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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Dec 11. 2021

“삶에 감사합니다.”

뚱딴지(돼지감자)에 기대어 속죄하는 하루

좀 슬픈 일이 있었다.

내 잘못으로 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였으니.      

엎어진 물은 닦기라도 하는데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길이 없다. 


늦은 아침에 눈을 뜨니

입에서 떠나간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또 돈다. 

아~ 속절없이 부끄럽고 서글프다.

종일 그 생각에 치우쳐

긴 하루를 보낼 것만 같다.      


‘참, 옆지기랑 뚱딴지를 캐기로 했지!

마음 어지러울 땐 밭에서 몸 부리는 게 최고야.  

정말 다행이다, 땅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이 있어서.’

       

다른 때 같으면 

밍기적밍기적하다가 

끌려가듯 따라나섰을 것을. 

오늘은 점심 먹자마자 

일옷 잽싸게 갈아입고 밭으로 나섰다.   


초겨울 뚱딴지 밭이 아스라이 다가온다.

  

뚱딴지를 수확하는 일은 감자나 고구마 캘 때랑은  사뭇 다른 수고로움이 따른다.


옆지기는 삼발 쇠스랑으로

나는 작은 약초 괭이 쥐고

뚱딴지를 수확한다.


감자나 고구마 캘 때랑은

사뭇 다른 수고로움이 따른다.     

힘들어도 지금만큼은 이 일이 좋다. 

상한 마음 캐내듯

보일 듯 말 듯 땅속에 숨은 

뚱딴지를 조심스레 꺼내고 또 꺼냈다.  


두 시간쯤 그렇게 했을까. 

이제 그만, 씻으러 갑시다!     


울퉁불퉁한 생김새 때문인지 

몸통에 머금은 흙이 장난이 아니다. 

대야에 담아 씻을 엄두가 나지 않아

수레에 바로 물을 붓는다.      


뚱딴지는 울퉁불퉁한 생김새 때문인지 몸통에 머금은 흙이 많아서 씻기가 엄청 어렵다.


구석구석 간직한 흙까지 

칫솔로 문지르며 정성껏 닦아낸다.


내 슬픈 과오도 

내 손 아래 떨어지는 흙처럼

그렇게 덜어지고 흩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뚱딴지에 기대어 속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노동이 참으로 고마웠다.   

    

요즘처럼 매섭게 쌀쌀한 날씨엔

밭일보다 물일이 더 힘들다.

발은 또 어찌나 시려운지.

그래도 괜찮았다, 견딜 수 있었다.

잔뜩 꾸부러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느낌만으로도 

추위 속 힘든 노동을 이겨낼 수 있었다.     


흙을 떨어낸 뚱딴지. 생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 질 녘,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드디어 씻기를 마쳤다.

두 사람이 손을 부렸음에도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렸네.      

자랄 때는 무심히 두어도 되었건만 

먹을 만큼, 나눌 정도로 캐고 씻는 것도 

이렇게나 시간과 정성이 드는구나.


당뇨에 좋다는 뚱딴지.

날로 먹으면 달큰하고 아삭하지만 

장아찌나 차로 만들면

새로운 맛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나는 구수한 뚱딴지차를 아주 좋아한다.

차로 하려면 썰고 말리고 덖는 일에

만만치 않게 노력이 들지만 

마음속 짐 가볍게 해 준 뚱딴지한테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해 봐야지.   

  

죄책감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을지도 

몰랐을 오늘 하루. 

뚱딴지 덕에, 추운 날씨에도 

땀방울 흘리며 함께한 옆지기 덕분에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다.        


뚱딴지를 캐면서 상한 마음도 함께 캐낼 수 있었다.


“그라시아 살라 비다~♪

삶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어서,

웃음과 눈물을 주어

슬픔으로부터 행복을 구별하게 하여

눈물과 웃음이 나의 노래가 되게 하였고

당신의 노래가 되게 했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래가 그러하듯 

나의 노래 또한 그러하다네.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삶이여,

감사합니다~♪”

_메르세데스 소사 노래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합니다)’에서     


메르세데스 소사 노래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밤. 

노랫말에 기대어 

나지막이 혼잣말을 해 본다.      


“오늘도 삶에 감사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언제나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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