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Oct 31. 2018

‘길 위의 인문학’과
길 위의 산골 강사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니, 그것도 무려 ‘강사’로서!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서울 살 땐 참 낯익은 말이었는데, 산골에서 지내면서는 어느새 낯선 말로 다가오는 그것. 아,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니, 그것도 무려 ‘강사’로서! 


은행잎 노랗게 물든 어느 가을날, 길을 떠났다. 충청북도 어느 도서관에서 열리는 ‘길 위의 인문학’ 강연에 참여하기 위해서. 운이 좋아 도서관 두 곳에서 이틀에 걸쳐 강연을 하게 된 김에, 아예 1박 2일 짐을 꾸려 길을 나섰어.  


은행잎 노랗게 물든 가을 날, 길을 떠났다. 어느 도서관에서 열리는 ‘길 위의 인문학’ 강연에, 무려 '강사'로 참여하기 위해서!


전라북도에서 충청북도까지.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 길을 가는 동안 오랜만에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설레고 떨리기만 했어.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왠지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 자리를 내가 잘 치러낼 수 있을까, 도서관 강연 달랑 몇 번 해 본 산골 강사로서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작은 걱정과 함께.  


어느덧 석양이 깔리고, 어둑어둑한 도서관 앞에 서서 큰숨 들이마셨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바로 내 책 제목처럼 웃으면서 즐겁게 해 보자!
산골혜원, 잘할 수 있을 거야!’

널찍하게만 보이던 강연장이 조금씩 사람들이 내뿜는 온기로 따뜻해진다. 휴, 다행이다.


전화 목소리만 주고받던 사서 선생님을 만나 강연장에 들어서니, 꽤 넓어. 막 겁이 나. 이 휑한 공간을 얼마나 사람들이 채워줄 수 있을까…. 


같은 ‘군’ 단위여도 내가 사는 곳보다 사람 수가 많은 고장. 하지만 여기나 거기나 시골은 시골. 도시가 아닌 건 마찬가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추수철. 늦은 저녁 도서관 강연에 찾아올 여가를 몇 분이나 낼 수 있을까. 그것도 나처럼 알려지지 않은 강사가 온다는데. 한가득 마음에서 출렁이는 걱정을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  


다행히 한 분, 두 분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이고. 널찍하게만 보이던 강연장이 조금씩 사람들이 내뿜는 온기로 따뜻해져. 


휴, 다행이다.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주제 때문에 그전보다는 ‘노래’도 좀 줄이고, ‘이야기’로 알차게 채워 보고자 준비할 때부터 마음을 많이 썼어. 그럼에도 여전히 기타와 노래에 기대는 산골 강사, 어쩔 도리는 없더군. 그러면 좀 어때. 내 책도 삶도, 노래와 일과 삶이 맛깔나게 어우러진 것이니 강연도 저절로 그리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뭐. 그렇게 혼자 자기 위안을 삼았지. 


내 책도 삶도, 노래와 일과 삶이 맛깔나게 어우러진 것이니 강연에서도 저절로 노래가 많이 이어졌어. 


강연장에 찾아오신 분들 거의가 나보다 나이가 있는 듯 보였지. 그래서 처음엔 다른 때보다 좀 떨렸어. 나보다 더 한참 전부터 귀농, 귀촌하신 분들 같았거든. 그분들 앞에서 산골 살이 오 년 이야기가 허술하게 느껴지지나 않을지 걱정도 되고.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어.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졌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정말 다정했기 때문에. 노래 한 자락 건넬 때면 손뼉도 힘껏 쳐 주고, 잔잔한 노래가 흐를 땐 두 눈 감고 조용히 따라 부르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내가 더 힘을 얻었지 뭐야. 막 즐겁기도 했고.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이것저것 묻는 분들도 다른 때보단 은근히 많았어. 아무래도 도시가 아니어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 않아서 저절로 하고 싶은 말들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 


이 사람, 저 사람 손들고 뭔가를 많이 이야기하셔. 더구나 어떤 분은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면 좋겠다’ 하면서 도움 말씀까지 주시는 거야. 답을 말끔하게 드리지 못한 내용들도 있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얼씨구나!’ 싶었어. 이런 게 바로 ‘소통’이니까. 강사 혼자 주절주절 대는 것보단 함께 있는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자꾸 하게 되는 분위기, 나름 괜찮지 않아? 아마도 나에게 그런 힘(?)이 있나 봐. 자꾸만 끼어들고 싶게 만드는, 뭔가 모자란 구석 같은 거. 


내 이야기와 노래에 함께 마음을 맞춰 준 분들은 함께한 시간을 푸근하고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어.


