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을 곱게 떠나보내며
요즘 햇볕이 참 따스해요.
겨우내 웅크려 지냈던 몸을
자꾸 바깥으로 불러냅니다.
천지에 봄기운이 가득하네요.
뭔가 내 안에 얽히고 뭉친 것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아요.
두 팔 활짝 벌려
하늘과 바람과 해님을
한껏 껴안아 봅니다.
봄님을 가까이 느끼게 해 주셔서
정말, 많이, 아주 고마워서요.
얼마 전 우수에 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그 뒤부터인 것 같아요.
아침 온도계가 분명 영하 10도를 찍고 있는데
슬쩍 포근해요.
한겨울 같은 온도일 때는
마음까지 시릴 만큼 추웠거든요.
텃밭엘 가보았어요.
쩍쩍 갈라지고 있네요.
드디어 땅이 녹고 있나 봐요!
손을 땅속에 푹 밀어 넣었어요.
쑥 들어갑니다.
차갑게 촉촉한 흙을 만지고 또 만져 봤어요.
한참을 눈에 덮였다가는
발로 밟으면 꽝꽝 소리가 날 만큼 얼어붙었던
이 고랑 저 이랑을 거닐면서,
이 감촉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호미를 들기엔 아직 이른 듯한데요.
곧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 귀퉁이 밭을 찾아가니
지난해 늦가을에 심었던 시금치가,
먼지처럼 작던 그 씨앗이 싹을 틔웠네요.
그 모습을 이제야 제대로 들여다봅니다.
저 작고 여린 생명이 어떻게
긴 겨울을 견디고 살아냈을까요.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시렸던
이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더니
한 살 두 살 쌓여갈수록
웃을 때보다 울고만 싶은 일들이
더 많아지네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머리로는
받아들이면서도
세월이 매겨준 나이보다
철이 한참 덜 든 가슴은
삶의 무게에 버둥거리곤 합니다.
해님 아래 시금치를 바라보며
날 듯 말 듯하던 눈물이
이제사 또르르 흐르는 걸 보니
제 마음도 저 땅처럼 흙처럼
참말로 녹아내리고 있나 봅니다.
봄님이 산골 자연보다 살짜쿵 한발 앞서
내 안에 찾아와 주신 것만 같아요.
추운 나날들을 지내는 순간순간
가끔 또 자주 시렸지만,
겨울이 있기에 새봄을
느끼고 맞이할 수 있는 걸 테죠.
자연의 순리대로 나에게 왔던 이 겨울을
이제는 곱게 떠나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하늘과 달과 별
해와 바람과 구름
땅과 나무와 새.
이 모든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음이
어느 때보다 고마운 밤입니다.
모두의 안녕과 내 안의 평화를
두 손 모아 빌어 봅니다.
푸근하게 어두운 산골 밤하늘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