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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16. 2021

‘아, 이렇게 일 년을 벌었구나’

지속가능한 김장 노동을 위하여

지난해, 언제나처럼 처절할 만큼 힘겹게

김장을 마치면서 진심으로 다짐했다.


‘우리 부부 계속 나이가 들 텐데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몸이 배겨내질 못하겠어. 

다음번에는 많이 줄이자.  

욕심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보자!’


스스로와 맺은 다짐 더하기 약속을 

굳게 되새기며 올해는 정말로

절반 가까이 배추를 줄였다. 


유기농 부부가 꾸리는 밭에 가서 직접 뽑은 김장 배추. 
절반 가까이 배추를 줄인 만큼 김장 노동도 줄기는 했다. 그러나...
동치미에 들어갈 무는 텃밭에서 기른 것으로! 작은 것들이 많아서 뽑고 다듬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


배추 절이고 씻기, 

김칫소 만들기와 버무리기까지. 

양이 적어진 딱 그만큼 

김장 노동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버거웠다, 많이 힘겨웠다.

나도, 옆지기도.


끝없이 이어지는 김장 일 앞에서

(수년째 해 오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쳐야만 했다.  


‘이토록 노동집약적인 노동이라니. 

해마다 하는데도 어쩌면 이토록 

몸에 익지가 않는단 말인가!’


김칫소에 들어갈 채소들은 썰어도 썰어도 끝이 없더라니.


우리 집 김장에선 늘 마지막 순서인

동치미까지 담그고 

온갖 김장 도구들까지 갈무리하니 

김장 나흘째 저녁, 아니 밤이다.

(그나마 생강이랑 마늘을 

미리 준비한 덕이다.)


배추김치, 깍두기가 든

통을 하나하나 열어 본다.

마당에 놓인 동치미 항아리도

물끄러미 보고 또 본다. 


깍두기랑 동치미야 겨우내 

통이 거의 비겠지만

배추김치는 일 년을 줄창 먹을 터. 

(아니, 몇 년을 함께한다고 해야 맞겠지.  

한 해 묵은 거, 두 해 묵은 김치까지

곰삭은 묵은지가 있으니까, 지금도.)      


그저 눈물이 나려고 한다. 

조금은 서럽기도 하고 

벅찬 감격에 겨웁기도 해서는. 






‘아, 이렇게 일 년을 벌었구나.

그래서 그토록 힘이 들었구나.

일 년을 버는 노동이 쉬울 리가 있나. 

우리 부부 참 장하구나, 

정말 잘 해냈구나!’ 


2013년 겨울, 귀촌 첫해에

무턱대고 김장 120포기를 했다,  

(아마 그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해냈다. 


그 뒤로 100포기, 80포기, 90포기... 

들쭉날쭉했으나 많기론 매한가지였다.

넉넉히 해서 두루두루 나누고 싶은 욕심에

배추 포기 줄이는 걸 ‘포기’하지 못했다.


김장 노동 최고의 동반자, 옆지기가 있기에 김장을 계속해 올 수 있었고 또 계속할 힘도 낼 수 있었다.


산골생활 아홉 해째인 2021년 겨울, 

첫해의 삼분의 일쯤 되는 김장을 했다.

힘든 노동 속에서도 

‘요 정도라면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 번. 


산골생활=김장 

요런 공식이라도

마음에 꽉 박힌 건지 

김장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알맞게, 즐겁게, 맛나게  

김장 행사를 맞이할 길을 찾는 것. 

요거이 산골부부에게 숙제라면 숙제.


2021년 김장으로 

무려 일 년을 벌었으니

그 숙제는 찬찬히 풀면 되겠지?


9년째 산골 김장 배추를 책임져 주는 유기농 부부네 배추밭. 올해도 어김없이 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저곳으로 갔다. 


대망의 김장을 마친 기념으로다가 

살짝살짝 아릿하고도 

불쑥불쑥 뿌듯한 마음을 가득 담아 

고마운 인사 하나 꼭 남기고프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산골부부 김장에 힘을 보태 준 

장수 계북 유기농 부부님.    


당신들이 정성껏 기른 

배추, 무, 당근, 양파, 갓, 대파

그리고 고춧가루로

이번 김장도 언제나처럼 

건강하고 맛있게 잘 버무렸어요. 


그거 아세요?

산골부부가 김장을 9년째 

이어 올 수 있었던 데는

당신들의 힘이 엄청 컸다는 거. 


정말 고마워요. 

늘 그 자리에서 땅을 가꾸고 

지켜 주고 있어서. 


아시다시피 저희가 기르는

배추, 무, 고추 등등 김장 재료들이

열심히 가꾸느라 애는 쓰지만도 참 못나고 작아서 

도저히 김장에 쓸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요~   

내년 김장도 유기농 부부님께

기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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