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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y 28. 2023

“마늘 네가 있어서 이 순간, 정말 많이 고맙다.”

마늘 농사에 살짜쿵 기대어 시린 겨울을 보내고

산골 살면서 마늘 농사 괜찮은 적이

잘 없었어요. 

이곳이 워낙 춥고 

비닐을 덮지 않고

비료를 주지 않고

또, 또… 

여러 가지 까닭이 있을 테죠. 


마늘 농사를 짓지 않으면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비껴가는 것만 같아서,

그저 꾸역꾸역 땅에 심었어요.

잘 자라지 못해도 

조금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  


지치고 버거울 때면 눈 덮인 마늘밭에 다가가 속말을 건네곤 했어요.


지난겨울,

제 삶에 참 크나큰 

마음 시련이 다가왔어요.

휘청거리는 시간들을 붙잡다가 

지치고 버거울 때면

눈 덮인 마늘밭에 다가가 

속말을 건네곤 했어요.


“마늘아, 많이 춥지.  

그래도 믿는다. 

너는 이 겨울을

반드시 잘 견디고 일어서리라는 걸.

그래, 지금 나도 많이 힘들어.

추운 날씨보다 더 시린 이 마음을

어떡하든 버티고 보듬어 볼게.

우리 새봄에 건강하고 맑은 모습으로

꼬옥 만나자꾸나. 

마늘 네가 있어서 이 순간,

정말 많이 고맙다.” 


마늘한테 살짜쿵 기대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했어요. 


뾰족하고도 강인하게 뻗어 난 마늘쫑 자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만큼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요!


어머나~ 올해는 참말 고맙고 신기하게도

마늘이 잘 자라고 있어요. 

(옆지기 농부님이 저 모르게

애쓴 것도 분명 큰 몫을 했을 겁니다.)

한겨울 두툼한 흰 눈 아래서

몹시 춥고 힘들었을 마늘싹이 

애처롭고 서글프게 느껴졌을 때만 해도

기대하지 못한 모습이랍니다. 


마늘쫑도 많이 올라왔네요.

길쭉한 줄기 사이로 

뾰족하고도 강인하게 뻗어 난 자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만큼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요!


옆지기가 열심히 마늘쫑을 뽑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몇몇만 제 손으로 거두었네요.

(저는 일관되게 게으른 농부입니다~^^) 


올해는 참말로 고맙고 신기하게도 마늘이 잘 자라고 있어요.


“뽕, 뿅, 뽀옹~♪”

마늘쫑 뽑을 때 나는 소리는

진짜 귀엽고 어여뻐요.

손맛도 엄청 짜릿하고요. 


마늘쫑 무침에

마늘쫑 볶음을

만들고 먹으며 

이 삶이 

참 다행이다,

참 고맙다,

참 행복하다,

여러 번 되뇝니다. 


마늘쫑을 뽑아서 무침을 만들고 먹으며 이 삶이 참 다행이다, 고맙다, 행복하다 되뇝니다.


이제 몇 날 며칠 지나고 나면

흙이 품고 있는 짱짱한 마늘을 

이 손으로 만지고 

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그때는  

저도 

겨울을 견디고 이겨낸 마늘처럼

단단하고 옹골지게

제 자리를, 저에게 온 깊은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1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마늘 농사 지어 온 삶이 

새삼스레 고마운 

비 나리는 오월 어느 밤,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마늘을 심겠노라고 

다짐해 봅니다.


그걸로

그것만으로도

답답한 숨통이 확 

트입니다~


그저

마늘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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