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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19. 2021

배춧국의 힘

마음까지 덥혀 주니, 보약이라도 먹는 기분  

텃밭 배추를 뽑아서

국을 한 솥 끓였다.

벌레 먹어 구멍 숭숭 난 

퍼런 이파리도 남김없이 넣었다.


오늘은, 오늘도

가을 농사 갈무리로

아침부터 몸을 부렸다.


어느덧 점심때,

다른 반찬 만들 시간도 없고.

배춧국에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 말끔히 비웠다.


배춧국에 묵은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 말끔히 비웠다.

텃밭 배추에 울 집 된장으로

만든 국은 언제나 진리다.

구수하고 담백한 것이

뜨끈하기까지 하니

보약이라도 먹는 기분이랄까.


다시 힘내서 마당 일터로~


햇볕은 따사로우나

왠지 모르게 봄보다, 여름보다

몸 쓰는 일이 힘들다.

11월 하늘에 근육들이

저절로 움츠러들기라도 했을까.


그래도 쉴 수 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눈비 나리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오후 네 시도 되지 않았건만

해님이 산골에서 사라졌다.

이러면 곤란한데....ㅜㅠ


급격히 추워지는 날씨에

얼른 두툼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어두워지기 전까지

그렇게 바깥일을 했다.


배춧국 한 솥 끓여 놓으면 며칠 동안이 든든하다.


집 안에 들어와선

국부터 가스레인지에 앉힌다.

그러곤 일단 눕기.


“끄응~”


며칠 연이어 일해서 그런가

김장 여파가 아직도 있는가

간만에 녹초가 되었다.


슬며시 눈이 감기려던 순간,

“부글부글~♪”

아련한 소리가 울린다.


일어나자!

가스레인지 켜 놓고 잠들면 큰일 나!!


뜨끈한 국물에 찬밥 휘휘 말아

얼굴을 국 사발에 코 박고는

후루룩 쩝쩝쩝.

아, 녹는다, 녹아.

한 그릇 더!^^


늦가을 노동에 지친 삭신을

배춧국이 따시게 어루만져 준다.

참말 애썼다고,

그 정도면 많이 한 거라고.


사실, 하려던 만큼 일을

갈무리하지 못해서

좀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배춧국 두 그릇 비우곤

그 마음도 싹 비우기로 했다.


배도 든든히 채워 주고

마음까지 따사롭게 덥혀 주는

배춧국의 힘.


내일도 그 힘을 믿고

이놈의 끝도 없는 가을 갈무리,

어디 한번 힘차게 맞이해 볼까나~


마치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 텃밭 배추.
속이 덜 차서 김장에서 빠진 텃밭 배추들 덕분에 맛있고 건강한 배춧국을 먹는다.


속이 덜 차서 더 어여쁜

텃밭 배추야, 

덕분에 힘겨웠던 오늘 하루를 

기껍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


네가 있어 참 좋구나.

고마워, 내 곁에 있어 줘서.


*스페셜 땡스 투:

내가 배추 자라는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그 긴 시간에,

망사배추가 되지 않도록

꾸준히 벌레를 잡아 준

옆지기한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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