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Sep 27. 2020

마음 곳간 빈자리 채워 줄 고구마줄거리 묵나물

안쓰러운 고구마 농사를 갈무리하며

옆지기가 고구마를 캤다. 

나는 흙 묻은 고구마를 담는다. 

얇고 작고, 그나마 얼마 달리지도 않고.

7년 산골살이에서

올해 고구마 농사가 

가장, 처절히, 안쓰럽게 되었다.ㅠㅜ 


올겨울 날아들 산골손님들께

군고구마 좀이라도 내줄 걸 생각하니

식구들한테 나누는 것조차 

그예 마음을 접어야 할 지경이다. 


7년 산골살이에서 올해 고구마 농사가 가장, 처절히, 안쓰럽게 되었다.


식량에 준하는 고구마를 거둘 땐 

늘 풍성한 웃음에 겨웠는데

이번엔 못내 아쉬운 맘이 컸다.

칼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아랫목 차지한 고구마를 바라보면

맘 가득 뿌듯해지곤 했는데....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옆지기가 고구마 곳간 빈자리를 

고구마줄거리 묵나물로 채워 보잔다.


“그래, 그것참 좋은 생각이야!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신통도 하지~^^” 


고사리, 취나물, 머윗대 등등

몇 가지 묵나물은 꾸준히 만들었으나

고구마줄거리로는 여직 안 해 봤다.

취나물, 고사리보다 왠지

덜 귀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안 그래도 바쁜 가을에 

요것까지는 당최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사거나 선물 받아서 먹어는 보았음.)


치렁치렁한 고구마줄거리를 

한 가닥 두 가닥 죄다 뜯어서 

장작 피우고 큰 솥에 데쳐 햇볕에 넌다.

연둣빛 줄기들이 참 통통하게 곱다. 


치렁치렁한 고구마줄거리를 한 가닥 두 가닥 죄다 뜯어서 묵나물 만들 준비를 한다.


주로 봄에 하던 나물 말리기를

가을에 하는 느낌이 은근 새롭다.  

전 같으면 거의 땅으로 보냈을 것을

먹을거리로 살려내는 것이기에 

보람도 참 남다르다.   


올봄엔 헤매는 맘 다스리기에 

하염없이 헤매다 보니

뭐든 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 좋아하던 나물하는 것도

다른 해보다 한참 많이 덜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보니

취나물도 고사리도 적기만 하고

다른 나물들은 아예 없기도 하니

산골 나물밥상에 빨간 등이 켜질 듯한 나머지

산에 들에 덜 나갔던 시간들을

후회도 반성도 많이 했다. 


이젠 그럭저럭 

마음 놓아도 되겠다. 

고구마줄거리 나물이 생길 테니까! 


통통하게 곱던 연둣빛 줄기들이 가을 하늘 아래서 조금씩 쪼그라들며 어두운 빛깔로 바뀐다.


벌이가 적거나, 없거나를 되풀이하면서

산골살림을 꾸려 가자니

‘돈’으로 마음 나누는 일을 

잘 못하면서 살아간다.


대신 텃밭에서, 산에서 뭐라도 생기면

건강한 먹을거리로 둘레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려고 애썼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참 행복했다.  

가진 거 없어도 마음 곳간만큼은

쑥쑥 들어차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올해는 텃밭농사가 거의 모두

바닥을 치는 바람에 

산골혜원네 그 작은 곳간이

참 많이 헐렁하기만 하다.


헐렁한 고구마 곳간을 고구마줄거리 나물로 채울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줄기나마 잔뜩 내준 고구마한테 참 고맙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으로만 알아 왔던 그 이야기가

새삼스레 서럽게 떠오르곤 했다. 

속담이 꼭 맞는 말만 하겠느냐고,

혼자 도리질도 해 보지만

왠지 저 속담 앞에서는 그저

작아지는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 하늘 아래 하루하루 쪼그라들고

빛깔이 달라지는 고구마줄거리. 

곧 있으면 나물 곳간을 채워 줄

이 소중한 먹을거리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인심(人心)’이라 함은 국어사전 가라사대, 
‘남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알아주고 도와주는 마음’이라고 하니!  

작은 곳간에서도 인심 나고

마음 곳간에서도 인심 나고, 

그렇게 인심이란 어디서든 

어떤 처지에서든 날 수 있고 

또 낼 수 있는 게 맞을 거야.


특히 특히! 마음 곳간만큼은 

마음만으로도 가득 채울 수 있으니까아~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 하나에

더는 쓸데없이 서러워하지 말지어다.^^       


작가의 이전글 “여기까지 온 거, 그걸로도 충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