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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09. 2021

‘이것은 쓸모 있는 노동인가’

밥 한 끼 잘 먹기 위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에 대하여

텃밭에서 거둔 작물들.

제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저온저장고 없고, 냉장고는 자리가 없고,

우리 딴에는 최대한 정성을 다해)

작은 것들은 마른다. 마르면서 쪼그라든다.

썩지 않아도 어느새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싫어서

그러고 싶지 않아서

작은 것들을 어떻게든

먹을거리로 만들려 애쓴다.


오늘도 그런 날. 


참 작다.

당근도, 감자도, 고구마도.


달걀 크기쯤 되는 감자,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고구마를 다듬는 노동, 과연 쓸모 있는 일일까. 


손가락 크기만 한 당근을

달걀 크기쯤 되는 감자를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데다가 

상처까지 입은 쪼그만 고구마를

하나하나 다듬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괴감이 든다.


‘이것은 쓸모 있는 노동인가.’

감자, 고구마 큰 거 한두 개,

당근 하나쯤 쓱쓱 껍질 벗기고 썰면 

간단하고 편하게 끝날 수 있는 거 

나도 잘 아는데....


얇고 작은 당근을 다듬는 일은 다른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과연 쓸모 있는 일이란 무얼까. 

돈이 되는 일? 돈을 버는 일?’


‘아니 그럼, 내가 기른 농작물을

잘 먹는 게 쓸모없는 일이란 거야?

돈이 되지 않아서?

돈을 벌 수 없으니까??’


고 작은 일감 앞에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잘도 오간다. 


이제 그런 쓸데없는 의문쯤

덮어 버릴 때도 된 듯한데,

아니면 아쌀하게 

작은 것들을 안 먹으면 될 터인데,

둘 다 여직 안 된다. 


돈 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돈 1도 안 되는 농사는 

진심 다해 꾸역꾸역 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가 보다.  


껍질 벗긴 작은 당근. 크게 자라지 못했어도 당근 본연의 맛은 훌륭하도다!


복잡한 심정 속에서도

작은 것들을 다 갈무리하여

(시장에서 산 양파까지 더해)

야채 카레를 만들었다.


따로따로 있을 땐

그리 작고 못나 보이더니

‘카레’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더니

제법 알차고 맛도 좋다.


‘아~ 이거면 됐지 뭐.

밥 한 끼 잘 먹기 위한 노동,

그게 바로 쓸모 있는 일 아니겠나!’


맛있게 비운 밥그릇을 

깨끗이 씻는다. 

오늘 하루는 그걸로 되었다 싶다.


작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야채 카레. 오늘 하루는 이걸로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일은 모레는 또 글피에는 아마도,

또다시 속절없는 물음과 싸울 것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노동,

돈이 입금되지 않는 노동.

쓸모 있는 삶인가, 

쓸모 있다고 믿어도 되겠는가.


저 물음에 답을 찾고 싶어서라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에도 

산골 노동을 이어 갈 것이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귀하게 바라보도록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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