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기다려주기

동네 수영장의 파란색, 작은 슈퍼의 제품 홍보문구

by 이소

퇴사 3주만에 엄마와 싸웠다. 시간 있을 때 집안 청소하라는 주문이 이어진 끝에 큰 소리가 오갔다. 33살 이제 장년의 나이로 향하는 딸내미가 끝내 못 미더우셨던 건가. "이력서는 쓰고 있어?" 웃는 얼굴로 여러 번 물어보셨던 건 불안해서였을까.


줍는풍경3: 수영장의 파란 물


파란 물색깔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수영장을 찾았다. 화를 내고 나면 마음도 그렇지만 몸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몸이 화를 가라앉히는 리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푸른 물 속을 떠다니다 보면 마음 속 화도 물의 리듬에 따라 출렁이다 가라앉는다.


이젠 좀 이력서도 쓰긴 해야지. 몇 군데 찜해놓은 회사의 이력서도 있으니까. 자꾸 자신없는 부분은, 회사 채용공고 속 내가 어떤 인재인지를 묻는 질문에 어떤 말로 답할 수 있을까. 나를 설명할 구체적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


줍는풍경4: 작은 슈퍼의 제품안내 문구


수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작은 슈퍼에 적힌 각종 홍보문구가 디테일하면서 귀엽다. "'개밥' '간식' '패드' '고양이 사료 판매'" "전구, 멀티 건전지 판매합니다" "수평선반, 석쇠, 뚜러펑, 우산"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물건들을 팔기 위해 고객들에게 세세하게 물품을 알리는 절실함이 가늠되니까. 판매하는 물건들의 목록을 재미있게 적어놓은 저 가게처럼, 나도 나 자신을 설명할 단어나 맥락 같은 게 떠올려지면 좋겠다.


단, 왠만하면 머릿속에서 빨리 떠오르게 해달라고 자신을 닥달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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