내 책도 그렇고, ‘강연’이라는 조금 겁나는 자리에 서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어. 내가 지식이든, 정보든 전달할 수 있는 깜냥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 


다만, 서른 해 넘게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산골짜기에서, 작은 텃밭에서 느낀 작은 행복들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몫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용기 내서 책도 냈고 이렇게 강연도 다니는 거거든. 


이날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내 이야기와 노래에 함께 마음을 맞춰 준 분들은 그런 내 마음을 미리 알고 오신 것처럼 참말로 함께한 시간을 푸근하고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어. 강연하는 가운데 한 분이 “그 행복에 충분히 전염됐어요!” 하고 큰 소리로 외칠 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기만 했어. 


어느 아저씨는 무려 내 책을 사서 미리 읽고, 사인까지 받겠다고 하셨지 뭐야. 정말 고맙고 기뻤어!

강연 시작 전부터 일찌감치 찾아오셔서 안 그래도 마음이 많이 갔던 어느 아저씨는 무려 내 책을 사서 미리 읽고, 사인까지 받겠다고 하셨지 뭐야. 정말 예상치 못한 짜릿한 고마움이 마음에서 마구 흘러넘치던 순간이었어.


더구나 어머니뻘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는 내 손 꼭 잡고 이런 말씀도 건네셨어. 


자기는 시골에 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그래도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오늘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먼 길 떠난 산골 혜원, 정말 행복도 복도 잔뜩 터진 날이었어. 그 마음 그대로 안고, 어느덧 낯익은 곳처럼 다가오는 도서관, 그 가까이 있는 조그만 숙소에서 푸근하게 잠을 청했지. 


다음 날도 나는 길 위에 있었어. 충청북도에 있는 또 다른 도서관에서도 강연을 하기로 했는데 잡힌 시간이 저녁때여서 시간이 넉넉했지. 느긋이 이곳저곳 둘러보고, 밥도 먹고, 그러다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잠시 머물렀어. 고맙게도 길가에 작은 정자가 있더라고. 강연 준비도 할 겸, 기타 들고 노래를 불렀어.


노란 은행잎들을 바라보며, 이 가을을 한껏 느끼며 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참 은은하게 좋았어.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이 가을에 꼭 어울리는 노래, 내가 그간 해온 강연에서 불러왔던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나지막이 불렀어. 노란 은행잎들을 바라보며, 이 가을을 한껏 느끼며 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시간이 참 은은하게 좋았어. 등 뒤로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 소리마저 배경음악처럼 다가왔지.


그렇게 강연에서 부를 노래도 연습하고, 이야기할 내용들 곱씹으면서 한참을 길 위에서 보냈어. 그러고 있자니 ‘길 위의 인문학’이랑 이런 내 모습이 왠지 막 어울리는 것만 같아. ‘길 위의 인문학’ 강연을 준비하는 ‘길 위의 산골 강사’, 이렇게 말이지. 


내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길 위의 인문학’이 안겨준 귀한 선물이야.


전날보다 훨씬 편안해진 마음 안고 두 번째 도서관 강연도 즐겁게 치렀어. 내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길 위의 인문학’이 안겨준 귀한 선물이었어.


늦은 밤 다시 산골로 돌아오는 길. 내 안에 차곡차곡 새겨져 있는, 길 위에서 보낸 시간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새록새록 고맙게 느껴지면서, 몸은 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하게 차올랐어.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길 위의 인문학’ 강연에서 마음을 다해 부른 노래를, 작은 산골짜기에서 다시금 떠올려 보는 이 시간. 


조용히 눈 감으며 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어느 아저씨 얼굴이, 따스하게 나를 바라보던 어느 아주머니 모습도 애틋하게 떠올라. 그리고 또…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몰랐을 산골 혜원을, 오로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란 책 하나를 징검다리 삼아 용기 있게(?) 먼 곳까지 불러준 도서관 선생님들의 다정한 마음도.         


길 위에서 부른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래, 모두 그이들 덕분이야. 걱정과 설렘 한가득 안고 전라북도에서 충청북도까지 길 떠난 산골 강사가 생전 처음 만난 낯선 이들 앞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날 것 같은 당신들을 그리며, 이 노래를 다시금 불러 보고 있어. 시월의 마지막 날을 앞둔, 마음도 바람도 애잔하게 시릿한 이 가을밤에.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길 위에서 만난 어느 작은 정자. 산골강사가 기타와 함께 몸도 마음도 편히 쉬어갈 수 있던 그곳이 사뭇 그리운 밤이야.


작가의 이전글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그 여인은 양파를 심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