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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03. 2018

“못생겨도 맛은 좋은
사과드려요~^^”

단단하고 뽀얀 살이 달콤 새콤 맛난 텃밭 ‘검정 사과’  

세상에, 사과가 시커매요! 


지난봄만 해도, 아니 초여름만 해도 푸릇푸릇 곱게 익어 가던 텃밭 사과.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해서 어쩔 줄 몰랐던 그 사과가 한여름 접어들면서 서서히 꺼멓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초여름만 해도 푸릇푸릇 곱게 익어 가던 텃밭 사과가 한여름 접어들면서 서서히 꺼멓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심은 지 세 해밖에 안 된 가느다란 사과나무 줄기를 벌레가 파먹는 모습이에요. 


알 만한 분한테 여쭈니 벌레가 먹어서 생기는 자욱이라고 하네요. 사과 모습이 온전한 걸 보면 속까지 파먹는 건 분명 아닌데. 이 벌레의 생존법은 대체 무엇인지 이렇게 사과 껍질을 거뭇거뭇하게 물들이더군요. 


아, 사과나무 줄기는 벌레가 파먹긴 하더라고요. 저 가느다란 줄기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저리도 파고드는지 벌레한테 물어보고만 싶었어요. 땅 위에 자꾸만 쌓이는 나무 속살을 바라보기가 너무 안타까워 줄기에라도 약을 줄까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어영부영 그냥 지나가 버렸네요.


사과는 올해 처음 열렸어요. 작은 묘목 심은 지 세 해 만에 벌어진 경사였죠. 사과 꽃이 하얗게 피어났을 때만 해도 저 꽃이 정말로 열매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요. 하지만 정말로 사과 꽃이 사과 열매로 바뀌더군요!  


손톱만 하게 작은 사과 열매를 맨 처음 봤을 때 어찌나 놀랍고 기뻤는지 몰라요.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 작은 열매를 보고 또 보고 했답니다. 작은 열매가 조금씩 커지더니 사과 모습 비슷하게 자랐을 때는 환호성을 지르고야 말았어요. 


작은 꽃망울이 하얀 사과 꽃으로 피어나고, 흰 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어요.
손톱만 한 사과 열매를 맨 처음 만났을 때 어찌나 놀랍고 기뻤는지 몰라요.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 작은 열매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또 보았어요.


“사과다, 사과가 열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닳을까 애지중지 살피던 그 곱고 예쁘던 사과. 하지만 그예 검게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애달팠어요. 그러면서 우리 마을 사과농사 짓는 분들이 새벽마다 농약 뿌리는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저 거뭇거뭇한 사과는 상품성 제로를 넘어 아예 마이너스 아니겠어요?


사과로 유명한 장수에 살다 보니 사과농사 짓는 분들을 더러 만나게 됐고, 하물며 사과농사 해 보라는 권유 또는 강압(?)을 은근히 많이 받았어요. 돈이 된다고 하면서요.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닳을까 애지중지 살피던 그 곱고 예쁘던 사과. 하지만 그예 검게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애달팠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사과농사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물론 땅도 없지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보다는 ‘약’ 때문에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 눈으로 똑똑히 보이는, 내 귀로 사무치게 들리는 농약 뿌리는 모습과 소리에 그만 넌덜머리가 나 버렸거든요. 약을 많이 쳐야 한다는 걸 ‘머리’로 아는 거랑 몸으로 느끼는 거랑은 정말 차원이 달랐어요.  


 웽~웨엥~~

한여름 새벽 다섯 시 언저리에 눈을 뜨면요, 온 동네에 “웽~” 하는 소리가 들려요. 다름 아닌 사과에 약 뿌리는 소리죠. 날마다, 날마다 그 소리가 들려요. 이 집에서 뿌리고 저 집에서도 뿌리고 하기 때문이겠죠. 


마을 분들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 채소들은 며칠 걸러서라도 약을 주는 듯한데 사과는요, 정말 거의 날마다 약 치는 소리가 들려요. 물론 약만 치는 게 아니라 영양제 같은 것도 주기 때문에 저 소리가 더 자주 들리는 걸지도 몰라요. 


물룐요, 그렇게 약 쳐서 기른 사과를 마을 분들이 나눠 주시면 덥석덥석 잘 받아먹어요. 식구나 친구들한테 사서 보내기까지 하고요. 어쩔 수 없다는 거, 약을 치지 않고 사과농사 짓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딱 한 그루 있는 사과나무의 변천사를 지켜보면서 옛날에, 옛날에는 과일농사를 어떻게 지었을까 많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올해 처음으로 딱 한 그루 있는 사과나무의 변천사를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먼저는 ‘저걸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큰비 뒤끝에 뚝뚝 떨어진 사과를 시험 삼아 맛을 보았는데…. 웬일인가요! 엄청 맛있는 거예요!


