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감자 심기
감자를 심었습니다.
여러 날 봄비가 다녀가신 터라
땅이 참 촉촉하네요.
콕 콕.
땅속에 살포시 씨감자를 박고는
흙을 살살 덮어줍니다.
음....
이 감자를 가장 먼저 맛 보여 주고픈
소중한 인연이 떠오르면서요,
그리움이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아픈 그이가 보고 싶고, 많이 걱정되고,
그럼에도 싱그러운 초록빛 희망이
내 안에서 찬찬히 흐르더랍니다.
그 사람을 그리고 응원하면서
내 반드시 감자 농사를 잘 지어 보리!
굳은 다짐이 절로 우러나네요.
둥글넓적한 감자 싹이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이 마음, 욕심이라 하여도 좋아요.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아니니까요.
땅과 더불어 이러구러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다가올 시간이니까요.
감자밭을 천천히 나오면서요,
조금 이르더라도
설레는 맘으로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것.
그게 참말 좋구나, 새삼스레 느꼈답니다.
고등학교 때 엄마가 싸 준 도시락 반찬이
아마도 칠팔 할쯤 감자였어요.
감자볶음, 감자조림....
육 남매 도시락을 챙겨야 했던
엄마한텐 감자가 가장 좋았나 봐요.
값이든 양이든요.
(어묵, 소시지, 달걀 등등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로 도시락에 담길 수 있었네요.)
집에는 늘 감자가 상자째 있던 기억이 나요.
같이 밥 먹는 친구들이
너는 늘 감자 반찬이고
얼굴도 감자를 닮았다면서
어느 날 저한테 '감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어요.
썩 기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어요.
엄마가 해 주신 감자 반찬이
전 늘 맛있었거든요.
이렇게 맛난 감자랑 엮인다는 것이
그럭저럭 괜찮게 여겨지기도 했어요.
근데요, 울 엄마는 저랑 좀 다르셨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쌀, 보리 대신
감자랑 고구마로 밥을 대신했다면서요.
물린다고, 안 먹고 싶다고도 하셨던 것 같아요.
프라이팬에서 감자가 기름이랑 만나서
‘촤라라락’ 하는 그 소리가 꼭 빗소리랑 비슷하거든요.
어느 어린 시절 ‘어, 비 오나?’ 하면서
부스스 눈을 떴더니만, 비는 보이지 않고
엄마가 부엌에서 감자를 볶고 계셨어요.
그때 왜 그런지 막 신기해서
감지볶음이 만들어지는 풍경을 마음에 담았더랬어요.
어른이 되어 감자를 볶을 때면
그때 그 풍경이 저절로 떠오르곤 합니다.
역시나 빗소리처럼 들리더라고요.
지금도 정말 좋아요, 감자가 기름과 더불어
촤르르 익어 가는 그 소리가요.
이번에 밭에 심은 씨감자는
마을에서 공동구매로 산 거고요.
지난해 우리가 심고 거둔 감자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작고 쪼글해서는 다듬기가 영 어려운데요.
그래도 열심히 정성껏 맛나게 먹고 있어요.
한 해 동안 감자만큼은
우리 부부가 농사지은 걸로 먹고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괜찮게 살았구나, 저를 응원하고 싶어요.
저는 감자가 좋아요.
감자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 삶도 무척 고마워요.
걱정거리도 쌓여 있고
생각해야 할 일들도 많고 많지만요.
오늘은, 오늘 하루만큼은
감자농사가 안겨 준
추억 꾸러미 행복 꾸러미에 묻혀
자연에 그대로 몸을 실은 채
그저 그저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를 테고요,
무엇보다 올해 첫 농사를 지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