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둥근 박을 바라봅니다
새하얀 박꽃이 지고
연둣빛 동그란 열매가 맺혔을 때,
신기하고 놀랍고 어여뻐
그 앞에 서서 보고 또 보았어요.
탁구공보다 작던 박이
자라고 또 자라서
핸드볼 공만 하게 매달렸을 때,
복덩이가 굴러 들어온 것마냥
마냥 행복한 웃음이 흘렀어요.
그땐 미처 몰랐죠.
싱그럽게 푸르던 열매가
이렇게나 빨리 생을 마칠 줄은.
사람살이도 자연살이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문득문득 벌어지네요.
갈색으로 멍이 든 커다란 박 두 덩이가
퍽 하고 땅으로 스러졌어요.
말할 수 없이 허망하였지만
사람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는 일.
땅으로 다시 돌아간 박을 보며
그동안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고 생각하면서요.
마지막 남은 복덩이 하나.
이것마저 썩어 버릴지,
튼실하게 자라서 흥 나게
박탈 시간을 안겨 줄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보려고요.
하나 남은 저 박이 힘껏 자라서
하얀 박속으로 나물 만들고
시원한 국 끓일 시간을
안겨 줄 거라고요.
날마다 박을 보면서
마음에 복을 짓고도 싶어요.
욕심 버리기, 사랑 키우기,
행복 나누기, 건강 지키기....
이 또한 욕심일 수도 있지만
박이 익는 동안
제 마음도 익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큼은
마음에 품고
오늘도 박을 바라봅니다.
둥근 박이 있기에
코로나가 여전히 지배하는 이 가을이
조금은 덜 쓸쓸하고
조금은 덜 힘겨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이 제 마음에 심어 준
희망과 기다림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