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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04. 2018

전을 부치면서
마음도 함께 부치는 거야~

겁 없이 시작한, 일흔 명 넘는 사람들을 위한 전 만들기

일흔 명 넘는 사람들이 먹을 전 부치기. 이 가을 불현듯 제 앞에 닥쳐온 일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 가까이에 소중한 이들을 위한 쉼터가 있죠.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은 곳으로 바꾸고자 몸과 마음 다해 힘써 온 이들이 아무 때고 쉬어갈 수 있는 곳. 그 쉼터가 생긴 지 다섯 돌을 맞아 작으나마 가을잔치를 열게 되었다기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시작된 일. 바로 수십 명이 먹어야 할 전 부치기였답니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지요. 명절이건 제사건, 또 마을 잔치까지 더해서 제가 전은 좀 부쳐 봤거든요. 근데 잔치에 오는 사람 수가 일흔 명이 훌쩍 넘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선 왠지 겁이 좀 나데요.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양이 얼마만큼이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아서요. 그래도 어째요, 제가 바라서 하게 된 일이니 어떡하든 전을 부쳐 내야죠. 


고소하고 매콤한 맛이 아주 일품인 고추전을 한번 만들어 볼 마음으로 텃밭에 남은 청양고추를 죄 땄어요.


잔칫날 하루 전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재료 준비부터 손이 많이 갈 것 같았거든요. 


가장 먼저는 텃밭에 있는 청양고추를 죄 땄답니다. 전을 부치는데 웬 고추냐고요? 우리 마을 잔치 때 보고 듣고, 또 먹어본 것 가운데 참 마음에 든 게 있거든요. 바로 고추전이죠! 고소하고 매콤한 맛이 아주 일품인데요, 고걸 한번 만들어 볼 마음을 먹었답니다. 텃밭에서 자란 건강 고추로 만든 고추전, 생각만으로도 뿌듯하잖아요.


고추 따고 씻기까지는 금방이었는데 아주 잘게 써는 데 엄청 시간이 드네요. 저희 부부가 같이 달라붙었음에도 두세 시간이 훌쩍 흘러가는 거 있죠. 눈물 콧물 흘려 가며 고추를 썰고 있자니, 처음 만들어본 고추전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저절로 알겠더군요. 고추 다 썰고는 고추전에 함께 들어갈 오징어까지 잘게 다듬고 나서야 고추전 재료 준비가 끝났어요.


고추 따고 씻기까지는 금방이었는데 아주 잘게 써는 데 엄청 시간이 드네요.


자, 이젠 다음 ‘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번엔 ‘야채전’을 위한 재료들이에요. 텃밭에서 거둔 감자랑 호박이 주인공이죠. 감자가 좀 작다 보니 껍질 깎는 데만도 시간이 적잖이 걸리네요. 


껍질은 제가 깎고, 채칼에 치대는 건 옆지기 몫! 제가 좀 덜렁거려서 채칼 만지는 것도 조금은 조심스럽거든요. 이 칼, 저 칼에 제가 자주 손을 벤답니다. 실은, 이날 감자 껍질 깎으면서 벌써 칼에 손을 벤 뒤이기도 했어요. 그때 좀 서글퍼서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답니다. ‘아, 난 왜 이렇게 부엌일에 허당일까….’ 그래도 얼른 마음 다잡고, 대일밴드 붙여서 나머지 일을 치러냈답니다.  


야채전의 주인공 텃밭 감자. 크기가 좀 작다 보니 껍질 깎고 채 치는 데만도 시간이 적잖이 걸리네요.


감자에 이어 호박이랑 당근도 채칼에 곱게 채 쳤어요. 양파는 도마에서 썰었고요. 야, 요것도 고추전 못지않게 재료 마련하는 데 시간이 깨나 걸리네요. 


전 준비가 여기서 끝이냐, 당연히 ‘아니올시다’죠! 일흔 명 넘는 사람들이라는데 전 종류도, 양도 무조건 많아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요. 막 머리 굴렸답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 ‘피망전’이란 걸 도전해 봤어요. 별거 없답니다. 피망을 잘게 다듬어 밀가루에 넣어 부치는 거죠. 피망의 달큼함과 밀가루가 어우러진 특별한 맛을 기대하면서 피망을 썰고 또 썰었어요.  


