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살이 10년, 그사이에 피어난 책 제목처럼
지난해 12월 몇 날 며칠 쌓인 눈이
산골 텃밭을 하얗게 덮고 있습니다.
날이 주욱 춥다 보니 눈도
아주 천천히 사그라지고 있어요.
작년 김장 마치고
텃밭에 배추 세 포기를 남겨 두었거든요.
한겨울에도 배추가 살아남는지
궁금해서 그랬고요.
눈 속에 얼다, 녹다 한 배추로
국을 끓이면 어떤 맛일지
겪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아, 그런데 눈이 너무 이르게
그것도 많이 와 버린 거예요.
눈에 묻힌 배추 세 포기는
그 모습 찾을 길이 없었죠.
시간이 흐르고
배추를 어쩌면 잊고 지낸 것도 같아요.
그러다 보았네요.
새하얀 이랑에 볼록 솟아오른 모습을요.
그 속이 꽝꽝 얼었을지
열어보고 싶은 마음은
살짜쿵 내려놓았어요.
음… 파릇한 생명의 기운이
분명 느껴졌거든요.
조금 더 그대로 두어도 될 듯했어요.
가만히 놔두고는 밭을 되돌아 나왔다가,
무언가를 들고 다시금 배추 곁으로 갔어요.
어쩌면 저처럼, 집 안에서 갑갑했을 어느 책한테
겨울 내음을 안겨주고 싶어서요.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제가 펴낸 이 책을
쳐다보기도 싫던 때가 있었어요.
그 시간이 은근히 길었고요,
자책도 무척이나 했더랬죠.
‘어쩔라구 이런 책을 덜컥 내버렸으까이.
이 철없는 것아, 니는 평생 웃고 살 줄 알았냐이.
시골살이 퍽퍽한 줄도 모르고,
헤벌쭉 좋다고만 그래쌌으니.
내사 못산다 몬살아.
으이그, 쯔쯧쯧.ㅠㅜ’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지난해 봄과 여름 그 사이쯤요.
10년 전 장수 산골에 왔을 때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왕언니’한테
진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온 거예요.
(저보다 십오 년은 훌쩍 먼저 나신 분이라
그냥 언니라 하긴 좀 머쓱해서 ‘왕언니’라고 불렀답니다.)
세상에나, 제 책을 이제 보셨대요.
여태 웃지 못하고 헛되이 살았다며,
지금 삶에 감사할 수 있도록
깨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러셨죠.
2년을 같은 마을에 살며
그 너른 품과 베풀어 주신 정에 흠뻑 젖어,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했던 귀촌 선배님.
자기도 산골살이 십여 년이 힘겹고 버거워
애가 타다 못해 애가 삭았노라면서,
저희 부부 젊은 나이에 산골살이
적응 잘하고 있는지 괜스레 걱정도 됐다는
왕언니 말씀에 울컥하더라고요.
전화기 붙잡고 울먹울먹하면서,
“저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몇 번이나 산골 뜰 뻔하기도 했고요,
어쩌고저쩌고….
이젠 열심히 농사지어 보려고요,
저쩌고어쩌고…….”
하소연도 하고 의지도 다지고 그랬어요.
제 이야기에 돌아온 말씀은 이렇더랬죠.
“몸 혹사하지 마소. 먹을 만큼만 해서 쉬엄쉬엄 산골 벗 삼아 맛난 글 쓰시게.”
도리에 밝은 분이 해 주신 그 말씀에
저는 포근히 기대고 싶었어요.
좀 과하게 몸을 부린다 싶을 때면
왕언니 이야기를 떠올리며
손에 쥔 호미를 미련 없이 내려놓곤 했어요.
몸을 혹사하지 않는 선에서
밭에 있는데도 저한텐
충분히 피곤하고 벅차서요,
글쓰기는 하기가 어려웠어요.
농사철엔 글보다 책보다
무조건 잠이 젤 좋았어요.
적당히 일하고 그저 많이 푹 잤답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요.
지난해 딱 요맘때만 해도
머잖아 다가올 봄을 밀어내고만 싶었어요.
어쩔 수 없이 어설픈 텃밭농부한테도 봄 하면,
농사부터 떠오르니까요.
밭일이 겁나고요, 하기 싫고요,
마냥 도망치고만 싶었어요.
왕언니 덕분인지,
아주 조금은 철이란 놈이 스민 건지.
무튼요,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냉이 캐고 쑥 뜯고
들로 산으로 취나물 고사리 하러 다니고
작은 밭에 옹기종기 씨 뿌릴 새봄을
생각하면 두근두근거려요.
연인을 기다리는 설렘처럼
다가올 봄이 기다려진답니다.
어서 오시라고 재촉하고 싶을 만큼요.
산골살이 5년 이야기를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이 책 앞에 부끄럽다 못해
한없이 작아진 때가 많았는데요.
이젠 알 것도 같아요.
철없이 해맑던 그 시절과
생생한 기록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앞으로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노라고요.
올해로 저희 부부 산골살이가
어느덧 10년 차를 맞이한답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햇수를 흐뭇하게 헤아려 보며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을 조그맣게 읊조려 보아요.
“산골짜기 혜원, 힘들 때도 많았고 앞으로도 벅찬 일 많을 테지만 오길 참 잘했어. 이렇게 자주 웃잖아.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그래, 여기가 네 삶터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곳, 살아갈 곳.”
마음이 뜨시게 차오르면서
사르르 웃음이 번져요.
5년 전 글이랑 지금 제 마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거의 비슷하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고마워서요.
저만 웃고 살면 아쉽잖아요.
사랑하는 식구들과
세상 많은 이웃들과 벗님들 모두
많이 웃고 건강하게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차갑게 맑은 겨울 하늘 아래
두 손 모아 빌어 봅니다.
웃으면 복이 오고요,
일부러라도 입꼬리를 올리면
잠자던 웃음 기운이
냉큼 일어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