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Feb 01. 2021

“그리운 동치미야~ 1년 뒤에 다시 만나자, 꼬옥!”

마음에도 참 귀한 약, 항아리 동치미

항아리 바닥까지 싹싹 긁었다.

마지막 동치밋국을 위하여.


동치미는 간 맞추기가 어렵다.

어느 해는 너무 짜서 들입다

물을 부어 먹고. 

올해는 간이 약한지 딱 맞는지, 

암튼 푸는 족족 물처럼 마셨다.

아니, 물보다 더 잘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국물 없는 항아리에

작은 무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국물 없는 동치미 항아리에  작은 무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추운 날이 많았던 올겨울, 

항아리마저 얼어 버릴 기세였다. 

동치미 국물은 물론이고

무까지 땅땅 얼어붙기를 여러 번.


그늘진 데 있던 항아리를

햇볕 자리로 옮겨

그저 녹기만을 기다렸다가 

무도 건지고 국물도 퍼냈다. 


얼음 동동 뜬 국물은 

어찌나 알싸하고 시원한지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들어갔다. 


얼음 동동 뜬 동치밋국은 어찌나 알싸하고 시원한지 물보다 더 잘 넘어갔다.


얼었다 녹은 동치미 무는 

어데서 한 대 맞아 멍이라도 든 듯 볼품이 없었다. 

이걸 우찌 먹을꼬,

속상한 맘으로 썰어 입에 넣어 보니~

웬걸, 달짝지근하고 맛있네! 

과일이라도 먹는 기분. 

거참 신기했다.


어떤 날은 새벽에 깨어나

동치미가 든 통째 들고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또 어떤 날은

아침부터 물 대신

동치밋국을 마셨다.


그러면 살 것 같았다.

술로 쓰린 속이든

속상한 일로 쓰라린 마음이든. 


겨울을 맞아(?) 불쑥불쑥 몰아닥치는 삶의 응어리들이 힘겨울 때면 꼭 동치밋국을 들이켰다. 그러면 살 것 같았다


겨울이면 이때다 싶은지  

마음 깊은 곳에 응어리진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나 여기 있어.’ ‘나도 나도!’ 


모른 척했던, 혹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몰아닥치는 응어리들이 힘겨워 

베갯잇 적시며 흐느끼기도 하고

소리 없는 앞산을 향해

소리치며 하소연도 하고.


그러고 나면 꼭 

동치미를 찾았다.

어딘가 턱 막힌 듯 

삶이 체한 것 같은 순간들을

동치밋국을 마시며, 무를 씹으며

애써 흘려보내고 떠나보낼 수 있었다.  


봄이 오기 전까진 좀 더

기대고 싶었는데.

벌써 마지막 동치밋국을 마신다. 

(다른 때는 2월 말까지도 먹었는데.)


항아리 동치미는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것. 

그 동치미를 이다지도 빨리 비웠으니

내 맘에 봄도 더 성큼성큼 다가오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운 항아리 동치미야~ 이제 네가 없는 산골 겨울은 상상할 수가 없어. 1년 뒤에 우리 다시 만나자, 꼬옥!


“그리운 동치미야~

맨 처음 꽝꽝 언 모습을 봤을 때

어찌나 속상했던지 눈물까지 나올 뻔했어.

여러 번 동치미를 만들었지만

무까지 언 장면은 처음 봤거든.  

그렇게 내버려 두다니,

얼마나 자책했는지 몰라. ㅠㅜ


한데 넌 참 용하더라.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도

네 맛과 모습을 지켜 냈잖아. 

얼어서 더 맛있는 무는 대박!

완전 신세계였어^^


그리운 동치미야~

‘동치미 한 사발이면 의사가 필요없다’는

말 들어 봤니? 몸에 좋다는 건 알았는데

이번에 새롭게 깨달았지 뭐야.

마음에도 참 귀한 약이라는 걸.


너를 몸과 마음에 담은 힘으로

이젠 내 삶을 스스로 잘 소화시켜 볼게. 

몸도 마음도 참 추웠던 이 겨울,

기댈 언덕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  

네가 없는 산골 겨울은 이제 상상할 수가 없어.

우리 1년 뒤에 다시 만나자, 꼬옥!”   

작가의 이전글 자연도 사람도 불안한 시대일지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