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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Sep 13. 2020

호박 대신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던 호박잎

여름 산골밥상 최고 인기 반찬!

보통 여름이면 호박을 

지겹도록 먹는다. 

냉장고에 넣기엔 부피가 크니

열리고 또 열리는 호박을

부치고 볶고 끓이고 하면서

상하기 전에 먹고 또 먹곤 했다.  


올해는 긴 장마에, 태풍에

많은 작물들이 비실비실하더니 

호박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따서 먹은 걸로 끝이다.


가장 늦게 익는 늙은호박도 

다른 해보다 아주 적게 열려서

마지막까지 잘 익기만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다.


긴 장마에 태풍까지 겹쳐 호박 열매가 덜 열린 대신 호박잎만큼은 넉넉히 따 먹을 수 있었다.


호박이 덜 열린 덕분에(?)

광합성으로 키울 열매가 없으니

호박잎만큼은 미안한 마음 없이

넉넉히 딸 수 있었다.


새우, 멸치, 호박 줄기, 두부랑

된장을 넣어 폴폴 끓인 강된장과

푹 쪄낸 푸른 호박잎의 만남! 


찰지게 담백하고도 달큼한 맛이

호박잎 씹는 맛과 어우러지며

먹을 때마다 신기할 만큼 맛있었다.  


이토록 단순한 음식이

이토록이나 매력이 넘칠 수 있다니! 


강된장과 푹 쪄낸 푸른 호박잎의 만남! 매력 넘치게 맛있었다.


맛만 좋은 게 아니다.

인터넷이 알려 주는 호박잎 효능은

너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에 좋다는 것. 


물론, 과유불급이 중요.

찬 성질이 있어서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단다.


광복절 앞뒤로 어이없는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띄엄띄엄 산골손님들이 다녀가셨다.

강된장에 호박잎만 내드려도

다들 얼마나 좋아들 하시던지.

여름 산골밥상 최고 인기 반찬이었다.


여름 산골밥상의 최고 인기 반찬이었던 호박잎찜.


호박잎 풍성한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이 단순하고도 매력 넘치는 호박잎찜을 

양껏 맛 보여 드리고 싶었건만...


애꿎은 광복절 기도 사태(?) 뒤로는 

그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날이 서늘해지면서 샛노란 호박꽃 뒤로 

푸릇하던 호박잎은 하나둘 시들어 가건만...


샛노란 호박꽃 뒤로   푸릇하던 호박잎이 하나둘 시들어 간다. 이제 한두 번쯤 더 먹을 수 있으려나.


산골에 오기로 했지만

결국 오지 못하게 된, 

함께 먹었으면 훨씬 더 맛났을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산골부부는 

호박잎찜을 먹는다.


‘언니들도 참 맛있게 먹었을 텐데...’


아쉬움을 달래며. 


올여름 호박잎을 따고 다듬는 일은

오롯이 옆지기가 해냈다. 

이것저것 맛깔나게 섞어 만든,

밥에 그냥 비벼 먹어도 엄청 맛났던

강된장 또한 모두 옆지기가 만들었다.

나는 그저 우걱우걱 먹기만 했을 뿐.


호박잎 따고 다듬고, 강된장 만들기까지 오롯이 해낸 옆지기가 참 고맙다. 


게으른 데다가 단순무식까지 한 나는

호박잎 시들어 가는 지금에야 

옆지기한테 말을 건넨다.   


“여보, 호박잎이 몸에 되게 좋대.

그래서 그렇게 입에도 몸에도

쏙쏙 들어왔나 봐. 

그동안 호박잎 다듬는 거 힘들지 않았어?

한 번도 같이 안 한 게

이제야 미안하니 이걸 어째.ㅠㅜ

쨌든 쨌든 어쨌든~~

맛있고 몸에도 좋은 호박잎찜 

편안히 먹을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진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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