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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10. 2021

마늘을 심고, 기르고, 까고, 빻는 어떤 삶

이 모두가 자연스러운 지금이 좋다

마늘 농사는 늘 그랬다.

크기가 솔찬히 작다.

껍질 벗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어스름 저녁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 어쩌고’ 영상을 

틀어 놓고 작은 칼을 쥐었다.


텃밭에서 자란 마늘을 그동안

장아찌며 이모저모로 잘 먹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마늘,

싹이 나기 전에 무조건 까야 한다. 

마늘의 생명이 사그라지기 전에

내 손으로, 내 힘으로 꼭 해내자! 


텃밭에서 자란 마늘은 크기가 손톱만큼 작은 게 많다. 껍질 까기가 얼마나 힘든지.


산골에 살며 숱하게 마늘을 깠지만 

보통 삼사십 분을 넘기지 못했다. 

손가락이 너무 아리고 또 아파서. 


마음이 막 부드러워지는

감성 충만 음악 덕분인가,

마늘만 쥐면 겁부터 먹던 손가락도 

저도 모르게 제법 철이 든 것일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넘도록

나는 마늘을 만지고 있었다.

이 시간이 제법 우아~하게 느껴지는 기분까지!


옆지기와 힘 모아 마지막 마늘을 깐다. 우리 부부가 기른 생명, 우리 손으로 잘 갈무리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손가락 덜 맵게

마늘을 깔 수 있어?”


“손에 마늘 액이 조금이라도 묻으면

바로 닦고 계속해야 돼. 그래야 덜 맵지.  

또 칼로 껍질을 벗길 땐 어쩌구저쩌구....”


혼자 마늘을 까면서, 한참 전에

옆지기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땐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게 잘 안됐는데. 

나도 작심하고 하면 되긴 되는구나, 

뿌듯했다가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그동안 나는 마늘 까기를 

내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손이 조금만 아려도 금세 때려치우고 말았던 게 아닐까.

아니, 마늘 농사 바로 그것을   

마치 마늘 까기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마늘 음식을 그렇게나 좋아하면서도....’ 


말갛게 고운 마늘을 보면서

차암 이쁘고 예뻐서 헤벌쭉하다가는 

그런 너를 무심히 대한 시간들에

불쑥 부끄러움도 밀려오고.

그렇게 며칠에 걸쳐

텃밭이 내준 마지막 마늘과 함께했다.

(하루는 손 빠르고 야무진 옆지기와 같이했다. 

우리 부부가 기른 소중한 생명, 

우리 손으로 잘 갈무리하기 위하여!) 


아직까지는 절굿공이에 기대어 마늘을 빻는다. 그게 몸과 마음에 맞으니까.


마늘을 깠으니 마늘을 빻아야지.

기계 힘을 빌리고픈 열망이 가끔 일지만

아직까지는 절굿공이에 기댄다. 

좀 힘들지만 그게 몸과 마음에 맞으니까. 


서울 살 때 생각이 난다.

마늘 껍질을 까 보지 않았다. 

마늘을 빻은 적도 물론 없고. 


깨끗이 손질된 마늘을 사서

그때그때 식칼로 다져서 쓰거나

때론 다진마늘을 사기도 했다.

그게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다.   


서울살이와 귀촌살이에서 

오로지 ‘마늘 하나’만 두고 생각하자면,

마늘을 심고, 기르고, 까고, 빻는 일까지

이 모두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지금이 좋다. 


매워도 예뻤던 텃밭 마지막 마늘을 보면서 내 마음은 슬며시 웃었다.


마늘을 까면서, 빻으면서 

매운 기운에 손가락은 조금 울었겠지만

내 마음은 슬며시 웃었다.


동글동글 뽀얀 마늘이 좋아서.

마늘을 심고, 기르고, 까고, 빻는

이 삶이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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