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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22. 2018

“이제부터 미용실 안 가도 되겠다!”

작은 용기로 시작한, 스스로 머리카락 깎기 첫 도전

집에서 앞머리만 간간이 깎던 내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얼마 전 아는 분이 스스로 머리 손질했단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자꾸만 욕망이 꿈틀댔다. 나도 한번 내 머리카락 온전히 깎아볼까? 바로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앞머리야 눈 찌를 때마다 자주 잘라봤지만 내 힘으로 옆머리, 뒷머리까지 깎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기에.

 

헌데, 오늘 따라 앞머리가 자꾸만 눈을 찌른다. 딱히 보여줄 사람 없다지만 이리저리 뻗친 머리 매무새도 맘에 들지 않고. 하물며 샴푸까지 많이 드니 내가 깎든 미용실을 가든 어떡하든 너저분한 머리, 쫑을 내고만 싶다. 


 평생 단발머리 소녀로 지내던 산골새댁,  스스로 머리카락 깎는 덕에 갈래머리를 다 해봤음. 


달랑 미용실 한 곳 가자고 추운 겨울 산골을 벗어날 마음은 도저히 나지 않는다. 그래, 내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망치면 좀 어때, 시간 지나면 자라겠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지만 나는야, 내 머리카락 내 스스로 깎자고 결심! 혼자 머리카락 다듬는 영상을 대여섯 개쯤 봤다. 다들 긴 머리카락 작업을 보여주시네. 단발머리 다듬으려는 내 처지와 딱 들어맞지는 않으나, 뭔 말인지 감은 온다. 


저녁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산골 미용실 준비 시작~. 


밥상 위에 거울을 놓으니 좀 낮다. 눈에 팍 띄는 두꺼운 책 바로 괴기. 내 사랑 <보리 국어사전>이 요럴 때도 쓸모가 있을 줄, 예전엔 미처 몰랐지. 요래서 국어사전은 가깝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야 좋다는 말씀! 그러곤 가위 준비. 다른 때 숯불고기 자르던 부엌 가위를 꺼낸다. 고기도 자르는데 머리카락쯤 문제없겠지? 

열심히 찾아봤던 영상에서 가장 많이 내밀던 방식 따라,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곤 묶은 자리 바로 밑을 ‘댕강’ 치기 일보직전. 가위 든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이제라도 접을까, 불쑥 고개를 드는 걱정과 두려움을 가위로 싹둑 잘라낸다. 


슥슥슥슥 삭삭삭삭, 스스슥 사사삭.


머리숱도 적건만, 동그랗게 묶은 머리라 그런지 한방에 안 잘린다. '슥슥슥슥 삭삭삭삭. 스스슥 사사삭.' 뭔가 서늘함이 느껴지는 가위질 소리 따라 왼쪽 갈래머리 먼저 댕강 떨어지고, 곧이어 오른쪽 갈래머리도 싹둑. 너무 많이 잘랐나? 머리끈 풀 용기가 바로 안 난다. 심호흡 몇 번 하고서 간신히 머리끈을 푼다. 좌라락~. 옆머리 뒷머리가 제자리를 찾아가니 그제야 안심. 일단, 크게 이상하지는 않으니까!


갈래머리 밑동을 싹둑 잘랐다! 허걱!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삐죽 길게 삐져나온 머리카락 다듬고, 뒷머리가 엉성하기에 대충 손짐작으로 더 자르고 나니 십 분도 채 안 돼서 급작스레 열린 산골 미용실 업무 끝! 이 거울 가서 보고, 저 거울 가서 보아도 그럭저럭 괜찮다. 더구나 겨울이라 어디 나갈 때 두꺼운 겉옷에 모자까지 푹 눌러 쓸 테니 여전히 삐뚤빼뚤한 뒷머리도 크게 문제없음이야. 


“야호, 이제부터 미용실 안 가도 되겠다!” 


살면서 처음 도전해본 스스로 머리카락 깎기. 보면 볼수록 썩 마음에 드니 앞으로 계속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서너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미용실. 고거 한 번 시간 내기가 그리 어려워선, 산골새댁 맘에 맞는 미용실 찾기도 만만찮아서 자주 헝클어진 머릿결로 지내왔건만. 이젠 머리 손보고 싶을 때마다 자유롭게, 마음껏 해보련다. 


실수하는 건 크게 문제되지 않아.
오히려 실수할까 봐 걱정돼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지.
실수하는 게 두려워서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진짜 실패가 아닐까?


스스로 머리 만지기 도전을 앞두고 할까 말까 어느 때보다 고민에 싸였던 오늘 아침. 인터넷 어디선가 스치듯 만난 이 글귀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두근두근: 변화의 시작>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란다.) 


숯불고기 자르던 부엌가위, 머리카락도 참 잘 자르더구나!

참말이지, 이 산골에서 어디 나갈 데도 없는데, 머리 모양 좀 실패한다고 사는 데 아무 영향 없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단지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걱정부터 하고, 실수하고 실패할까 봐 쓸데없이 두려워했다는 것. 아침에 본 저 글귀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지금, 새삼 확실히 알 것도 같다.




'1만원 조금 넘는 미용값, 그보다 조금 작게 드는 차 기름값. 더불어 산골 집에서 머나먼 미용실 오가며 길에 흘리는 한두 시간 남짓.' 스스로 머리카락 깎기 첫 도전에서 내가 얻은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돈보다도, 시간보다도 훨씬 더 큰 걸 얻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앞서 도전하고 실천부터 해보는 ‘작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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