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쓸모 있는 노동인가’

밥 한 끼 잘 먹기 위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에 대하여

by 산골짜기 혜원

텃밭에서 거둔 작물들.

제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저온저장고 없고, 냉장고는 자리가 없고,

우리 딴에는 최대한 정성을 다해)

작은 것들은 마른다. 마르면서 쪼그라든다.

썩지 않아도 어느새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싫어서

그러고 싶지 않아서

작은 것들을 어떻게든

먹을거리로 만들려 애쓴다.


오늘도 그런 날.


참 작다.

당근도, 감자도, 고구마도.


20211102_172432.jpg 달걀 크기쯤 되는 감자,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고구마를 다듬는 노동, 과연 쓸모 있는 일일까.


손가락 크기만 한 당근을

달걀 크기쯤 되는 감자를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데다가

상처까지 입은 쪼그만 고구마를

하나하나 다듬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괴감이 든다.


‘이것은 쓸모 있는 노동인가.’

감자, 고구마 큰 거 한두 개,

당근 하나쯤 쓱쓱 껍질 벗기고 썰면

간단하고 편하게 끝날 수 있는 거

나도 잘 아는데....


20211102_172359.jpg 얇고 작은 당근을 다듬는 일은 다른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과연 쓸모 있는 일이란 무얼까.

돈이 되는 일? 돈을 버는 일?’


‘아니 그럼, 내가 기른 농작물을

잘 먹는 게 쓸모없는 일이란 거야?

돈이 되지 않아서?

돈을 벌 수 없으니까??’


고 작은 일감 앞에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잘도 오간다.


이제 그런 쓸데없는 의문쯤

덮어 버릴 때도 된 듯한데,

아니면 아쌀하게

작은 것들을 안 먹으면 될 터인데,

둘 다 여직 안 된다.


돈 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돈 1도 안 되는 농사는

진심 다해 꾸역꾸역 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가 보다.


20211102_172817.jpg 껍질 벗긴 작은 당근. 크게 자라지 못했어도 당근 본연의 맛은 훌륭하도다!


복잡한 심정 속에서도

작은 것들을 다 갈무리하여

(시장에서 산 양파까지 더해)

야채 카레를 만들었다.


따로따로 있을 땐

그리 작고 못나 보이더니

‘카레’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더니

제법 알차고 맛도 좋다.


‘아~ 이거면 됐지 뭐.

밥 한 끼 잘 먹기 위한 노동,

그게 바로 쓸모 있는 일 아니겠나!’


맛있게 비운 밥그릇을

깨끗이 씻는다.

오늘 하루는 그걸로 되었다 싶다.


20211102_181814.jpg 작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야채 카레. 오늘 하루는 이걸로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일은 모레는 또 글피에는 아마도,

또다시 속절없는 물음과 싸울 것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노동,

돈이 입금되지 않는 노동.

쓸모 있는 삶인가,

쓸모 있다고 믿어도 되겠는가.


저 물음에 답을 찾고 싶어서라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에도

산골 노동을 이어 갈 것이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귀하게 바라보도록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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