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오 산세이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에 깃들며
추운 겨우내
하루를 포근히 열어 준 책이 있다.
야마오 산세이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아침이면 이 시집을 펴고
한 편 혹은 두 편 찬찬히 마음에 품었다.
불안함도 걱정도,
산골 겨울의 단조로움마저도
시인의 마음이 보듬고 녹여주는 듯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영롱하게 밝히는 책을 덮으며,
오늘 하루 잘 보낼 수 있겠노라고
담담하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었다.
일본 규슈 남쪽 섬에서 살아온
농부이자 시인, 야마오 산세이.
하늘과 바다와 흙에 기대어
농사짓고, 자식들을 돌보며 살아간 이야기를
참 쉬운 말들로 구슬처럼 꿰어
맑은 시로 엮었다.
“밭에 한쪽 무릎을 꿇으면
거기서부터 사람은 흙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흙과 이어지면
그것이 생명의 안식
괭이밥의 작은 황금색 꽃도 하나님으로 보인다”
_‘감자밭에서’ 가운데
이 시를 보면서
무수하게 흙과 이어졌던
지난봄, 여름, 가을이 떠올랐다.
불쑥 차오르는 감동에 마음이 저릿하다.
밭에 무릎을 꿇어야 할 시간,
어김없이 다가올 그 순간들에
이 시가 떠오르면 좋겠다.
힘들어도 덜 힘들 수 있게
힘이 되어 줄 것만 같으니까.
산골 삶이 시인의 섬살이와 견주어
평범하고도 평탄하다는 걸 잘 알 것 같음에도
어느 틈엔가 나는 시집 곳곳에서
동지라도 만난 듯 반가움에 젖는다.
‘감정이입’이라기보다는
‘생활이입’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달을 올려다보며
실제로 나는 농부의 행복을 깊이 느낄 때도 있었으나
기실은 생각도 못하게 외로웠다 몹시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외로움도 나의 본래 고향이고 인간의 본래
고향이라며
땅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냥 외로운 자로서 땅에 서 있었던 것이다”
_‘식빵의 노래-다로에게’ 가운데
땅으로 온전히 물러난 사람도
이토록 외로울 수 있구나.
자연 속에서 고독을 삼키는 삶이란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숙명이런가.
어쩌면 자연의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시가 그렇게 말하는 듯도 하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구름은 고요하다
땅은 고요하다
벌이가 되지 않는 것은 괴롭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_‘고요함에 대해’ 가운데
특히나 이 시는 정말이지
마음 깊숙이 파고들더라니.
나도 그러했다.
이토록 벌이가 되지 않는 삶이
있다는 것이, 이해도 되지 않고
답답했으며 절망스러웠다.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대다가도
어느새, 어느 틈엔가 나는
조용한 산과 하늘 그사이로
아늑히 빠져들곤 하였다.
고요하고도 적막하며
또다시 고요하기만 한
산골의 밤과 낮이
신기할 만큼 푸근하고 아늑했다.
외로움도 슬픔도 그 모든 것들을
잔잔히 덮어 주는 고요한 시공간을
오롯이 누리며 살았다는 걸
이 시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이 아름다운 시집도 나에겐
고요한 선물이었다.
산 밑에 그저 깃들어 살 뿐인 내게
자연으로 물러날 것까진 없으나
지금 삶만큼은 힘내서 계속 가 보라고
응원하고 다독여 준 시어들에게,
시인에게, 그리고 책을 펴낸 상추쌈출판사에게
고맙다.
야트막한 병풍처럼
겨울 텃밭을 감싸는 앞산을 마주하며
책 속 시구절 하나 가만가만
읊는다.
두 손 모아 살포시....
“살아 있는 것 고맙습니다 새해가 와 고맙습니다”
-‘죽절초와 백량금’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