덜 달아요, 덜 시어요. 근데 뭔가 입에 짝짝 붙어요. 

첫 사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진짜 감동스러웠어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하물며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맛있기까지 하니까요. 


옛날에, 옛날에는 과일농사를 어떻게 지었을까 많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냥 이렇게 저희처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임금님께 진상 올리는 과일은 잿물이든 뭐든 자연 약을 치긴 했을 거 같지만 그냥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꺼먼 사과를 먹었을 것만 같아요.


큰비 뒤끝에 뚝뚝 떨어진 사과를 시험 삼아 맛을 보았는데…. 웬일인가요, 엄청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욕심이 생겼어요. 사과라는 과실에 대한 개념을 바꿔 보고 싶다는. 가장 먼저 때깔부터!


사과는 빨갛다!

바로 이 개념부터 바꾸는 거예요. 더 나아가 ‘벌레 먹어 까무잡잡한 사과가 아주 맛나다’는 새로운 인식을 퍼뜨리는 거죠. 그러면, 그럴 수만 있다면 사과에 약 치는 그 힘든 수고를 우리 마을 분들이, 또 수많은 사과 농사꾼들도 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요. 


날마다 농약 치느라 애쓰는 농민들을 보는 것도 마음이 참 아파요. 무농약 사과 재배기를 다룬 일본 영화 <기적의 사과>에서 보았던, 사과나무에 약을 주다가 몸을 많이 상한 어느 여자 분 모습도 자꾸만 떠오르고요. 


약을 주지 않으면 때깔이 안 나고, 그럼 사람들이 사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약을 쳐야 하고. 뭔가 근본부터 사과에 대한, 나아가 과일에 대한 인식을 바꿀 길을 찾고만 싶어요. 거뭇한 사과도, 벌레 먹은 사과도 사람들이 즐겁게 사서 맛있게 먹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번 추석에 친정 엄마, 아빠를 함께 모신 산소에 텃밭에서 자란 검정 사과를 올렸답니다.


텃밭 사과를 보며, 어릴 때 먹던 사과랑 왠지 비슷한 그 아삭하고 새콤한 맛을 느끼며 참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부터 작은 실천을 해 보았답니다. 이번 추석에 친정 엄마, 아빠를 함께 모신 산소에 갔거든요. 엄마 아빠 산소에 텃밭에서 자란 검정 사과를 올렸답니다. 형제들이 요 못생긴 사과도 괜찮다고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엄마, 아빠도 분명 좋아하셨을 테죠? 


약 안 친 검정 사과가 제 입에만 맛있는 건 아니었나 봐요. 


장수 텃밭에서 재배한 저 거무튀튀한 사과가 정~말 맛있더라.
껍질을 벗기니 단단하고 뽀얀 속이 달콤 새콤 맛나게 먹었네.
 빨갛고 예쁜 사과는 싱겁게 느껴지더라.


친정 큰언니한테 맛으로 극찬을 받은 텃밭 사과. 빨간 부분은 지난여름 폭염에 타들어 간 모습인 듯해요.


이 사과를 맛본 우리 큰언니가 시장에서 산 때깔 고운 사과보다 텃밭 훨씬 맛있다고 극찬을 해 주었지 뭐예요! 언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뭔가 제 바람이 아주 천천히라도 이뤄질 수 있겠다는 설렘마저 막 일어났답니다. 


괜스레 기분이 좋은 나머지 거무튀튀한 사과 열매를, 그 열매를 고이 품고 있는 사과나무를 바라보면서 은근슬쩍 아재 개그를 외치고만 싶네요. 


못생겨도 맛은 좋은 사과드려요~^^

그리고 노래 한 자락 슬그머니 떠올라요. 한돌 씨가 부른 ‘못생긴 얼굴’이라는 노래랍니다. 못생겨도 맛은 좋은 텃밭 사과한테 맨 마지막 노랫말만 살짝 바꿔서 나지막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해
그놈의 손가락질 받기 싫지만 위선은 싫~다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생긴 걸 어떡해
못생긴 사~과 자연 그대로 길러서 그~런 걸
못생긴 사~과 속을 맛보면 맛있는 걸 어떡해~♪”


“못생긴 사~과 속을 맛보면 맛있는걸 어떡해~♪”


못생겨도 맛은 좋은 


사과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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