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잊혀 가고 서운한 일들만 생각날 때...
마음의 빗장을 여는 치밀한(?) 택배 선물
많이 춥던 어느 날, 연락 없이
택배 하나가 왔습니다.
달력, 버선이랑 손전화 감싸개가
담긴 상자였습니다.
안 그래도 닳고 닳은 감싸개가
조금은 불편했던 차였습니다.
바꿀 마음이야 요만큼도 없었죠.
집에만 있는데 새 걸 쓰면 뭐 하나,
그랬거든요.
보내온 것으로 바꾸니
손전화에 꼭 맞았습니다.
불쑥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지?
전화마다 크기가 다르잖아. 신기하네~^^”
보내 준 이한테 물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 산골에 다니러 왔을 때
제 손전화랑 감싸개 사진을 슬며시
찍어 갔더랍니다.
그러곤 그에 맞는 크기로 보냈다는 거예요.
웬만해선 새로 사지 않을 걸
눈치챈 거겠죠.
그게 마음에 쓰였던 거겠죠.
생각지 못한 치밀한(?) 선물 작전에
뭉클하기만 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해요.
낡아빠진 감싸개 하나 바꿨을 뿐인데
뭔가 내 안에 갇혀 있던 낡은 기운도
확 벗어던져진 것 같더군요.
어둠 속에 갇힌 듯
무언가에 허덕이던 그때
뜻밖에 날아온 선물은 한 줄기 빛처럼
제 마음을 환히 밝혀 주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있을 때…존중하고, 없을 때…칭찬하고, 곤란할 때…도와주고, 은혜는…잊지 말고, 베푼 것은…생각지 말고, 서운한…것은 잊어라”_작자 미상
그날 왜 그렇게 울림이 컸을까요.
한동안 보고 또 보았습니다.
모든 글귀 하나하나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꼈습니다.
가진 것들 두루두루 나누고
할 수 있는 일 돕고 살 수 있을 때
참 좋았습니다.
사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부턴가 그 마음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은혜는 잊혀 가고
베푼 것은 떠오르고
서운한 일들만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살림살이가 쪼그라들어서
마음도 따라가는 걸 거라고,
나름 유물론(?)에 입각하여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이 마음도 지나갈 거라고,
조금씩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그렇지만 마음은 무언가 텅 빈 듯
휑하기만 했습니다.
나누는 기쁨이
삶을 키우고 보듬은
참 커다란 힘이었구나,
새삼 재삼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나눌
힘이, 의지가
좀처럼 다시 샘솟지를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던 때였기에,
그런 나를 조금 더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나를 방치했건만
사람들은 그대로 두지 않더군요.
어느 날 또 연락 없이
택배가 왔어요.
귀해 보이는 굴비였죠.
고기 못 먹는 나를 생각해서,
생선 뼈 잘 먹는 우리 집 강아지도
좋아할까 싶어 보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화기 너머로 듣습니다.
배려 깊은 마음 씀씀이에
깊은 허기가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늘 가슴을 설레이게 합니다”
굴비 한 마리 굽던 날
상자에 쓰여 있는 글귀를
오래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꾹 닫혔던 마음의 빗장이
삐이걱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나도 누군가한테 설레는 마음을
안겨 주고 싶다. 그래, 그게 사는 거지,
사는 힘이지, 사는 낙이지!’
그 마음을 어서어서 실천하라는 듯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택배들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빵과 귤을 보내고
곡식을 보내고
양말을 보내고
과메기에 막걸리까지 이어집니다.
‘아니, 다들 우리 부부한테 왜 이러지ㅠㅜ’
미안한 마음은 애써 저리 밀어 두고
그 안에 담긴,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마음들부터
기쁘게 받아 안습니다.
다시 떠올립니다.
내 눈길을 한없이 붙잡았던 글귀를.
그리고 한 자 한 자 읽어 봅니다.
“있을 때 존중하고
없을 때 칭찬하고
곤란할 때 도와주고
은혜는 잊지 말고
베푼 것은 생각지 말고
서운한 것은 잊어라”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인연들 덕에
조금이나마 열린 마음의 빗장을,
이젠 제힘으로 더 활짝
열어젖뜨려 보고 싶어요.
없고 없어 보일지라도
잘 보면 분명 있을 거예요.
함께 나눌 그 무언가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언 땅이 녹아 김매기하고
씨앗을 뿌릴 때가 되면, 그땐 꼭
‘나누고 싶은 마음’도 같이
뿌려 보고 싶어요.
봄이, 어서 오면 좋겠어요.
따스한 햇볕이 저를 도와줄 것만 같아요.
꽝꽝 얼어 있던 내 마음을
녹이고 보듬어 준 소중한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