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Oct 28. 2021

"들깨란 거, 기르면 안 되는 작물 아냐?"

만만치 않은 들깨 타작을 마치고

올해는 들깨를 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음...

들깨 털기를 하기 싫어서였을 겁니다.

애써 갈무리한 들깨를 제때 먹지 않아서 

벌레와 곰팡이에게 내주고는,

그예 땅으로 돌려보냈던 숱한 시간을

되풀이하기도 싫었을 겁니다.


농사가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지난해, 또는 언젠가 길렀을 들깨 씨앗이

텃밭 곳곳에서 잠자고 있었나 봅니다.

이쪽에 쑤욱, 저쪽에도 쑥 하고

새싹들이 쑥쑥 올라왔습니다.

지난봄에요. 


이곳저곳에서 하도 많이 보이니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더군요. 

곳곳에 퍼져 있는 들깨 싹을 옮겨서 

밭이랑 하나를 들깨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또는 언젠가 길렀을 들깨 씨앗이 텃밭 곳곳에서 잠자고 있었나 봅니다. 심지도 않은 들깨가 저절로 자랐어요.


‘기왕지사 니들이 원해서 태어났으니

너희들 힘으로 열심히 살아 보그래이.

내는 다른 작물 돌보기도 바쁭께

너네한테까진 눈길 손길 못 준데이,

아니 안 줄 거래이. 

내사 계획에 없던 일까지 신경 쓸 

여력도 맴도 암튼 다 모지라당께!’


아따메~

잘도 자랍니다.

진짜루 암것도 안 해 줬는디. 


돌보지 않은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저 

깻잎 몇 번 따서 먹고

들깨 장아찌 조금 하고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어쩌겠나요.

한껏 영근 들깨가 톡톡 

땅에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는걸요.


들깨를 베고, 털고, 말리고.

옆지기가 열심히 손을 놀리는 동안

저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들깨를 베고, 털고, 말리고. 옆지기가 열심히 손을 놀리는 동안 저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작은 그릇 가득하게 담긴 들깨가

햇볕 아래 놓인 모습을 보고는,

더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일은, 그거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저절로 자란 들깨를 위해,

들깨 털기에 애쓴 옆지기를 위해,

그리고 꾸역꾸역 어떡하든

산골살이를 꾸려 가려고 애쓰는 나를 위해.  


검불 가득한 들깨를 갈무리하기가

엄청 만만치 않습니다.


“후, 후우우, 후후~”


입으로 불고 또 불고. 

손으로 골라내고 또 골라내고. 


“엣취!”


바람에 날리던 작디작은 들깨 껍질이 

코와 입으로 들어오면서

재채기가 막 일어나고요, 

콧물도 촉촉하게 내립니다.


검불 가득한 들깨를 갈무리하기가 엄청 만만치 않습니다.


고작 한 이랑에서 난 들깨 갈무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던 순간 순간 마음이 이랬습니다.


‘들깨란 거, 이거 기르면 안 되는, 

아니 먹어선 안 되는 작물 아냐?

이렇게 작은 알맹이들을 

티끌 하나 없이 골라낸다는 거

그게 말이 돼? 가능해? 

시장에서 파는 알알이 깨끗한

그 들깨들은 대체 으찌 만들어낸겨?’ 


의혹과 불신이 넘나드는 들깨 갈무리,

인내와 기다림 속에 끝내 마무리했습니다.  


처음에 그리 많디 많던 검불도

며칠 걸쳐 날리고 고르고 하니 

1밀리도 안 될 듯한 들깨 알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차암 곱게도요! 


의혹과 불신이 넘나드는 들깨 갈무리, 인내와 기다림 속에 끝내 마무리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해 가꾸고 거둔 들깨가

한 알도 건드리지 않은 채

고스란히 창고에 있습니다. 


들기름 짤 양은 정말 아니고,

들깻가루 만들기는 귀찮고,

그러다 보니 눈 밖에 나 버린 그 들깨.

볼 때마다 속상했습니다.


제때 밭 갈고 씨 뿌려 갈무리까지 해 놓고는

몸으로 들이지 않는 것. 

싫었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농사니까요. 

(들깨를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요.) 


들깨 농사 8년 차에 

처음으로 마음을 먹습니다. 

올해 들깨는 물론이고

지난해 것까지 알차게 올곧게 

몸과 마음에 들이겠노라!  

내가 선택한 농사에 책임을 지자!! 


들깨 타작을 마친 지금이, 글씨에 마음을 새기는 이 순간이 참 좋습니다.


어쩌다 보니 참 오랜만에 

글자로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소한 들깨 향이 

마음을 일렁였을까요. 

따땃하고도 시원하게 내리쬐던, 

가을볕 아래 들깨 노동이

마음 근육을 움직였을까요. 


그 무엇이었든 좋습니다.

들깨 타작을 마친 지금이, 

글씨에 마음을 새기는 이 순간이. 

작가의 이전글 “온 우주를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봄철 냉잇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