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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18. 2022

메마른 마음 적셔 준, 보랏빛 마른 가지

산골 텃밭 마지막 가지 말리기

여름내 풍성하게 열렸던 가지를,

시월이 되어도 기특하게도 튼실히 자라주던 가지를,

그 마지막 가지를 모두 모두 거두어

팔목이 아프도록 썰고 또 썰어서

가을 해님께 맡긴 지 일주일쯤.


언제 다 마를까 날마다 손꼽아 기다렸다.

건조기에 넣었음 하루 이틀이면 족했을 것을.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하늘 아래 늘어선 가지들을 어루만지니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눈에 보이는 마른 가지의 자태와

이 손이 느끼는 감각이 말한다.

그만해도 된다고. 이젠 다 되었다고.


하늘 아래 늘어선 보랏빛 마른 가지들. 해와 바람에 기대어 잘 마를 수 있었다.


해와 바람에만 기대어 가지 말리기란,

십 년 가까이 해 오면서도 늘 어렵기만 한 것을.

실패한 경험만도 한 보따리는 넘칠 터인데....


비가 드문 가을 날씨 덕에,

아침저녁은 적잖이 추웠어도

한낮만큼은 짱짱한 햇볕을

내어준 가을 하늘 덕분에

산골 텃밭 마지막 가지들을

오롯이 잘 지킬 수 있었다.


감격스럽다.


가지 말리고 보관하고 잘 먹기까지.

그 과정이 눈물 나게 힘들고 지난해서는, 

그 때문에 받은 상처도 켜켜이 쌓여서는,

올해는 정말로 진짜로 안 하려고 했는데….


시월이 되어도 기특하게도 튼실히 자라 주던, 통통하고 몰랑몰랑하게 예쁜 가지들.
산골 텃밭 마지막 가지를 모두 거두어  팔목이 아프도록 썰고 또 썰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자꾸만 자라는 가지가, 

나를 움직였다.

팔꿈치가 아파서 

팔꿈치보호대를 늘 차고 사는 옆지기가, 

소쿠리 가득 가지를 따고는 묵묵히 칼질하는 모습이,

보랏빛 고운 가지보다 더 세게 

내 마음과 몸까지 움직였다. 


그래서 더 감격스러운

이 고운 마른 가지들을

잘 챙겨 먹으리라.

잘 나누어 보리라.

가지를 담은 봉지마다 이름표를 붙이며

마음 다해 생각했다.


꼭 그래야 한다고 옥죄는 다짐이 아니라,

꼭 그러지 않아도 진짜로 괜찮다,는 

느슨한 바람 비스무리한 것.  


손대면 톡 부러질 듯 바싹 마른 가지들.
마음까지 적셔 준 가지나물, 잘 챙겨 먹고 잘 나누어 보리라.


참 이상타.

몰랑몰랑 통통한 가지는

손대면 톡 부러질 듯 바싹 말랐는디

내 눈가는 왜 촉촉해지는 거니.

가지에 들었던 물기가

저 하늘로만 날아간 게 아니구

내 마음에도 사분사분 

들어오기라도 한 거니.


무엇이었든 고마워.

마음이 너무 메말라서

적셔 줄 무언가가 참 필요했거든, 

지금 나는. 


보랏빛 길쭉한 가지는

볼 때마다 “예쁘다!”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만지면 물렁하게 탄탄한 그 느낌이 부드럽게 좋았는데.

겨울에 마른 가지 꺼내면서

그때 그 감흥과 감촉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지 말리기를 진심으로

잘.했.구.나, 싶은 밤.


가지밭 오갈 때마다

자꾸 떠오르던 이 노래로 마무리!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예쁜 두 눈에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
언제나 우리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 가요~♪♬”
(보랏빛 향기, 강수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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