 일인 것을. 나조차 못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을 대할 때 몸에 밴 어떤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느낀다. 함께 수련하던 누군가에게 큰일이 닥쳤을 때 그 소식에 무감하지 않는 성의. 전 도장 사람들의 대화에서 그분의 부고를 듣고도 바로 전하지 않는 사람의 무심함을 엿보고 말았다.


전 도장에서 예전에 치렀던 시합 때의 사진을 찾아봤다. 다른 노장부 어른들과 함께 손가락 브이를 그리며 웃는 할아버지 선배님. 혹시 옛날의 나는 선배님이 나에게 말을 걸 때 뭔가 귀찮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을까. 선배님은 내 말투에서 그런 감정을 읽었을까. 마음의 여력이 없었던 그 순간의 나는 눈앞의 사람을, 그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는 감각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근데 애인 왈 할아버지 선배님이 본인한테는 “결혼 언제하냐"는 질문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내 기억에서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던 그분의 성격 중 하나는 그냥 나와 별로 안 친하셔서 안 물어보셨던 것으로...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련했던 일상을, 서툴게라도 말을 붙이며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하셨던 순간들을, 아내분을 꾸준히 챙기며 함께 하려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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