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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고독을 삼키는 삶이란...

야마오 산세이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에 깃들며

by 산골짜기 혜원

추운 겨우내

하루를 포근히 열어 준 책이 있다.

야마오 산세이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아침이면 이 시집을 펴고

한 편 혹은 두 편 찬찬히 마음에 품었다.

불안함도 걱정도,

산골 겨울의 단조로움마저도

시인의 마음이 보듬고 녹여주는 듯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영롱하게 밝히는 책을 덮으며,

오늘 하루 잘 보낼 수 있겠노라고

담담하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었다.


일본 규슈 남쪽 섬에서 살아온

농부이자 시인, 야마오 산세이.

하늘과 바다와 흙에 기대어

농사짓고, 자식들을 돌보며 살아간 이야기를

참 쉬운 말들로 구슬처럼 꿰어

맑은 시로 엮었다.


“밭에 한쪽 무릎을 꿇으면

거기서부터 사람은 흙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흙과 이어지면

그것이 생명의 안식

괭이밥의 작은 황금색 꽃도 하나님으로 보인다”

_‘감자밭에서’ 가운데


이 시를 보면서

무수하게 흙과 이어졌던

지난봄, 여름, 가을이 떠올랐다.

불쑥 차오르는 감동에 마음이 저릿하다.


밭에 무릎을 꿇어야 할 시간,

어김없이 다가올 그 순간들에

이 시가 떠오르면 좋겠다.

힘들어도 덜 힘들 수 있게

힘이 되어 줄 것만 같으니까.


20230120_131603_HDR.jpg 마음 깊은 곳까지 영롱하게 밝히는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산골 삶이 시인의 섬살이와 견주어

평범하고도 평탄하다는 걸 잘 알 것 같음에도

어느 틈엔가 나는 시집 곳곳에서

동지라도 만난 듯 반가움에 젖는다.

‘감정이입’이라기보다는

‘생활이입’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달을 올려다보며

실제로 나는 농부의 행복을 깊이 느낄 때도 있었으나

기실은 생각도 못하게 외로웠다 몹시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외로움도 나의 본래 고향이고 인간의 본래

고향이라며

땅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냥 외로운 자로서 땅에 서 있었던 것이다”

_‘식빵의 노래-다로에게’ 가운데


땅으로 온전히 물러난 사람도

이토록 외로울 수 있구나.

자연 속에서 고독을 삼키는 삶이란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숙명이런가.

어쩌면 자연의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시가 그렇게 말하는 듯도 하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구름은 고요하다

땅은 고요하다

벌이가 되지 않는 것은 괴롭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_‘고요함에 대해’ 가운데


특히나 이 시는 정말이지

마음 깊숙이 파고들더라니.

나도 그러했다.

이토록 벌이가 되지 않는 삶이

있다는 것이, 이해도 되지 않고

답답했으며 절망스러웠다.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대다가도

어느새, 어느 틈엔가 나는

조용한 산과 하늘 그사이로

아늑히 빠져들곤 하였다.

고요하고도 적막하며

또다시 고요하기만 한

산골의 밤과 낮이

신기할 만큼 푸근하고 아늑했다.


외로움도 슬픔도 그 모든 것들을

잔잔히 덮어 주는 고요한 시공간을

오롯이 누리며 살았다는 걸

이 시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20230120_135340_HDR.jpg 고요하고도 적막하며 또다시 고요하기만 한, 산골의 어느 환한 오후에.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이 아름다운 시집도 나에겐

고요한 선물이었다.

산 밑에 그저 깃들어 살 뿐인 내게

자연으로 물러날 것까진 없으나

지금 삶만큼은 힘내서 계속 가 보라고

응원하고 다독여 준 시어들에게,

시인에게, 그리고 책을 펴낸 상추쌈출판사에게

고맙다.


야트막한 병풍처럼

겨울 텃밭을 감싸는 앞산을 마주하며

책 속 시구절 하나 가만가만

읊는다.

두 손 모아 살포시....


“살아 있는 것 고맙습니다 새해가 와 고맙습니다”
-‘죽절초와 백량금’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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