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Feb 02. 2021

뛰는 재난지원금 위에 나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산골 프리랜서, '특고 프리랜서 3차 재난지원금' 신청에 실패(?)하고

혹시나 했다.


‘특고 프리랜서 3차 재난지원금’ 

신청 사이트 처음부터 왈, 

나는 신청 자격이 없단다. 


역시나 아니었다. 


‘에잇! 내 이럴 줄 알았어.

달마다 입금될 일 없는 프리랜서도

여기 있다구!ㅠㅜ’    


사이트를 냉큼 닫는다.

열어 보질 말걸.  

눈도 버리고 마음도 버렸다.


쓸데없이 허탈한 마음으로 

책장을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 한 권,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뛰는 재난지원금 위에

나는 기본소득 있을지니. 

이거나 한번 보자. 

농민 자격도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앞날은 모르니까! 


“도대체 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하나?”


첫 장부터 나오는 질문. 글쓴이의 답은 간단하다.

답) 농민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렇지.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 


“아니,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기 어렵다고? 그렇다면 굳이 농민이 농사를 계속 짓는 이유가 뭐야? 다른 살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글쓴이의 대답, 명쾌하다.  

답) 모든 사람은 안 먹으면 죽으니까.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생존을 보장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의 공익적 소임, 사회적 책무는 결코 게을리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아가 국가의 식량 기지, 인류의 생명 창고로서의 농촌을 농민들이 등지고 떠나면 안 되니까. 농민이 지키는 식량 주권이야말로 자주적인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권을 보증하고 담보하고 있으니까. 


옳소, 옳소! 명답일세!! 

아주 속이 후련하다.

이거 이거 책 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하다. 

이어지는 질문도 볼만한걸. 


“그런데 왜, 농민에게만 주어야 하나? 도시 노동자, 도시 빈민도 먹고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글쓴이가 말하길 ‘기다리던 좋은 질문’이고,  

‘충분히 준비된 답’이 있단다.

답) 농촌을 떠나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이제 농촌으로, 지역으로 하방해야 할 때가 되었다. 어서 고향으로, 지역의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야 한다. 농촌에 내려가서 농민이 되면 기본소득의 정상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농민 기본소득은 도시민으로 하여금 그동안 망설였던 그리운 귀향, 자발적 하방의 불안감과 공포를 해소해 주는 절묘한 약효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답을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깔깔 웃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돌고 도니까 결국 말이 된다. 

그야말로 변증법적 농민 기본소득론일세.


“그럼 도대체 돈을 얼마나, 어떻게 줘야 기대 효과를 얻을 수 있나?” 


당연히 나올 법한 질문이다. 

글쓴이의 답.       

답)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돈을 얼마든지 있다. 또는 필요한 만큼 재원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이 답에 대한 구체 방법들은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돈 이야기는 쪼매 복잡한고로 건너뛰기로 하고.  


농민에게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 아주 명쾌하고 유쾌하게 들려주는 책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한 달에 10만 원을 받든, 100만 원을 받든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 주는 농민’들은 이전과 다른 놀라운 의식과 태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공익농민 기본소득은, 농민들을 농사로 돈을 벌어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이기적, 고행적 상업농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준다.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이타적이고 창조적인 공익농사를 짓는 사회적 농부로 자유롭게 해 준다.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 사람 사는 세상을 앞당긴다. 결국 도시도 살리고 국가도 살린다.”


아, 이 글처럼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농민 기본소득은 

꼭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마음이 막 환했다가는

다시금 시무룩해진다.


농촌에 살지만 농민이 아닌 나. 

편집 프리랜서로 일은 하지만 

프리랜서 재난지원금도 신청할 수 없는 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내 정체성 때문에

그 좋은 농민 기본소득 앞에서마저도

한없이 작아지던 내 눈에

번쩍 뜨인 글이 있었나니! 


“무엇보다 농부들만 모여 사는 마을은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다채롭지 않습니다. 건강하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마을이라면 농부는 물론 교사, 예술인, 연구원, 작가, 운동가, 성직자, 기업가, 기술자, 상인이 한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래야 마을은 우주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져 짐이 되는 욕심과 욕망들을, 서로 나누고 덜어줄 수 있게 됩니다. 마침내 평화롭게 행복한 대동사회가 이루어집니다. 여기 ‘작고 낮고 느린, 오래된 미래마을’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농사짓지 않는 귀농인으로, 소시민이나 농민이 아닌 ‘마을 시민’으로 사는 새 길입니다.” 


“충남연구원에서 주장하는 농민 기본소득제는 ‘농촌 주민 기본소득제’이다. 심각한 인구 과소화, 인구절벽, 지역 소멸로 내몰리고 있는 농촌공동체를 재생, 보전하려면 농사짓는 농민 말고도 다양한 농촌 주민들이 농촌을 지키며 모여 살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소멸의 위험이 있는 마을 혹은 면 단위 지역 대상의 ‘농촌 주민 기본소득제’를 실시하자는 제안이다.”


역시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하는 법.

농민이 아니어도 

‘마을 시민’이자 ‘농촌 주민’으로

살아가면 되겠구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휴~ 다행이다. 살았다! ^^ 


특고 프리랜서 3차 재난지원금 신청에는 실패했지만, 나는야 산골 편집 프리랜서로  열심히 정성껏 오늘 하루를 살았다.


‘돈 안 되는 농사’를 짓고

어디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간간이 편집 프리랜서를 하며

이러구러 지내는 산골 부부. 


열 가구 좀 넘는 산골 마을에

책 만드는 부부 한 집쯤 있으면

글쓴이 말처럼 다채롭고 얼마나 좋아. 

그동안 괜스레 주눅 들고 살았네. 


농부님들께 왜 그런지 죄송스러워 

텃밭 농사라고 말은 하지만서도, 

도시에서만 살던 우리 부부한테

한 마지기 농사도 쉬운 건 아니라고. 


300평은 넘게 농사를 지어야

농민 자격을 준다는 법부터

다시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프리랜서 재난지원금 신청 자격을

어설프게 명시한 것도 그렇고. 

사각지대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정말이지 문제야, 문제!    


“‘돈 버는 농업’만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이 곧 미래 농정이 지향하는 최선의 농정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 사는 농촌’의 ‘주민’으로서

나도 그렇게 믿는다. 

믿고 싶다. 


그 믿음을 마음에 새기며

내 앞에 놓인 두툼한 교정지,  

어느새 잉크가 거의 떨어져 가는

빨간펜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사람 사는 농촌을 지키고 가꾸는 농촌 주민으로서, 빨간 펜과 더불어 책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이놈의 나라가 자격이 있네 없네

떠들든 말든, 

나는야 산골 편집 프리랜서로

열심히 정성껏 오늘 하루를 살았다.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사람 사는 농촌을 지키고 가꾸는   

농촌 주민이자 마을 시민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곳에 살면서

빨간 펜과 더불어 책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이전글 “그리운 동치미야~ 1년 뒤에 다시 만나자, 꼬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