당근도 채칼에 곱게 채 쳤어요. 양파는 도마에서 썰었고요. 야채전도 고추전 못지않게 재료 마련하는 데 시간이 깨나 걸리네요.


마지막으로 낯익은 것도 준비했어요. 바로 단호박전이랑 부추전이죠. 단호박은 칼로 썰고, 부추는 고이 씻어 놓으면 그만이기에 준비가 다른 거에 견주면 간단했어요. 여기까지 재료를 갈무리하는데 반나절 훌쩍 넘어가 버리네요.   


그다음엔 무슨 일이 이어졌을까요? 바로 밀가루 반죽입니다! 큰 그릇에 밀가루 잔뜩 붓고, 소금이랑 달걀 넣고 마구 저었어요. 제가 전 부치기 못지않게 밀가루 반죽도 적잖이 해봤는데 이번엔 그 규모가 남다르다 보니 힘이 꽤 많이 들더군요. 


‘헉헉’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온몸을 던져 밀가루 반죽을 힘겹게 해냈답니다. 다 된 하얀 밀가루 반죽을 바라보니 참 고와요.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힘은 들었지만 뭔가 새로운 힘이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번엔 그 규모가 남다르다 보니 ‘헉헉’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온 몸을 던져 밀가루 반죽을 해냈답니다.

재료 준비 마치고 밀가루 반죽까지 끝내 놓으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네요. 쉼터 잔치는 다음날 저녁. 


잠시 고민을 했죠. 전은 바로 부쳐서 먹어야 더 맛있는데, 내일 아침부터 부쳐도 될까? 


근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더라고요. 반죽과 재료들만 쳐다봐도 저 많은 걸 당일에 해낸다는 건 무리이지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녁밥 대충 챙겨 먹고는 바로 전 부치기에 들어갔답니다. 


역시, 미리 하길 잘했죠. 고추전부터 정말 시간 오래오래 걸리더군요. 마을 아주머니한테 전기 프라이팬을 빌려두길 천만다행이었죠. 


그리하여 옆지기는 마루에 앉아 전을 부치고, 저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전을 부치는 시간이 길게 이어졌어요. 


참 신기한 게요, 명절이나 제사 때 전을 부치면 그 일이 참 힘들었거든요. 몸도 지치고 왜 그런지 마음도 복잡다단하고. 


그런데 이날은 달랐어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전을 부치는데도,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참 뿌듯하기만 하더라고요. 이 부침을 먹을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그랬어요. 그렇게 늦은 밤까지 뿌듯한 마음 안고 고추전, 피망전, 단호박전을 좍 만들어 냈답니다. 


고추전은 부칠 때부터 고소한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우더니만, 정말 맛있었어요. 매운 고추와 고추씨가 밀가루랑 기름과 만나 만들어 내는 그 맛! 마을 분들이 잔치 때마다 고추전을 꼭 하는 까닭을 비로소 알겠더군요. 


고추전은 부칠 때부터 고소한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우더니만, 고추씨의 고소한 맛이 더해져서는 정말 맛있었어요.


피망전은요, 예상한 대로 달큼한 맛이 참 좋았어요. 매운 거 못 드실 분들을 생각해서 준비한 건데 괜찮겠다 싶더군요. 그리고 단호박전은…. 오! 제가 호박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달콤하고 폭삭한 맛이 정말 입을 행복하게 해 주었어요. 


이 전, 요 전 하나둘 맛보고 나니, 사람들이 좋아할 것도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둥실둥실 떠오르더군요. 제 입에 맛있으니 그네들도 맛있어할 것만 같아서요.    


고추전처럼 매운 거 못 드실 분들을 생각해서 준비한 피망전, 달큰한 맛이 참 좋았어요.
단호박전은, 달콤하고 폭삭한 맛이 정말 입을 행복하게 해 주었어요.


