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잘 먹기 위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에 대하여
텃밭에서 거둔 작물들.
제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저온저장고 없고, 냉장고는 자리가 없고,
우리 딴에는 최대한 정성을 다해)
작은 것들은 마른다. 마르면서 쪼그라든다.
썩지 않아도 어느새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싫어서
그러고 싶지 않아서
작은 것들을 어떻게든
먹을거리로 만들려 애쓴다.
오늘도 그런 날.
참 작다.
당근도, 감자도, 고구마도.
손가락 크기만 한 당근을
달걀 크기쯤 되는 감자를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데다가
상처까지 입은 쪼그만 고구마를
하나하나 다듬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괴감이 든다.
‘이것은 쓸모 있는 노동인가.’
감자, 고구마 큰 거 한두 개,
당근 하나쯤 쓱쓱 껍질 벗기고 썰면
간단하고 편하게 끝날 수 있는 거
나도 잘 아는데....
‘과연 쓸모 있는 일이란 무얼까.
돈이 되는 일? 돈을 버는 일?’
‘아니 그럼, 내가 기른 농작물을
잘 먹는 게 쓸모없는 일이란 거야?
돈이 되지 않아서?
돈을 벌 수 없으니까??’
고 작은 일감 앞에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잘도 오간다.
이제 그런 쓸데없는 의문쯤
덮어 버릴 때도 된 듯한데,
아니면 아쌀하게
작은 것들을 안 먹으면 될 터인데,
둘 다 여직 안 된다.
돈 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돈 1도 안 되는 농사는
진심 다해 꾸역꾸역 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가 보다.
복잡한 심정 속에서도
작은 것들을 다 갈무리하여
(시장에서 산 양파까지 더해)
야채 카레를 만들었다.
따로따로 있을 땐
그리 작고 못나 보이더니
‘카레’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더니
제법 알차고 맛도 좋다.
‘아~ 이거면 됐지 뭐.
밥 한 끼 잘 먹기 위한 노동,
그게 바로 쓸모 있는 일 아니겠나!’
맛있게 비운 밥그릇을
깨끗이 씻는다.
오늘 하루는 그걸로 되었다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일은 모레는 또 글피에는 아마도,
또다시 속절없는 물음과 싸울 것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노동,
돈이 입금되지 않는 노동.
쓸모 있는 삶인가,
쓸모 있다고 믿어도 되겠는가.
저 물음에 답을 찾고 싶어서라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에도
산골 노동을 이어 갈 것이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귀하게 바라보도록 애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