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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30. 2021

썩은 콩 고르며 썩은 마음도 골라내기

늦가을 기나긴 콩 농사 갈무리

시월 말 쥐눈이콩을 베고

십일월 중순 서리태를 거두어

콩을 털고 또 털면서

한 달이 그렇게 흘렀다.


11월 비는 얼마나 잦은지 

콩 마를 새도 잘 안 주고

11월 해는 어찌나 짧은지

콩 털 시간이 짧기만 했다.  


게다가 김장에, 집안 대소사까지

온갖 일들이 겹친 11월은 정말이지…

거둔 콩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힘들고 버겁고 또 속상했다. 


작고 작은 쥐눈이콩 털기 1차 완료. 하지만 이어지는 일이 더 많고 많다.
쥐눈이콩은 작은 만큼 꼬투리 까기도 쉽지 않다.


갈무리가 이리 어려울 줄 알았더면

덜 심을걸, 심지 말걸, 사서 먹을걸, 

그도 아니면 기계 힘이라도 빌릴걸.

뻔한 후회를 하고 또 했다. 


지난해도 콩을 심었다.

기르고 베고 털고 고르기까지

옆지기가 죄다 해낸 덕분에

농사 끝이 이렇게나 험난한 줄은 

미처, 조금도 몰랐다. 


그땐 까맣게 윤기 흐르는

동글동글 콩들이 어여뻐서

더구나 콩밥을 무척 좋아해서는 

마냥 뿌듯하기만 했다. 

이렇게나 알찬 ‘콩’ 농사를 

늘려야겠다고 다부진 꿈을 꾸었다.  


그렇게 맞이한 2021 콩 농사. 

밭 만들고 심고 김매기까지

나로선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알이 드는 콩꼬투리를 볼 때면

내 삶도 알차고 풍성해지는 기분에

아주 흐뭇하기도 했다.  


동글동글 알찬 서리태는 내 마음도 풍성하게 해 주었다.


수확을 시작한 순간부터 고난은 시작됐다.

콩대부터 벨 수가 없었다. 

옆지기 하는 모습이 쉬워 보여서 

냉큼 낫을 쥐어 봤건만,  

아~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질기고 억센 콩대 앞에서 

허물어지듯 낫을 내려놓았다.


콩밭 앞에서 하염없이 작아졌던 나.

콩 털기는 그래도 될 줄 알았지. 

대나무를 도리깨 삼아 탁탁 치는데

까만 알이 떨어지지를 않네. 


콩이 덜 마른 탓, 도리깨질이 서툰 탓,

이 탓 저 탓 따질 틈이 없었다.  

갈무리 제때 못 하면

1년 농사 말짱 도루묵일지니.

콩꼬투리 붙잡고선 까고 또 깠다. 


한동안 손톱도 제대로 깎지 못했다.

오로지 앙다문 콩꼬투리를 열어젖히기 위해

내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다듬지 하지 못하는

이 처지가, 신세가 못내 측은했다.


콩대 베는 옆지기. 옆에서 볼 땐 쉬운 듯했으나...
대나무를 도리깨 삼아 콩을 털고 또 털면서 11월 한 달이 그렇게 흘렀다.


“드디어 해.냈.다!” 


기나긴 콩 털기를 끝내 마친 날.

어려운 시험 합격이라도 한 듯

눈물 나게 기뻤다. 

그때도 여지없이 몰랐네.

콩 고르기라는 ‘대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햇살 따사로운 일요일 오후,  

썩은 것, 벌레 먹은 거에 쭉정이까지, 

옆지기랑 콩을 고르고 또 고른다. 

허리 꾸부정하고 한참을 그러자니

절로 푸념이 흐른다.


“이러고 있음 꼭 할머니가 된 것 같아.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꼭 해야 할 일이란 건

알지만 너무 느리고 길고… 

그냥 좀 답답하고 힘들어.”


바로 이어지는 옆지기 잔소리.


“콩 고르는 일보다 더 생산적인 

일이 어딨어. 입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디 그리 쉽니. 그런 생각일랑 접고

썩은 콩 고르면서 

썩은 마음도 골라내 봐.”


웬일인지 마음에 사르르 스민다. 

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겠지, 하면서 

콩 고르는 손길도 마음도

한결 느긋해졌다. 

잔소리에 마법이라도 있는지

하찮아 보이던 일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오네.   


“썩은 콩 고르면서 썩은 마음도 골라내 봐.”
쭈그려 앉아 콩을 고르다 보면 내 처지가 왠지 한스러워 푸념이 절로 나온다.


오늘도 하늘 아래서 

콩을 만지고 또 만졌다. 

추운 날 쭈그려 앉고 일하자니

어쩔 수 없이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소쿠리에서 덜어낸 콩만큼

내 쭉정이 같은 마음들도 

덜어진 것만 같아서. 


해님이 사라진 시간 따라

오늘치 콩 고르기를 마치면서

또다시 작은 꿈이 일어난다. 


‘내년에도 콩 농사는 꼭 짓자. 

대신 효율 있게 갈무리하는 길을 

찾아봐야겠어.

이번처럼 콩 터는 건 

올해로 끝내자. 참말이지 

두 번 다시 이렇겐 못 해, 안 해!^^’


알알이 어여쁜 쥐눈이콩. 이 귀한 농사를 어찌 포기할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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