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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23. 2018

무생채, 뭇국, 무볶음까지
‘가을무’ 맛이 끝내줘요!

“가을 무시 보약인께 많이 무라~^^”

때 이른 가을 무시가 연달아 생겼어요. 얼마 전 저 아랫집 아주머니가 늘씬하게 고운 어린 무를 주셨답니다. 하루는 두 덩이, 그다음 날에는 세 덩이를 포옥 안겨주시면서 그러세요.


“무생채 해 먹어요. 아직 덜 자라서 여리고, 하나도 안 매워서 맛있어.”


때 이른 가을 무시가 연달아 생겼어요.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가 어린 무 여러 덩이를 덥석덥석 안겨주시네요.


그 말씀받자와 손 빠른 옆지기가 곧바로 채칼 들어 무를 착착 치더니 고춧가루, 새우젓, 식초, 매실액, 마늘 다진 거 고루 섞어 빨갛게 맛깔난 무생채를 만들더이다.


한 입 먹어 보니, 맛이 끝내줘요! 새콤 달콤 아삭한 맛이 누가 먼저랄 거 없이 한데 섞여 입안으로 쑤욱 밀려 들어옵니다. 무생채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네요. 맨 입에도 자꾸만 집어먹게 되니, 다른 반찬은(김치에 멸치볶음 정도뿐이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새콤 달콤 아삭한 맛이 한데 섞여 입안으로 쑤욱 밀려 들어옵니다. 무생채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네요.


그렇게 이웃집 아주머니가 두 번에 걸쳐 주신 늘씬 무 다섯 개로 무생채 만들어 맛나게 먹고 있는 중에 어제는 바로 아랫집 할머니가 무 다섯 덩이나 쑤욱 들이밀고 가세요. 반찬으로 드시라고 전 한 접시 가져다 드렸더니 괜스레 미안시러워 하시더니만, 바로 밭으로 가서 뽑아다 주신 거죠.


우리 반찬 하는 김에 좀 넉넉해서, 앞서 무시 안겨주신 아주머니께 드리러 가는 길에 바로 그 윗집이니까 함께 드린 것뿐인데. 하여튼 시골선 뭘 하나 드려도 꼭 이렇게 바로 농산물 답례품(?)을 주시는 바람에 뭘 드릴 때도 은근히 마음이 쓰여요. 그냥 받으셔도 되는데 말이죠. 


그래도, 서로 주고받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양도 많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다 싶은 반찬이나 간식거리가 생길 때는 가까운 이웃 분들이랑(주로 어르신들이죠) 되도록 나누어 먹으려고 해요. 


그렇게 다시 또 생긴 무 다섯 놈, 싱싱할 때 뭐라도 해 먹어야죠. 생채는 만들어 둔 게 있고…. 


아, 뭇국이 있네요! 

뭇국 한 숟갈 떠 넣는데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이 입을 타고 위로 넘어가더니 더부룩한 속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안 그래도 아침부터 속이 좀 거북하더라고요. 화장실도 다녀왔고, 먹은 것도 커피 말곤 없건만 헛 트림만 자꾸 나오는 게 어제 쪼끔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마음에 얹혔나 봐요. 뜨끈 시원한 뭇국을 먹으면 왠지 이 더부룩한 속도 풀릴 것만 같아요. 멸치 국물 낸 게 있으니 무만 가늘게 썰어 퐁당 빠뜨리면 되지요.


뭇국만 하면 쪼매 아쉬우니 바로 무 볶음도 같이 했죠. 요것도 마늘 다진 거랑 들기름, 소금만 넣고 들들 볶으면 끝이죠. 


 다른 반찬 거들떠볼 필요 없이 요 무시 반찬 세 가지만으로도 가을 밥상이 행복하게 마무리됐어요


자~, 빨간 무생채, 하얀 무 볶음, 말간 뭇국까지 가을 무시 삼 종 반찬이 준비됐습니다. 


뭇국 한 숟갈 딱 떠 넣는데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이 입을 타고 위로 넘어가더니 더부룩한 속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덩달아 시원하게 ‘꺽’ 소리도 터져 나와요. 요건 아침에 더부룩하게 나오던 트림과 달리 시원하게 흘러나오는 소리였죠. 


아마 기분만은 아닐 거예요. 왜, 무에는 소화를 돕는 영양소가 들어 있다고들 하잖아요. 하물며 밭에서 갓 캔 싱싱한 가을무니 그 영양소가 더욱 신선하게 살아 있을 거 아니에요.


뭇국 몇 숟가락에 속이 좀 풀렸으니 무 볶음도 맛을 봐야죠. 어마나? 부들부들한 무가 입에서 그냥 녹네요. 씹을 틈이 없이 그냥 넘어가요. 들기름 맛이랑 어우러진 가을 무시가 입도 마음도 고소하게 보듬어 주는 듯합니다.


