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텃밭 마지막 가지 말리기
여름내 풍성하게 열렸던 가지를,
시월이 되어도 기특하게도 튼실히 자라주던 가지를,
그 마지막 가지를 모두 모두 거두어
팔목이 아프도록 썰고 또 썰어서
가을 해님께 맡긴 지 일주일쯤.
언제 다 마를까 날마다 손꼽아 기다렸다.
건조기에 넣었음 하루 이틀이면 족했을 것을.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하늘 아래 늘어선 가지들을 어루만지니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눈에 보이는 마른 가지의 자태와
이 손이 느끼는 감각이 말한다.
그만해도 된다고. 이젠 다 되었다고.
해와 바람에만 기대어 가지 말리기란,
십 년 가까이 해 오면서도 늘 어렵기만 한 것을.
실패한 경험만도 한 보따리는 넘칠 터인데....
비가 드문 가을 날씨 덕에,
아침저녁은 적잖이 추웠어도
한낮만큼은 짱짱한 햇볕을
내어준 가을 하늘 덕분에
산골 텃밭 마지막 가지들을
오롯이 잘 지킬 수 있었다.
감격스럽다.
가지 말리고 보관하고 잘 먹기까지.
그 과정이 눈물 나게 힘들고 지난해서는,
그 때문에 받은 상처도 켜켜이 쌓여서는,
올해는 정말로 진짜로 안 하려고 했는데….
쌀쌀한 날씨에도 자꾸만 자라는 가지가,
나를 움직였다.
팔꿈치가 아파서
팔꿈치보호대를 늘 차고 사는 옆지기가,
소쿠리 가득 가지를 따고는 묵묵히 칼질하는 모습이,
보랏빛 고운 가지보다 더 세게
내 마음과 몸까지 움직였다.
그래서 더 감격스러운
이 고운 마른 가지들을
잘 챙겨 먹으리라.
잘 나누어 보리라.
가지를 담은 봉지마다 이름표를 붙이며
마음 다해 생각했다.
꼭 그래야 한다고 옥죄는 다짐이 아니라,
꼭 그러지 않아도 진짜로 괜찮다,는
느슨한 바람 비스무리한 것.
참 이상타.
몰랑몰랑 통통한 가지는
손대면 톡 부러질 듯 바싹 말랐는디
내 눈가는 왜 촉촉해지는 거니.
가지에 들었던 물기가
저 하늘로만 날아간 게 아니구
내 마음에도 사분사분
들어오기라도 한 거니.
무엇이었든 고마워.
마음이 너무 메말라서
적셔 줄 무언가가 참 필요했거든,
지금 나는.
보랏빛 길쭉한 가지는
볼 때마다 “예쁘다!”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만지면 물렁하게 탄탄한 그 느낌이 부드럽게 좋았는데.
겨울에 마른 가지 꺼내면서
그때 그 감흥과 감촉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지 말리기를 진심으로
잘.했.구.나, 싶은 밤.
가지밭 오갈 때마다
자꾸 떠오르던 이 노래로 마무리!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예쁜 두 눈에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
언제나 우리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 가요~♪♬”
(보랏빛 향기, 강수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