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Jan 30. 2019

30만 원짜리 김치와 3,200원짜리 김치통

일본으로 간 산골혜원 김장김치 ‘제발, 이번만 잘 가주렴’

김치, 깍두기, 청국장, 된장까지. 철로 만든 작은 통에 차곡차곡 담아 일본으로 보낸다. 


김치를 15킬로그램 안팎으로 담으면 딱 들어맞는 이 통. 오로지 일본에 사는 막내 여동생한테 김치를 보내기 위해 샀고, 어느덧 6년째 쓰고 있다. 그러니까 산골과 일본을 오가면서 산골짜기 혜원이의 귀촌살이랑 똑같은 시간을 흘러온, 나름 역사가 있는 통 되시겠다.     


너무 낡고 찌그러져서, 혹시 터지기라도 할까 봐 더 담고 싶은 마음 꾹꾹 누르며, 참으며 빈 공간 조금은 생기게끔 채워서 우체국으로 가는 길.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이리저리 덜컹대는 통 꼭 붙잡으며 ‘제발, 이번만 일본까지 잘 가주렴’ 하며 바라고 또 바랬더랬지.


깍두기도 먹고 싶다는 동생. 된장, 청국장도 보내달라는 동생. 아, 배추김치를 더 넣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러야 했나니.
낡고 낡은 김치 통 차에 싣고 우체국으로 가면서, 진짜 바라고 또 바랐지. 제발, 부디, 이번만 일본으로 잘 가다오.


우체국 일꾼이 테이프 덕지덕지 붙고 이 귀퉁이 저 모서리 구겨진 통을 보더니만 넌지시 한마디 건넨다. 


“오래 쓰셨나 봐요. 이 통 얼마 안 하는데.”


“네, 오래 썼어요. 벌써 6년째. 이거 나름 장수에 있는 우체국에서 산 거예요. 그때 얼마 주고 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요.”


“지금 3,200원이에요. 그리고 이거 우체국 이익으로 하나도 안 남아요.”


“3,200원이요? 어, 싸네요. 처음 살 땐 이거보다 더 준 것도 같은데…. 그럼 이번만 이걸로 보내고 다음엔 새 걸로 살까 봐요. 저, 혹시 모르니까 테이프 더 꽝꽝 감아 주세요. 모서리 부분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밑에까지 좍 둘러 주시고요.”


김치값에 견주면야, 하물며 바다 건너가는 건데, 저 정도 택배값은 아무것도 아니지, 암만!^^


간단한 수다가 오가는 가운데 어느새 포장이 다 된 통. 집에서 가지고 나올 때보다 한결 깔끔해져서 기분이 좋다. 왠지 한 번쯤 더 써도 될 것만 같네. 포장 마치고, 주소를 적고 나니 여지없이 다가오는 익숙한 질문.


“이 김치 얼마로 적을까요?”


배송에 탈이 날 경우 배상을 위해 적는다는 값.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땐 ‘얼마로 해야지?’ 고민 꽤 하기도 했는데 하도 여러 번 보내다 보니 이젠 너끈하게 대답한다.  


“30만 원이요.”


과장도 아니고 마냥 추측도 아니고, 나름 ‘객관성’을 바탕으로 가늠한 값일지니. 어쩌다 시장에 가서 조금 괜찮다 싶은 김치 값을 눈여겨보면서 알았지. 배추나 고춧가루가 중국산이 아닐 때 김치 값이 생각보다 꽤 많이 비싸다는 걸.  


그렇다면 유기농 배추와 온갖 채소들, 그리고 태양초에 이르기까지…. (직접 기른 농산물은 아닐지라도) ‘엄청 자연식’에 가까운 산골혜원네 김장김치. 15킬로그램 정도면 30만 원은 너끈하다고 혼자 믿으며, 일본으로 김치 부칠 때면 크게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저 값을 이야기하곤 했다. 믿거나 말거나. 


‘늘 늘 고마우~ 김치값 아니고 택배비~’

일본으로 김치를 보내던 날, 은행에 가서 참 오랜만에 ‘입금’이란 걸 했다. 지난해 11월, 친정엄마 기일 맞춰 한국에 건너온 막내 여동생은 나에게 봉투를 두 개나 안겨주었다. 김치값 따로, 택배값 따로 담긴. 많이 못 넣어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전에도 김치 덕분에 몇 번이나 봉투를 받았던지라 그냥 별생각 없이 받아 들었다가 나중에야 열어 보고는 두둑한 액수에 그만 깜짝 놀랐더랬다. 


지난해 말 친정엄마 기일에 맞춰 한국에 온 동생이 안겨준 봉투 두 개. 김치 보낼 곳이 있어서, 기쁘게 받아주는 네가 있어서 내가 더, 늘, 고맙다!


