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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12. 2022

서럽지 않게 아프지 않게 나를 울린다

꼭 하늘에 있는 울 엄마 목소리만 같아선... <언젠가 새촙던 봄날> 

몽실몽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봄날처럼 따스한 이야기를 만난다. 


봄날 다가오면 볼까 싶던 요 이쁜 책, <언젠가 새촙던 봄날>. 이불에 누워 한 장 두 장 보다가 그만 다 읽어 버렸네. 아껴가며 조금씩 보려고 했더니만. 신기하게도 책 보는 시간엔  멍하게 아프던 머리도 멀쩡해지는군.


밀양 어느 댁 양념딸, 박선미와 그이 어머니가 자분자분 애틋하게 살아가던 이야기. 시골살이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어떤 건 도시내기인 내 어린 시절 같고. 또 다른 건 지금 내 사는 모습도 같고. 하나 도저히 같을 수 없는 건 글마다 넘쳐나는, 딸과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진하게 알콩달콩한 사랑 나눔. 난 울 엄마랑 살갑게 지내본 적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없기에. 


“내한테는 너거들이 하늘이나 똑같다. 너거 입에 들어간 기 바로 하늘로 간 거다.”

장독 뚜껑을 닦으면서 덤덤하게 던지는 엄마 말에 얼마나 설레던지. 온몸이 둥실둥실 하늘을 나는 듯 들렁들렁. 시키지도 않은 걸레질을 하며 내내 흥얼흥얼거렸다.

“명태가 하늘로 날아갔대요오오오, 우리 입으로 다아 다아 들어갔대요오오오.”


쉬어 빠진 국수도 버리지 못하고 찬물에 헹궈 드시던 엄마가 하시던 그 말이 귓가에 울려서. “누가 밥을 맛으로 묵나?”


“엄마, 인덕이 뭔데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핸 만치 본치가 있으마 된다. 이짝이 생각해 주는 거만치 저짝도 내를 서운키 안 하고, 쪼께이라도 이짝을 생각해 주면 그런 기 인덕 있는 거 아이겠나?”


너그럽고 넉넉하고 속 깊은 엄마, 연한 배 같고 입 속 ‘쌔’처럼 얌전하고 착하고 예쁘던 양념딸.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와 몸짓에 마구 빨려 들어간다. 사랑과 믿음과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엄마와 딸. 부러움 가득 안고 두 사람 사이를 어정쩡하게 오가던 나는 책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 곳곳에 숨어 있는 울 엄마를 만난다. 선미의 마음 따라 내 마음도 촉촉하게 흐른다.


엄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한쪽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것만 같고, 물렁 다리를 걷는 것처럼 발 아래가 울렁불렁해서 어떻게 집까지 걸었는지도 몰라.


‘일도 없다니, 하루에도 열댓 장씩 벗어 내는 오줌 바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홑청 벗겨 빨아 요 이불 꾸미는 일은? 그것만 하나. 오 분을 못 넘기고 불러 대는 그 잔손거리는?’

입 밖으로 차마 내지 못하고 꺽 삼킨다. 그걸 뻔히 알면서 한 달이나 집을 등지고 살던 년은 누구더냐.


책장을 넘기며,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릿함에 같이 젖고. 책장을 거두며, 뜨거운 두부가 넘어갈 때처럼 애잔한 그 무엇이 울컥 올라와 끝내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흐른다. 슬퍼서가 아니라 따뜻해서 번지는 청주처럼 맑은 눈물.

보통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는 엄마를 벌써 하늘로 보낸 나 같은 늙은 고아한텐 쥐약인데. 이 책은 서럽지 않게 아프지 않게 나를 울린다. 그리고 보듬는다. 울 엄마도 나도 괜찮노라고. 


“야야! 선하기 살면 선하게 풀리고 악하기 살면 악하기 풀린다 안 카더나. 엄마는 이래 고달파도 나중은 좋을 끼다 싶으니 견디고 산다.”


“너거들 잘 커서 넘한테 욕 안 듣고 살면 그기 내한테 사는 힘이다.”


양념딸 어머니 말씀이 귓전에 계속 맴돈다. 꼭 하늘에 있는 울 엄마 목소리만 같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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