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러운 고구마 농사를 갈무리하며
옆지기가 고구마를 캤다.
나는 흙 묻은 고구마를 담는다.
얇고 작고, 그나마 얼마 달리지도 않고.
7년 산골살이에서
올해 고구마 농사가
가장, 처절히, 안쓰럽게 되었다.ㅠㅜ
올겨울 날아들 산골손님들께
군고구마 좀이라도 내줄 걸 생각하니
식구들한테 나누는 것조차
그예 마음을 접어야 할 지경이다.
식량에 준하는 고구마를 거둘 땐
늘 풍성한 웃음에 겨웠는데
이번엔 못내 아쉬운 맘이 컸다.
칼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아랫목 차지한 고구마를 바라보면
맘 가득 뿌듯해지곤 했는데....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옆지기가 고구마 곳간 빈자리를
고구마줄거리 묵나물로 채워 보잔다.
“그래, 그것참 좋은 생각이야!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신통도 하지~^^”
고사리, 취나물, 머윗대 등등
몇 가지 묵나물은 꾸준히 만들었으나
고구마줄거리로는 여직 안 해 봤다.
취나물, 고사리보다 왠지
덜 귀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안 그래도 바쁜 가을에
요것까지는 당최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사거나 선물 받아서 먹어는 보았음.)
치렁치렁한 고구마줄거리를
한 가닥 두 가닥 죄다 뜯어서
장작 피우고 큰 솥에 데쳐 햇볕에 넌다.
연둣빛 줄기들이 참 통통하게 곱다.
주로 봄에 하던 나물 말리기를
가을에 하는 느낌이 은근 새롭다.
전 같으면 거의 땅으로 보냈을 것을
먹을거리로 살려내는 것이기에
보람도 참 남다르다.
올봄엔 헤매는 맘 다스리기에
하염없이 헤매다 보니
뭐든 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 좋아하던 나물하는 것도
다른 해보다 한참 많이 덜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보니
취나물도 고사리도 적기만 하고
다른 나물들은 아예 없기도 하니
산골 나물밥상에 빨간 등이 켜질 듯한 나머지
산에 들에 덜 나갔던 시간들을
후회도 반성도 많이 했다.
이젠 그럭저럭
마음 놓아도 되겠다.
고구마줄거리 나물이 생길 테니까!
벌이가 적거나, 없거나를 되풀이하면서
산골살림을 꾸려 가자니
‘돈’으로 마음 나누는 일을
잘 못하면서 살아간다.
대신 텃밭에서, 산에서 뭐라도 생기면
건강한 먹을거리로 둘레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려고 애썼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참 행복했다.
가진 거 없어도 마음 곳간만큼은
쑥쑥 들어차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올해는 텃밭농사가 거의 모두
바닥을 치는 바람에
산골혜원네 그 작은 곳간이
참 많이 헐렁하기만 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으로만 알아 왔던 그 이야기가
새삼스레 서럽게 떠오르곤 했다.
속담이 꼭 맞는 말만 하겠느냐고,
혼자 도리질도 해 보지만
왠지 저 속담 앞에서는 그저
작아지는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 하늘 아래 하루하루 쪼그라들고
빛깔이 달라지는 고구마줄거리.
곧 있으면 나물 곳간을 채워 줄
이 소중한 먹을거리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인심(人心)’이라 함은 국어사전 가라사대,
‘남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알아주고 도와주는 마음’이라고 하니!
작은 곳간에서도 인심 나고
마음 곳간에서도 인심 나고,
그렇게 인심이란 어디서든
어떤 처지에서든 날 수 있고
또 낼 수 있는 게 맞을 거야.
특히 특히! 마음 곳간만큼은
마음만으로도 가득 채울 수 있으니까아~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 하나에
더는 쓸데없이 서러워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