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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10. 2021

마음의 빗장을 여는 치밀한(?) 택배 선물들

은혜는 잊혀 가고 서운한 일들만 생각날 때...

마음의 빗장을 여는 치밀한(?) 택배 선물

많이 춥던 어느 날, 연락 없이

택배 하나가 왔습니다.  


달력, 버선이랑 손전화 감싸개가

담긴 상자였습니다.

안 그래도 닳고 닳은 감싸개가 

조금은 불편했던 차였습니다.

바꿀 마음이야 요만큼도 없었죠.

집에만 있는데 새 걸 쓰면 뭐 하나, 

그랬거든요. 


보내온 것으로 바꾸니 

손전화에 꼭 맞았습니다.

불쑥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지? 

전화마다 크기가 다르잖아. 신기하네~^^” 


보내 준 이한테 물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 산골에 다니러 왔을 때

제 손전화랑 감싸개 사진을 슬며시

찍어 갔더랍니다. 

그러곤 그에 맞는 크기로 보냈다는 거예요.  


웬만해선 새로 사지 않을 걸

눈치챈 거겠죠. 

그게 마음에 쓰였던 거겠죠.   

생각지 못한 치밀한(?) 선물 작전에

뭉클하기만 했습니다. 


치밀한(?) 선물 작전 덕에 낡아빠진 손전화 감싸개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해요.

낡아빠진 감싸개 하나 바꿨을 뿐인데

뭔가 내 안에 갇혀 있던 낡은 기운도

확 벗어던져진 것 같더군요.  


어둠 속에 갇힌 듯 

무언가에 허덕이던 그때

뜻밖에 날아온 선물은 한 줄기 빛처럼

제 마음을 환히 밝혀 주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있을 때…존중하고, 없을 때…칭찬하고, 곤란할 때…도와주고, 은혜는…잊지 말고, 베푼 것은…생각지 말고, 서운한…것은 잊어라”_작자 미상


그날 왜 그렇게 울림이 컸을까요.

한동안 보고 또 보았습니다.

모든 글귀 하나하나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꼈습니다. 


가진 것들 두루두루 나누고 

할 수 있는 일 돕고 살 수 있을 때 

참 좋았습니다. 

사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부턴가 그 마음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은혜는 잊혀 가고

베푼 것은 떠오르고

서운한 일들만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살림살이가 쪼그라들어서 

마음도 따라가는 걸 거라고,

나름 유물론(?)에 입각하여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이 마음도 지나갈 거라고, 

조금씩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그렇지만 마음은 무언가 텅 빈 듯

휑하기만 했습니다.


나누는 기쁨이

삶을 키우고 보듬은

참 커다란 힘이었구나,

새삼 재삼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나눌

힘이, 의지가 

좀처럼 다시 샘솟지를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던 때였기에, 

그런 나를 조금 더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나를 방치했건만

사람들은 그대로 두지 않더군요.


배려 깊은 마음 씀씀이가 오롯이 담긴 굴비 선물에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어느 날 또 연락 없이

택배가 왔어요. 

귀해 보이는 굴비였죠.  


고기 못 먹는 나를 생각해서, 

생선 뼈 잘 먹는 우리 집 강아지도

좋아할까 싶어 보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화기 너머로 듣습니다. 

배려 깊은 마음 씀씀이에  

깊은 허기가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늘 가슴을 설레이게 합니다”

굴비 한 마리 굽던 날

상자에 쓰여 있는 글귀를

오래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꾹 닫혔던 마음의 빗장이  

삐이걱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나도 누군가한테 설레는 마음을

안겨 주고 싶다. 그래, 그게 사는 거지,

사는 힘이지, 사는 낙이지!’ 


그 마음을 어서어서 실천하라는 듯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택배들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산골부부를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마음들이 듬뿍 담긴 택배들.


빵과 귤을 보내고

곡식을 보내고 

양말을 보내고

과메기에 막걸리까지 이어집니다.


‘아니, 다들 우리 부부한테 왜 이러지ㅠㅜ’


미안한 마음은 애써 저리 밀어 두고 

그 안에 담긴,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마음들부터

기쁘게 받아 안습니다. 


다시 떠올립니다.

내 눈길을 한없이 붙잡았던 글귀를.

그리고 한 자 한 자 읽어 봅니다.


“있을 때 존중하고
없을 때 칭찬하고 
곤란할 때 도와주고
은혜는 잊지 말고 
베푼 것은 생각지 말고
서운한 것은 잊어라”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인연들 덕에 

조금이나마 열린 마음의 빗장을,

이젠 제힘으로 더 활짝 

열어젖뜨려 보고 싶어요.  


없고 없어 보일지라도 

잘 보면 분명 있을 거예요. 

함께 나눌 그 무언가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언 땅이 녹아 김매기하고

씨앗을 뿌릴 때가 되면, 그땐 꼭 

‘나누고 싶은 마음’도 같이

뿌려 보고 싶어요.


봄이, 어서 오면 좋겠어요. 

따스한 햇볕이 저를 도와줄 것만 같아요. 

꽝꽝 얼어 있던 내 마음을 

녹이고 보듬어 준 소중한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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