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산골 부부의
행복한 추석 전날 이야기~
"어머니, 모자란 건 늘 그랬듯이 마음으로 때우겠습니다!^^"
추석 전날입니다. 좁고 구불한 마을 길마다 차가 가득입니다.
대문 없는 우리 집, 전 같으면 산골부부도 서울에 있을 이 시간. 그랬으면 아마도 우리 집 마당에 다들 주차를 했을 터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저희 부부는 산골 우리 삶터에 머물고 있습니다.
추석 전날입니다. 좁고 구불한 마을 길마다 차가 가득입니다. 다들 부모님 뵈러 멀리서 오셨겠죠?
이 모든 건 지난해부터 모든 차례와 제사 형식을 싹 물린 멋진 시어머니 덕분입니다. 전 부치고 잡채 무치고 하느라 분주할 이 시간을 시어머니 덕에 산골에서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추석 당일, 내일이면 산골부부도 서울로 갑니다.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반가운 시댁 식구들 얼굴을 만나기 위해서죠. 그리고 친정 엄마, 아빠 산소에 우리 잘 지내고 있노라고 인사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죠.
추석 하루 앞둔 오늘 산골부부도 나름 바삐 지냈어요. 식구들한테 산골 먹을거리를 안겨 주어야 하니까요. 산밤 주운 거 식구 수대로 싸고, 옆지기가 마을 아저씨 사과농사 수확을 거들어드린 덕에 생긴 공짜 장수사과도 챙기고.
시댁, 친정 식구들한테 추석 선물로 안겨 줄 산골 먹을거리들. 옆지기가 일손 거들어 공짜(?)로 생긴 장수사과랑 열심히 줍고 또 주운 산밤!
텃밭과 자연이 함께 키운 텃밭 사과. 농약 안 치고 자라면 저절로 이런 때깔이 나온답니다. 못생겨 보여도 맛은 엄청 좋아요!
셋째 딸 텃밭에서 난 사과를 엄마 아빠도 분명 좋아하시겠죠? 애잔하게 보고 싶은 마음, 이 사과에 고이 담아 산소로 찾아갈게요!또 우리 텃밭 사과도 여러 알 거두었어요. 요건 친정 엄마 아빠 산소에 올리려고요. 몇 알은 식구들한테 농약 없이, 하늘과 바람과 구름의 힘만으로 씩씩하게 자란 건강한 텃밭 사과 맛도 느끼게 해 주고 싶기도 하고요.
또, 중요하게 챙길 것! 시어머니께 드릴 용돈입죠. 산골살이 시작하면서 그전까지 10년 넘게 달마다 꼬박꼬박 드렸던 시엄니 용돈을 거침없이 끊었어요. 고정 수입이 없는 산골 살림으로는 도저히 이어 갈 자신이 없었거든요. 다만 이렇게 만나 뵐 기회가 오면 그때만이라도 어떡하든 챙겨드리려고 애쓴답니다.
산골살이 시작하면서 달마다 드리던 시엄니 용돈을 끊었어요. 하지만 명절 때만큼 마음 다해 봉투를 채워 본답니다. 모자라지만, 한참 모자라지만 나머지는 오롯이 마음으로 대신할게요!다행히 최근 들어 산골 프리랜서 일감이 하나가 끝나서 작게나마 수입도 생겼겠다, 그전보다 조금 많이 넣어 보았어요. 늘 그러셨듯이 받으실 땐 엄청 마다하실 테지만 이렇게라도, 명절 때라도, 조금이라도 챙겨드리지 못하면 제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요.
그 마음을 아시니까, 결국엔 받아들이실 거예요. 그리곤 그 가운데 일부를 딱 꺼내서 산골부부한테 차비하라고 주실 거예요. 언제나 그러셨거든요.^^
산골 추석 준비가 여기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손 바지런한 옆지기는 고구마 밭으로 납시더군요. 명절 지나고, 명절 뒤풀이 겸 고구마 캐러 오겠다는 멋진 손님들이 있거든요. 그분들한테 군고구마 맛 보여 드리자면 미리 캐야 한다나요. 고구마는 캐서 바로 먹으면 맛이 없거든요. 캔 뒤에 일주일은 지나야 제대로 맛이 들어요.
명절 끝나자마자 찾아올 손님을 위해 고구마를 미리 캤어요. 어쩜, 고된 폭염에도 이리 잘 자라주었네요!
어머나! 고구마가 아주 굵어요! 고된 폭염에도 어찌 이리 잘 자랐을까요. 고마워서 눈물 날 것만 같아요.
저는 그저 감동에 젖어 있는 순간 옆지기는 고구마줄거리를 열심히 다듬네요. 이 또한 명절 지나고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서죠. 이 가을이 안겨줄 고마운 반찬, 고구마 줄거리 볶음을 해드리려고요.
저는 저대로 바쁜 나머지 고구마줄거리 다듬는 일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요. 대신, 곱고 야무지게 고구마줄거리 다듬은 옆지기의 손길을 흐뭇하게 바라만 보았죠.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옆지기 홀로이 다듬은 고구마줄거리. 이 정성까지 더해져서 명절 지나 곧 찾아올 산골손님의 입도 마음도 많이 흐뭇할 거예요.이제 내일이면 산골을 떠야 하네요. 밤이며 사과며 저 많은 먹을거리를 등에 손에 이고 지고 가야 할 테죠. 저걸 어떻게 가져가나, 걱정이에요. 하지만 무거운 짐은 옆지기가 들 테고, 또 제 어깨도 나름 탄탄하니까요.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고 산골 먹을거리를 보면서 좋아할 식구들 얼굴만 그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산소에서 만나 뵐 우리 엄마 아빠도요. 셋째 딸 부부 텃밭에서 난 사과를 엄마 아빠도 분명 좋아하시겠죠? 산골부부, 등골은 좀 휘어도 아마 마음만은 행복하게 쫙쫙 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아, 이토록 평온하고 아늑한 추석 전날이라니요. 음식 준비에, 식구들 등쌀에 고생하실 분들께는 괜스레 죄송하지만 그래도 추석 앞둔 이 아늑한 산골 시간을 마저 즐겨 보렵니다.
산골부부, 요 먹을거리들 싸들고 서울 가자면 등골은 좀 휠 테지만 아마 마음만은 행복하게 쫙쫙 펴질 거예요!내일이면 복작복작 서울 어느 거리를 휘젓고 다닐 테지만, 아마 그 시간도 지금 못지않게 행복할 거예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시댁, 친정 식구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늦은 저녁, 꾸불꾸불 마을길에 아까보다 더 많이 늘어선 차들을 바라봅니다. 그분들께 한마디 건네고 싶네요.
“부모님 찾아 당신들이 찾아온 이 산골을, 저희 부부도 이제 곧 부모님 찾아 떠난답니다. 내일부터 저희 집 마당이 훤히 빌 테니 마음껏 편하게 차 세우세요!^^”
“부모님 찾아 당신들이 찾아온 이 산골, 저희 부부도 이제 곧 부모님 찾아 떠난답니다. 내일부터 저희 집 마당이 훤히 빌 테니 마음껏 편하게 차 세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