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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an 15. 2022

이방인과 경계인, 그 사이에서 나는

외로움의 강을 함께 건넌 책 ‘미얀마, 깊고 푸른 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산골에서 외롭지 않으냐고. 


문득문득 그렇다고 답했다.

어느 땐 외로움을 넘어

단절된 고독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다만 자주 다가오는 감정은 

아니라고 애써 덧붙였다. 


어느 노랫말처럼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하루 일 마치고 어두운 밤이 들면 

느닷없이 찾아올 때가 있다.

허전한 쓸쓸함이랄까, 

그 순간 그 누구도 만날 길 없는 

아쉬움 가득한 아득함 같은 것. 


그럴 때면 책이 말을 걸어온다.

‘내가 동무가 되어 줄게’ 하면서

살그머니, 조심스럽게, 다정하게도.


산골 겨울밤, 외로움을 넘어  단절된 고독감을 느끼는 때가 더러 있다.


추운 겨울 추운 노동이 끝나고

삭신이 쑤시는 중에도 책을 펼친다,

<미얀마, 깊고 푸른 밤>.


시인의 가슴을 지닌 채, 상인이라는 현실을 딛고 사는 

한 사람이, 한 삶이 길어 올린 글.

미얀마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시간이 알알이 맺혀 있는 책.  


“나는 한국과 미얀마라는 두 개의 모국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 속의 삶과 이를 뛰어넘으려는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부인할 길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곳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일까?”_51쪽


“이 우중의 어둠 속에서도 멀리 아득하게 쉐다곤 파고다의 황금빛은 잠들지 않고 빛을 뿜어내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곳 양곤에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이런 순간이 때론 생경하고 낯설다. 마치 알 수 없는 먼 곳에 홀로 서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이 엄습한다. (...)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이곳은 무엇일까. 그저 사업을 하는 ‘기회의 땅’일 뿐일까. 미얀마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경계인’에 불과한 것일까.”_143쪽


글쓴이가 이야기하는

이방인이라는 말이, 경계인이라는 말도

이토록 깊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작은 땅덩어리에서

그저 조금 아래로 삶터를 옮겼을 뿐인 나는

도시에서 살아온 시간과 산골에서 겪는 삶, 

그 사이에 간극이 아직도 여전히 벅차기만 한 것일까.

 

“미움과 증오와 용서할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을 가지고 ‘함께 그것도 이웃’에서 불편함을 견디며 공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다. 그렇다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다.”_163쪽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발을 딛고 있는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랑’ 바로 그것이다. (...)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구성원들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이다.”_179쪽 


온 세계를 떠돌다

미얀마에서 스무 해 가까이 지냈고

여전히 그곳에서 지내게 될 사람이 겪은 일들은

오죽이나 많고 깊기도 할 텐데. 

나는 어쩜 이리도 작가의 마음으로 

감정이입이 막 되고 잘되기도 하는지.

 

쓰는 말, 사는 자리가 달라도

그곳이 바다 건너 건너일지라도

‘서로 다른’ 사람끼리 더불어 살기란 

언제나 어디서나 쉽지 않다는 방증을 

이 책을 보며 절절히 느끼고 깨닫는다.


미얀마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글쓴이가 말하는  이방인이라는, 경계인이라는 말이  이토록 깊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모든 나라가 천천히 뒤를 살피며 새로운 세계를 찾아 자본주의의 미궁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면 미얀마를 바라다보아야 한다. (…) 그 이유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가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미얀마는 온전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_49쪽


“나는 미얀마의 난마처럼 얽힌 종족 문제와 군부의 문제 그리고 초강대국들의 이해가 뒤엉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에 깊이 동화되곤 한다. 나는 대지와 하나가 된 그들의 웃음과 평안하고 느린 삶에서 자본주의 문명에선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치유의 길을 보았다.”_156쪽


‘미얀마 쿠데타’로 조금, 아주 조금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곳, 미얀마. 

책을 보는 내내 이 나라가 궁금하다 못해 그리운 마음마저 일었다.

웃음 가득한 얼굴들, 느릿하게 살아가는 걸음들,

자본주의를 비껴가는 공동체 정신까지도

하나하나 보고 싶고 만나고만 싶었다. 


책을 보는 내내 미얀마가 궁금하다 못해 그리운 마음마저 일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미얀마의 모든 것을 사랑하되 부디 실망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나에게 기도한다.”_161쪽 


산골 깊은 밤, 함께 외로움의 강을 건너 주었던

<미얀마, 깊고 푸른 밤>을 내려놓으며 

나 또한 간절히 기도해 본다. 


나를 둘러싼 이곳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여기서 걸어온 시간을, 삶을 

(그 누구보다 바로 내가) 

실망과 원망으로 지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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