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덥혀 주니, 보약이라도 먹는 기분
텃밭 배추를 뽑아서
국을 한 솥 끓였다.
벌레 먹어 구멍 숭숭 난
퍼런 이파리도 남김없이 넣었다.
오늘은, 오늘도
가을 농사 갈무리로
아침부터 몸을 부렸다.
어느덧 점심때,
다른 반찬 만들 시간도 없고.
배춧국에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 말끔히 비웠다.
텃밭 배추에 울 집 된장으로
만든 국은 언제나 진리다.
구수하고 담백한 것이
뜨끈하기까지 하니
보약이라도 먹는 기분이랄까.
다시 힘내서 마당 일터로~
햇볕은 따사로우나
왠지 모르게 봄보다, 여름보다
몸 쓰는 일이 힘들다.
11월 하늘에 근육들이
저절로 움츠러들기라도 했을까.
그래도 쉴 수 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눈비 나리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오후 네 시도 되지 않았건만
해님이 산골에서 사라졌다.
이러면 곤란한데....ㅜㅠ
급격히 추워지는 날씨에
얼른 두툼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어두워지기 전까지
그렇게 바깥일을 했다.
집 안에 들어와선
국부터 가스레인지에 앉힌다.
그러곤 일단 눕기.
“끄응~”
며칠 연이어 일해서 그런가
김장 여파가 아직도 있는가
간만에 녹초가 되었다.
슬며시 눈이 감기려던 순간,
“부글부글~♪”
아련한 소리가 울린다.
일어나자!
가스레인지 켜 놓고 잠들면 큰일 나!!
뜨끈한 국물에 찬밥 휘휘 말아
얼굴을 국 사발에 코 박고는
후루룩 쩝쩝쩝.
아, 녹는다, 녹아.
한 그릇 더!^^
늦가을 노동에 지친 삭신을
배춧국이 따시게 어루만져 준다.
참말 애썼다고,
그 정도면 많이 한 거라고.
사실, 하려던 만큼 일을
갈무리하지 못해서
좀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배춧국 두 그릇 비우곤
그 마음도 싹 비우기로 했다.
배도 든든히 채워 주고
마음까지 따사롭게 덥혀 주는
배춧국의 힘.
내일도 그 힘을 믿고
이놈의 끝도 없는 가을 갈무리,
어디 한번 힘차게 맞이해 볼까나~
속이 덜 차서 더 어여쁜
텃밭 배추야,
덕분에 힘겨웠던 오늘 하루를
기껍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
네가 있어 참 좋구나.
고마워, 내 곁에 있어 줘서.
*스페셜 땡스 투:
내가 배추 자라는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그 긴 시간에,
망사배추가 되지 않도록
꾸준히 벌레를 잡아 준
옆지기한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