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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Sep 23. 2020

“여기까지 온 거, 그걸로도 충분해”

못생긴 사과, 못생긴 내 얼굴~♪

산골혜원네 과일농사의 

가장 큰 희망이었던 사과.

겉모습은 작고 거무스름하여도

속살만은 새콤달콤 무지 맛났던

텃밭 사과가 올해는 마구마구 썩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사과는 그럭저럭 잘 익어 가는 듯했다. 
이 가을, 텃밭에 있는 사과나무의 거의 모든 열매들이 검붉게 썩고야 말았다. 


검붉은 빛으로 매달린 사과

땅으로 떨어져 푹 터진 사과.


끊임없이 내리던 비 때문일지,

다른 해보다 벌레가 많았을지,

사과나무가 힘이 좀 달렸을지,

바라보기가 못내 애처롭고 안쓰럽다.    


“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해 

그놈의 손가락질 받기 싫지만
위선은 싫~다아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생긴 걸 어.떡.해~~♪”

_못생긴 얼굴(한돌 글, 곡, 노래)


사과나무 앞에만 가면

이 노래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못생긴 사과가 꼭 나를 닮은 것 같은,

아니, 못난 내 모습이 사과를 닮은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사과나무에서 딱 하나, 먹을 수 있어 보이는 사과를 귀하게 얻었다.


아, 참으로 다행히도 딱 하나!

먹을 수 있어 보이는

사과를 만났다.


붉고 거무튀튀한 때깔에

움푹 팬 곳이 있지만

만져 보니 딴딴했다.   


제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반 가르니 

하얀 속살이 보였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ㅠㅜ


벌레 먹은 자리들 잘라 내니

울퉁불퉁 사과 몇 조각이 나왔다.

예년보다 살짝 맛은 덜했지만

새콤하고 달콤하고 아삭한 

텃밭 사과 본연의 맛만은

오롯이 살아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반 가르니 하얀 속살이 보였다!
어렵게 살아남은 사과 한 알이, 출처 모를 꾸중에 주눅 들었던 내 마음을 보듬어 주는 듯하다.


사과 두 조각씩 사이좋게 

옆지기랑 나누어 먹으니

기분이 한결 상큼하다. 


사과나무 앞에만 서면

‘더 제대로, 정성껏 살라고’

꾸중받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어렵게 살아남은 사과 한 알이,

출처 모를 꾸중에 주눅 들었던 

내 마음을 보듬어 주는 듯하다. 


‘많이 힘들었지. 좀 모자라도 괜찮아, 좀 못생겨도 상관없어.
여기까지 온 거, 그걸로도 충분해. 잘 해냈고, 잘 살아온 거야...’


사과 두 조각 먹은 힘으로 

다시 두 주먹 불끈 잡는다.


쌀쌀한 날씨에 움츠린 몸으로 

‘올해가 벌써 다 가네~

해 놓은 것두 없는데....’ 하면서

아쉽고 헛헛하고 조금 서럽기까지 하던, 

못난 마음도 단디 다잡는다.


텃밭에서 자라는 사과나무 덕에 꾸중도 듣고 위로도 받는다.


‘올해가 넉 달이나 남았네~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야. 

내 앞에 놓인 일들

내 앞에 다가올 일들 

모두 모두 두 팔 벌려 

힘차게 소중하게 껴안아야지! 

날마다 똑같아 보이는 산골살이,

날마다 새로이 길 떠나듯이

오늘도 새롭게 열어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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