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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10. 2021

메주를 띄우며

후회와 자책만 일삼던 나에게 

겨우내 메주를 말렸다.

마당에서도 햇볕이 

가장 따사로운 자리에서. 


꾸덕꾸덕 단단히 마른 메주를

이불 겹겹이 싸서 

뜨뜻한 아랫목에 띄웠다. 


일주일을 넘기니 

메주 곰팡이가 구석구석 잘 피었다.

이만하면 될 것 같다.


다시 겨울 하늘 아래

메주를 맡긴다. 

장 담그기 전까지

햇살과 바람과 밤이슬까지

메주한테 힘이 돼 주길 빌면서.  


겨우내 마당에서도 햇볕이 가장 따사로운 자리에서 메주를 말렸다.

메주를 널고 

마당 끝자락에 있는

장독대를 보았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어대도

장독들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 안에 담긴 

된장과 간장도

아마 그럴 테지. 


또다시 비틀거리고 휘청거릴 때 저 장독대가 나를 붙잡아 줄 거야.


지난해 12월,  

메주를 만들던 그즈음.

좋지 않은 생각에 좀 휘둘렸다.


콩을 씻으며, 

메주를 쑤고 빚으며

스스로에게 빌고 또 빌었다.


메주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나쁜 생각은 안 된다,

좋은 생각만 해야 된다.

메주가 다 듣는다.

이도 저도 안 되겠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내내 화덕 앞을 지킨 옆지기 덕분인지

콩은 되직하게 잘 쑤었고

메주도 곱게 빚을 수 있었다. 


곱게 빚은 메주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이쁘기만 하다.
메주 곰팡이들이 구석구석 잘 피었다. 이만하면 잘 띄웠다.


지난 한 해 

후회도 많았고

힘든 시간도 길었다. 

잘한 일도 분명 있을 텐데

못한 일들만 자꾸 생각나곤 했다.  


메주를 감싸듯이 피어난

귀한 곰팡이들을 보면서

그 메주를 대나무에 매다는

옆지기를 보면서

그리고

장독대를 바라보면서 


후회와 자책만 일삼던 나한테

아주 오랜만에 칭찬을(?) 

들려주었다. 


‘벌써 여덟 번째나! 거르지 않고

장을 만들어 온 거

그것참 장~한 일이야!


그만하면 잘 살았어.

그걸로도 충분해.

뭘 더 잘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니,

안쓰럽게스리. 


가끔 흔들리면 어때,

그러면서 익어 가는 거지.

천천히 느리게 

저 간장처럼 된장처럼. 


또 비틀거리는 순간이 오거들랑

메주랑 장독대한테 기대 봐.

휘청거리되 쓰러지지는 않도록

아마 너를 붙잡아 줄 거야.

그러니까 이젠 웃자, 웃어 보자!^^’


종일 불을 지키며 메주를 쑨 옆지기한테도 마음으로 커다란 칭찬을 보낸다.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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