들기름 맛이랑 어우러진 가을 무시 볶음이, 입도 마음도 고소하게 보듬어 주는 듯합니다.


가을 무시 보약인께 많이 무라~^^

우리 부부 서로 아재 덕담 주고받으며 다른 반찬 거들떠볼 필요 없이 요 무시 반찬 세 가지만으로도 가을 밥상이 행복하게 마무리됐어요. 이제 남은 무시 두 개로는 무 부침개를 해 먹을 거예요. 하, 요건 또 얼마나 야들하고도 고소하게 맛날지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네요. 


남은 무시 두 개로 무 부침개를 해 먹을 거예요. 요건 또 얼마나 야들하고도 고소하게 맛날지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네요.


이웃집 무시로 시원하고 고소해진 마음 안고 우리 텃밭에 자라는 무시들 잘 있나 가보았죠.


에구머니나! 얼핏 설핏 볼 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무청은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무밭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쑥쑥. 무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예요. 그나마 무청이 조금 더 커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무시랑 풀이랑 가려내기도 참말로 힘들 뻔했어요.


우리 집 무시 밭을 가 보니! 무청은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무밭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쑥쑥. 무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예요.


다른 땐 풀 가득한 무시 밭을 봐도 심드렁한 데다가 태평하기까지 했는데, 무시 반찬 잘 먹고 난 뒤라 그런지 자꾸 마음이 쓰이네요. 장갑 낀 손으로 무시들 곁을 에워싼 이 풀 저 풀 마구 뽑아주었어요. 안 그래도 영양분이 모자란 땅인데 요 풀들이랑 함께 자라고 있자니 아무래도 힘이 많이 들었겠다 싶어요.


아니나 다를까, 풀인 줄 알고 뭉텅뭉텅 뽑아낸 것들 가운데 작은 무시도 달랑달랑 따라 나오네요. 어찌나 작은지, 총각무보다 더 조그마해요. 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조금 그늘진 데 있어서 아마 마음껏 자라지 못한 것 같아요. 아, 물론요! 총각무보다 큰 무시들도 군데군데 보인답니다. 


네 골뿐인 무밭, 몇십 분 손으로 잡초 뽑아내니 그럭저럭 무청도, 무시들 속살도 조금씩 모습이 드러나네요.


네 골뿐인 무밭, 몇십 분 손으로 잡초 뽑아내니 무청도, 무시들 하얗게 고운 속살도 그럭저럭 모습이 드러나네요. 이 정도면 됐다 싶어요. 무와 풀만 가려낼 수 있으면요. 어차피 커다란 무시 나오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적당히 풀들이랑 섞여 지내면 어떡하든 살아남으려고 무시가 더 단단하고 옹골차게 자라지 않을까, 하는 게으른 텃밭 농부 다운 생각까지 더해서요. 


텃밭에서 자라는 가을 '무시.' 산골에 오니 백이면 백 마을 분들 모두 ‘무’가 아니라 ‘무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무시’라는 말. 


서울에선 거의 들어보지 못했어요. 산골에 오니 백이면 백 마을 분들 모두 ‘무’가 아니라 ‘무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 저도 ‘무시’라는 말이 어느샌가 입에 붙었어요. 


그래서 가을만 오면, 가을 무시 맛볼 때만 되면 이 노래가 어김없이 생각나요. 나훈아 아저씨의 ‘무시로.’ 역시나 나훈아가 부르던 ‘갈무리’랑 왠지 헷갈리던 이 노래를 옛날에, 옛날에, 노래방만 가면 많이 부르곤 했어요. '갈무리'도 마찬가지였고요. 노래방 오지게 좋아하는 제가 산골에 살다 보니 그곳에 갈 기회가 영판 없어서는 참 아쉽기만 하답니다. (5년 넘게 세 번쯤 갔으려나요?) 


노래방에서 불러야 제격인 노랜데, 가을 무시 반찬 푸짐하게 먹은 기념으로 ‘무시로’ 1절부터 2절까지 죽 한번 불러봤네요.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가을 무시 반찬 행복하게 먹은 기념으로 노래 한 자락, “무시로, 무시로오 노래방 그리울 때 그때 불러요오~~♪♬”


아, 이 처연한 노래를 맨숭맨숭 투박하고 어설픈 기타 반주로 부르자니 참말 아쉽구먼요. 반짝반짝 조명과 마이크가 있는, 내 사랑 노래방에 가고만 싶은 시월의 어느 가을밤. 살짝궁 노랫말 바꿔 부르기로 마무리해 보렵니다. 


“무시로, 무시로오, 노래방 그리울 때 그때 불러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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