‘아니, 얘가 왜 이런다냐. 이번 김장 힘들었다고, 돈 많이 들었다고 하소연 쫌 했더니만 괜히 말했나? 그래도 그렇지. 언니 노릇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김장이라서, 김치 보내는 거라서 하는 것뿐인데, 내가 못살아.ㅜㅜ’


김치값에 택배값까지 봉투에 잔뜩 담아 준 막내 여동생한테 카톡을 보냈다. 


“슬슬 김치 떨어질 때가 된 거 같은데, 김치 다 먹었어?” 


아직 남았단다. 이번 겨울에 좀 힘들고 우울해서, 입맛마저 떨어져 전보다 덜 먹었다나. 그리고 김치 싸는 거 힘든데 보내달라고 말하기 미안했다나. 대뜸 걱정부터 밀려온다. 김치 가져간 지 한 달도 훌쩍 넘었는데, 김치만 있으면 사족을 못 쓰는 동생인데, 그게 아직 남았을 정도면 대체 맘이 얼마나 힘들기에…. 


일본 사람과 혼인하고, 낯설고 낯선 땅에서 살아가기로 한 것.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너 알아서 행복을 찾아가라고, 우울 같은 거 저리 집어던지라고 잔소리쯤 해 보고도 싶지만, 언니 맘이 어디 그리 되나. 가까이 있으면, 당장 오라고 해서 김치찌개부터 동생이 좋아하는 쑥버무리부터 이것저것 해 먹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하나, 이 산골에선 너무나 머나먼 일본.  


“지금 김치 맛있게 잘 익었어. 바로 보낼 테니까 남은 거 얼른얼른 먹어.”


다그치듯 이야기하고는 속으로 혼잣말. 


‘김치도, 네가 보낸 돈도 넉넉하니까 그리고 김치 보내는 거 이젠 인이 박혀서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언제든지 이야기만 하라고! 내가 김장을 백 포기나 왜 하는데, 너 때문에 하는 건데!!’ 


육 남매 가운데 막내. 나랑 세 살 터울밖에 안 되는데도 마음이 많이 쓰인다. 멀리 살아서도 그렇겠지만, 왠지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도 막내딸 걱정이 젤 많을 것만 같아서, 다른 건 해줄 수 없지만 김치라도 마음껏 나누면 엄마 아빠 걱정도 덜어드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   


깍두기도 먹고 싶다는 동생. 된장, 청국장도 보내달라는 동생. 아, 배추김치를 더 넣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러야 했나니.


내 속마음이 들렸던 걸까, 냉큼 돌아오는 이야기.


“그래도 맛있게 익었다는 김치 맛볼 생각에 조금은 설렌다. ㅎㅎ. 혹시 된장이나 청국장 뭐든 간에 여유 있으면 쪼매 덜어서 같이 보내주면 ‘무진장’ 고마울 거여. 그리고 기억하겠지만 김치 너무 많이 넣진 마. 통 또 찌그러질라. 찌그러지기만 함 상관없지만 구멍 날까 걱정돼서. 적당히 넣고, 13킬로 정도? 김치 싸는 거 고생인 거 아는데 매번 미안코 고마운 마음 전함다.”


아, 다행이다. 타향살이에 맘도 몸도 붙박지 못하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는 막내 여동생. 김치 하나에라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내 허리가 빠개지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김장을 하고, 김치를 보내고야 말리라!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동생 마음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돈 봉투를 보고 또 본다. 그리고 결심!


‘그동안은 동생이 준 돈을 슬금슬금 생활비로 꺼내 쓰면서 어느샌가 금세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애틋한 동생 마음 오래오래 간직할 겸 통장에 돈을 넣자!’


일본에 갓 도착한 쭈글쭈글 김치 통. 받자마자 김치만으로 한상 차려 먹는다고 사진 보내온 막내 여동생. 깍두기도 김치도 맛이 있었을라나.


참 오랜만에 두둑해진 통장만큼 두툼해진 마음 안고, 일본으로 김치가 잘 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보낸 하루하루. 


드디어 일본에 김치가 왔단다. 받자마자 냉큼, 김치만으로 한상 차린 사진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된장, 청국장에선 참기름처럼 고소한 냄새가 난다나. 아, 이제야 한숨 놓는다. 바다 건너 잘 가준 김치 통아, 고맙다. 이젠 마음 졸이지 않게끔 정말 새 통을 사야만 할 것 같아. 


한데, 어쩌지? 저 허름한 통이 산골 집에 아직 두 개나 더 있는걸. 그것까지 한 번씩 마저 보내고 나면, 꽉꽉 눌러 담아도 마음 졸이지 않게 그땐 정말 새 통을 마련해야지. 30만 원짜리 김치를 보내는데 3,200원짜리 통을 아껴서야 어디 말이 되겠는가 말이다. 그치? 사랑하는 막내 여동생 혜영아!         

  

일본으로 김치를 보낼 때면 늘 고민이고 안타깝다. 더 꾹꾹 담고만 싶어서,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청국장, 된장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그 고민이 더 컸다는 말씀.


작가의 이전글 ‘여자한테 좋다는’ 늙은호박 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