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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10. 2019

평화로운 산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선생님을 그리며 글을 쓴다 

잠들기 전, 마음에 슬며시 헛헛함이 찾아올 때에 야금야금 찔끔찔끔 열어보던 책.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다 보면 어느새 빈 마음도, 엉킨 마음도 따뜻하게 채워 주고 풀어 주던 책. 소로소로 맑아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때마다 ‘부디, 이 글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라게 만든 책.


권정생 선생님이 남긴 보석처럼 맑고 영롱한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어쩔 수 없이 다 읽었네. 시릿하게 차오르는 마음. 아, 권정생 선생님이 그립다. 그 삶을 먼지만큼이라도 닮고 싶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책 안에 흐른다. 어떤 글은 ‘이기적’인 내 마음 들키기라도 한 듯 호된 꾸지람으로 다가오고. 또 어느 글은 산골살이에 허둥대는 어설픈 산골새댁 마음을 살포시 보듬는다.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다. 


‘농사도, 살림도 비록 많이 모자라지만 산골에 잘 왔노라, 그러니 힘내시라….’


‘부디, 이 글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라게 만든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보며  산골살이에 위로와 힘을 받는다.


 그토록 꿈꾸던 자급자족 소농에는 털끝만치도 미치지 못하는 삶. 밭머리에 앉는 때보다 책상머리에 붙어 살림에 ‘실제로’ 보탬이 되는 일감 부여잡고 컴퓨터 화면에 코 박는 나날이 더 많은, 그래서 가끔 또는 자주 ‘이렇게 살아도 되나’ 자괴감에 젖어들기도 하는 산골살이. 세상에 나온 지 20년도 넘은, 오래된 책을 뒤늦게 읽고 새기며 위로를 받는다. 힘을 얻는다. 


고귀한 농민처럼 살진 못할지라도 그네들과 더불어 살며 반찬거리 몇 가지나마 내 손으로 기르고 거두어 밥상에 올리는 것. 음식물 쓰레기라도 만들지 않으며 살아가는 시간. 빈 구석이 넘쳐나기에 채울 곳도 많아진 어설픈 산골살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아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상머리 일도, 밭머리 일도 나에겐 모두 소중하기만 하니까.   


책을 덮고 나니 날마다 보고 만나는 앞집 할매, 아랫집 아줌니 저 건넛집 아저씨까지. 농한기인 추운 겨울에도 땔감 마련하랴 땅 갈아엎으랴 또 무슨 일인가를 하느라 바삐 몸 놀리는 그분들이 높아만 보인다. 고귀한 몸짓으로 다가온다. 그전에는 ‘하이고, 이 추운 날 뭐 할 일이 있다고 계속 움직인다냐. 좀 쉬시지!’ 하면서 애먼 농민네들한테 애먼 소리나 중얼거렸건만.  


그래, 권정생 선생님 삶을 좇기는 쉽잖아도 가까이 있는 농민들 사는 모습은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볼 수 있지 않을까? 철 따라 세월 따라 허리 굽히고 땀 흘리며 땅과 더불어 살아온 그네들. 자식들과 또 많은 이들을 농사로 먹여 살린 고귀한 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음이 새삼 고맙고 또 뿌듯하다.  


푸르스름한 이파리들이 힘겨운 듯 애써 해바라기 하던  마늘(왼쪽)과 양파(오른쪽).
마늘과 양파가 자라는 겨울. 책상머리에 오래오래 붙어 있어도 땅과 하늘 그리고 마을 분들한테 덜 미안할 수 있는 이 겨울이 고맙다.


겨울 같지 않게 따스한 햇볕 내리쬐던 한낮. 텃밭에서 본 양파밭, 마늘밭을 떠올린다. 푸르스름한 이파리들이 힘겨운 듯 애써 해바라기 하던 모습. 시린 겨울도 꿋꿋이 견디며 땅속에서 열심히 뿌리내리고 있겠지. 하나하나 심고 왕겨 덮어 준 뒤로 딱히 해 주는 일 없지만 저 알아서 자라 주는 마늘과 양파가 고맙다. 책상머리에 오래오래 붙어 있어도 땅과 하늘 그리고 마을 분들한테 덜 미안할 수 있는 이 겨울도 고맙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과 이야기가 마음 구석구석 포근하게 감싸 주는 밤. ‘먹고살기’ 위해 컴퓨터 자판 열심히 두드리던 손가락을 내리고, 산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나를 일깨우고 보듬으며 마음 한가득 살찌게 해 준 글귀부터 한 글자, 또 한 글자 적는다. 손가락 타고 마음 깊숙이 스미는 그 이야기들을. 


권정생 선생님의 삶과 이야기가 마음 구석구석 포근하게 감싸 주는 밤. 산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농민들이 순박하고 인심이 좋은 것은 머리를 쓰는 일보다 몸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맑고 푸른 자연 속에서 곡식을 가꾸며 살아가는 것은 비록 땀 흘리는 힘든 일이지만 충분히 보상되기 때문이다. 농촌은 그래야 된다. 농사일 외에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낮에는 들에서 일하고 밤에는 식구들과 오순도순 얘기 나누다 편히 잠들 수 있는 평화로운 농촌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바람이며 행복이다. 그 어떤 교육도 종교도 이 이상의 삶을 보장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들판에 뛰어다니는 짐승들은 쌓아놓기 위한 제물엔 탐을 내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건은 우리 인간과 다르지 않지만 그들 짐승들은 훨씬 솔직하다. 그들은 숨길 줄 모른다. 쌓아두지도 않고, 모함도 음모도 전쟁무기도 만들지 않는다. 자연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도 없다.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 희생을 시키지 쓸데없이 살생을 않는다.”


“산과 들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때, 우리들의 모습도 아름답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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