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 일 년을 벌었구나’

지속가능한 김장 노동을 위하여

by 산골짜기 혜원

지난해, 언제나처럼 처절할 만큼 힘겹게

김장을 마치면서 진심으로 다짐했다.


‘우리 부부 계속 나이가 들 텐데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몸이 배겨내질 못하겠어.

다음번에는 많이 줄이자.

욕심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보자!’


스스로와 맺은 다짐 더하기 약속을

굳게 되새기며 올해는 정말로

절반 가까이 배추를 줄였다.


kim1.jpg 유기농 부부가 꾸리는 밭에 가서 직접 뽑은 김장 배추.
20211114_094947.jpg 절반 가까이 배추를 줄인 만큼 김장 노동도 줄기는 했다. 그러나...
20211113_114211_HDR.jpg 동치미에 들어갈 무는 텃밭에서 기른 것으로! 작은 것들이 많아서 뽑고 다듬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


배추 절이고 씻기,

김칫소 만들기와 버무리기까지.

양이 적어진 딱 그만큼

김장 노동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버거웠다, 많이 힘겨웠다.

나도, 옆지기도.


끝없이 이어지는 김장 일 앞에서

(수년째 해 오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쳐야만 했다.


‘이토록 노동집약적인 노동이라니.

해마다 하는데도 어쩌면 이토록

몸에 익지가 않는단 말인가!’


김칫소에 들어갈 채소들은 썰어도 썰어도 끝이 없더라니.


우리 집 김장에선 늘 마지막 순서인

동치미까지 담그고

온갖 김장 도구들까지 갈무리하니

김장 나흘째 저녁, 아니 밤이다.

(그나마 생강이랑 마늘을

미리 준비한 덕이다.)


배추김치, 깍두기가 든

통을 하나하나 열어 본다.

마당에 놓인 동치미 항아리도

물끄러미 보고 또 본다.


깍두기랑 동치미야 겨우내

통이 거의 비겠지만

배추김치는 일 년을 줄창 먹을 터.

(아니, 몇 년을 함께한다고 해야 맞겠지.

한 해 묵은 거, 두 해 묵은 김치까지

곰삭은 묵은지가 있으니까, 지금도.)


그저 눈물이 나려고 한다.

조금은 서럽기도 하고

벅찬 감격에 겨웁기도 해서는.






‘아, 이렇게 일 년을 벌었구나.

그래서 그토록 힘이 들었구나.

일 년을 버는 노동이 쉬울 리가 있나.

우리 부부 참 장하구나,

정말 잘 해냈구나!’


2013년 겨울, 귀촌 첫해에

무턱대고 김장 120포기를 했다,

(아마 그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해냈다.


그 뒤로 100포기, 80포기, 90포기...

들쭉날쭉했으나 많기론 매한가지였다.

넉넉히 해서 두루두루 나누고 싶은 욕심에

배추 포기 줄이는 걸 ‘포기’하지 못했다.


kim5.jpg 김장 노동 최고의 동반자, 옆지기가 있기에 김장을 계속해 올 수 있었고 또 계속할 힘도 낼 수 있었다.


산골생활 아홉 해째인 2021년 겨울,

첫해의 삼분의 일쯤 되는 김장을 했다.

힘든 노동 속에서도

‘요 정도라면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 번.


산골생활=김장

요런 공식이라도

마음에 꽉 박힌 건지

김장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알맞게, 즐겁게, 맛나게

김장 행사를 맞이할 길을 찾는 것.

요거이 산골부부에게 숙제라면 숙제.


2021년 김장으로

무려 일 년을 벌었으니

그 숙제는 찬찬히 풀면 되겠지?


kim2.jpg 9년째 산골 김장 배추를 책임져 주는 유기농 부부네 배추밭. 올해도 어김없이 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저곳으로 갔다.


대망의 김장을 마친 기념으로다가

살짝살짝 아릿하고도

불쑥불쑥 뿌듯한 마음을 가득 담아

고마운 인사 하나 꼭 남기고프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산골부부 김장에 힘을 보태 준

장수 계북 유기농 부부님.


당신들이 정성껏 기른

배추, 무, 당근, 양파, 갓, 대파

그리고 고춧가루로

이번 김장도 언제나처럼

건강하고 맛있게 잘 버무렸어요.


그거 아세요?

산골부부가 김장을 9년째

이어 올 수 있었던 데는

당신들의 힘이 엄청 컸다는 거.


정말 고마워요.

늘 그 자리에서 땅을 가꾸고

지켜 주고 있어서.


아시다시피 저희가 기르는

배추, 무, 고추 등등 김장 재료들이

열심히 가꾸느라 애는 쓰지만도 참 못나고 작아서

도저히 김장에 쓸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요~

내년 김장도 유기농 부부님께

기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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