모든 전을 다 만들고 싶기는 했는데, 시간도 너무 늦고 어쩔 수 없이 힘이 부쳐서 야채전과 부추전만 다음 날로 미루고는 행복한 마음 안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물론, 전 부치면서 막걸리 한 사발에 날름날름 따끈한 전을 입에 밀어 넣는, 전 부치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은 톡톡히 누렸답니다.  


드디어 쉼터 잔칫날 아침이 밝아왔어요. 일찍부터 일어나 전 부치기부터 시작했답니다. 고추전 못지않게 양이 많은 야채전! 전날과 다름없이 옆지기는 넓적한 전기 프라이팬에, 저는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 두 개 올려놓고는 열심히 뒤집고 또 뒤집고. 


감자, 호박, 당근, 양파가 어우러진 야채전은 참 건강한 맛이었어요. 각 재료들이 제 맛을 잃지 않되 서로의 맛을 받쳐 주고 보듬어주는 듯했죠. 부추전은 따로 맛보지 않았답니다. 부추 기르면서 더러 먹어본 거라서 딱히 그 맛이 궁금하지가 않았거든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람들에게 맛 보이자면 한 장이라도 아끼고 싶었고요. 


감자, 호박, 당근, 양파가 어우러진 야채전은 참 건강한 맛이었어요.


점심 먹는 것도 뒤로 하고 두어 시간 불 앞에서 요리조리 몸을 움직인 덕에, 오후 한 시쯤 모든 전을 다 부쳤답니다! 전날부터 기름 냄새에 너무 취한 나머지, 점심밥은 구수한 된장찌개로 느끼한 속을 달랬죠. 


이틀에 걸쳐 부친 전들을 커다란 쟁반과 그릇에 차곡차곡 나누어 담습니다. 이 음식을 먹게 될, 일흔 명도 훨씬 넘는다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부디 맛나게 드셨으면 좋겠다, 그 마음만으로도 다시금 행복하게 차오르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죠.


정성껏 부친 전을 조심조심 차에 실어 쉼터에 가져다 드렸어요. 맛나게 먹는 모습까지 보고 싶었지만 우리들 몫은 음식 준비, 딱 거기까지였으니까요. 부디 얼굴 모르는 소중한 분들이 잘 드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틀에 걸쳐 만든 전들을 커다란 그릇에 차곡차곡 나누어 담습니다. 얼굴 모르는 그이들이 부디 맛있게 드시기를 바라면서. 


쉼터 잔치가 열린 다음 날, 저희 부부가 음식 나눔을 할 수 있게끔 징검다리 몫을 해준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요.(쉼터 가까이 사는 몇몇 분들이 각자 잘할 수 있는 음식들을 마련했답니다. 어묵탕, 오징어무침, 무생채, 멸치볶음, 버섯볶음…)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저희들이 준비한 음식들 맛있게 먹었다고요. 특히나 전이 맛있었다는 말씀이 자자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주시더군요. 


아, 뭔지 모를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저희 부부가 전을 부칠 때, 이 음식을 드시게 될 당신들 마음이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함께 부쳤거든요. 그분들은 산골짜기 부부의 그 마음까지 전과 함께 몸과 마음에 담아 주셨을 것만 같아요. 그걸로 충분하고도 넘치기만 해요. 이틀에 걸쳐 전을 부친 보람으로는. 


일흔 명 넘는 분들을 위한 전 부치기. 겁 없이 시작하길 정말 잘한 거 같아요.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임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임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사람들은 보통 말을 하지요. 전 부치기처럼 힘든 일이 없다고. 어느 만큼 맞는 말이기도 해요. 기름 냄새에 시달리며 한 장 한 장 부쳐내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번 일을 치르고 나니 전 부치기가 막 좋아지려고 해요. 


이 마음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지만요, 앞으로 제 앞에 전 부치는 일이 급작스레 닥쳐오더라도 거침없이 받아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더하기 용기가 생겼어요. 혹시 생각보다 힘이 들더라도 이번에 옆지기랑 주고받은 아재 개그 되뇌면서 어떡하든 이겨낼 수 있을 것도 같답니다.


‘전을 부치면서 마음도 함께 부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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