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Feb 24. 2023

땅이 녹고 있어요, 제 마음도 같이…

시린 겨울을 곱게 떠나보내며

요즘 햇볕이 참 따스해요. 

겨우내 웅크려 지냈던 몸을 

자꾸 바깥으로 불러냅니다.   


천지에 봄기운이 가득하네요.

뭔가 내 안에 얽히고 뭉친 것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아요.


두 팔 활짝 벌려 

하늘과 바람과 해님을 

한껏 껴안아 봅니다. 

봄님을 가까이 느끼게 해 주셔서

정말, 많이, 아주 고마워서요.    

 

겨우내 얼어붙었던 밭이 사르르 녹고 있어요.


얼마 전 우수에 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그 뒤부터인 것 같아요. 

아침 온도계가 분명 영하 10도를 찍고 있는데 

슬쩍 포근해요. 

한겨울 같은 온도일 때는

마음까지 시릴 만큼 추웠거든요.    


텃밭엘 가보았어요. 

쩍쩍 갈라지고 있네요.

드디어 땅이 녹고 있나 봐요! 

손을 땅속에 푹 밀어 넣었어요.

쑥 들어갑니다.  

차갑게 촉촉한 흙을 만지고 또 만져 봤어요. 


한참을 눈에 덮였다가는

발로 밟으면 꽝꽝 소리가 날 만큼 얼어붙었던

이 고랑 저 이랑을 거닐면서,  

이 감촉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호미를 들기엔 아직 이른 듯한데요.

곧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텃밭에 가보았더니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있네요! 봄이 정말 가까워졌나 봅니다.


저 귀퉁이 밭을 찾아가니

지난해 늦가을에 심었던 시금치가,

먼지처럼 작던 그 씨앗이 싹을 틔웠네요. 

그 모습을 이제야 제대로 들여다봅니다. 

저 작고 여린 생명이 어떻게 

긴 겨울을 견디고 살아냈을까요.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시렸던 

이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더니

한 살 두 살 쌓여갈수록

웃을 때보다 울고만 싶은 일들이

더 많아지네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머리로는 

받아들이면서도 

세월이 매겨준 나이보다 

철이 한참 덜 든 가슴은 

삶의 무게에 버둥거리곤 합니다.  


긴 겨울을 견디고 이겨낸, 여리고 작은 시금치싹을 보며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해님 아래 시금치를 바라보며 

날 듯 말 듯하던 눈물이

이제사 또르르 흐르는 걸 보니

제 마음도 저 땅처럼 흙처럼

참말로 녹아내리고 있나 봅니다. 

봄님이 산골 자연보다 살짜쿵 한발 앞서

내 안에 찾아와 주신 것만 같아요. 


추운 나날들을 지내는 순간순간

가끔 또 자주 시렸지만,

겨울이 있기에 새봄을 

느끼고 맞이할 수 있는 걸 테죠.

자연의 순리대로 나에게 왔던 이 겨울을

이제는 곱게 떠나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얽히고 뭉쳤던 제 마음도 이 흙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아요.


하늘과 달과 별

해와 바람과 구름

땅과 나무와 새.

이 모든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음이

어느 때보다 고마운 밤입니다.


모두의 안녕과 내 안의 평화를

두 손 모아 빌어 봅니다.

푸근하게 어두운 산골 밤하늘 아래서.  


작가의 이전글 자연 속에서 고독을 삼키는 삶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