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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27. 2018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그 여인은 양파를 심네~♬”

‘조금 늦어도 괜찮아, 괜찮아…’

가을비 아스라이 내리던 날, 양파를 심었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으니, 어제쯤 심었으면 딱 좋았을 것을. 어제 그제 치러야 할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도저히 자연의 시간에 맞출 수가 없었다. 


양파 모종 사러 장으로 나가는 길. 어느 밭엔 양파가 가득 심어져 있고, 또 어느 밭엔 양파 심을 모양이 분명한 구멍 숭숭 뚫린 비닐 밭이 보이고, 다른 밭에선 비옷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양파 모종을 심고 있었다.


내리는 비에 맞춰 양파 가득 심은 어느 농부님네 밭. 양파도 농부님도 오늘 참 행복할 게야.


양파 이파리가 하늘거리는 어느 밭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심고 나서 물 흠뻑 먹어야 하는 양파들이 하늘하늘 내리는 비를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양파 심느라 애썼을 어느 농부님들이 이 비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얼굴도 떠오르고. 양파 심고자 비닐만 씌운 어느 밭을 지나칠 땐 내 맴이 다 안타깝다. 저 밭 꾸리는 농부님, 이 비에 맞춰 양파를 심지 못해 얼마나 애달플까….


자주 가던 가게에 가서 양파 모종 300개쯤 사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땅에 심었다. 비옷까지 입고 밭에 서다니, 나에게 참 오랜만에 벌어진 일.


비까지 맞으며 일해야 하나, 첨엔 좀 투덜대기도 했지. 그렇지만, 이 비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우리 집 텃밭지기님 마음을 내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으리오. 


이 비를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양파 모종 사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양파 심기에 나선 우리 집 텃밭지기님.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양파를 심네에~♬”


세찬 비가 아니어서 비 맞으며 일하는 기분이 은근히 시원하고 좋다. 땅이 촉촉해서 심기도 수월하고. 삼백 개 좀 넘는 양파 모종, 땅으로 보내는 시간은 한 시간도 채 안 걸린다.


더 심을 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지만 애써 그 마음 내려놓는다. 저만치라도 고이 자라기 얼마나 어려운지, 올해 양파 농사 완전 망하는 경험 속에, 아니 수년 동안 양파농사 지으면서 톡톡히 배웠으니까.


고작 한 시간 밭일했다고 막걸리 몇 잔 참 잘도 들어간다. 하긴, 이렇게 촉촉한 가을비 만난 날, 밭일 아녀도 술 한잔 그냥 지나칠 수 없었겠지.


“양파를 심는, 보랏빛 레인코트에 빗속의 여인~~♬”


비와 어울리는 노래도 막 생각나.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노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오랜만에 노동 비슷하게 했으니, 노동요에 걸맞게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도 스을쩍~


“보랏빛 레인코트에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양파를 심네에~~♬”

조금 늦게 심은 양파야, 하늘이 주시는 이 비 머금고 부디 잘 자라다오.


일기예보에서는 저녁때쯤이면 비가 그친다고 나왔건만, 늦은 밤 이 시간에도 비가 추적추적 살갑게 내린다. 

양파 늦게 심어 조금은 걱정 어린 어설픈 텃밭 농부의 마음을 가을밤 내리는 촉촉한 비가 촉촉하고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오늘 심은 양파 모종(왼쪽)과 오늘 겨우내 먹으려고 산 양파(오른쪽). 저 가느다란 줄기가 둥글고 실한 양파가 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자연의 선물이 아닐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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