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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15. 2019

‘반려 막걸리’랑 행복한 동거 중

사랑하는 벗님 ‘술’이 술술 익어 가는 산골짜기에서

산골살림 하면서 꼭 하고 싶었음에도 그토록 미루고 미루던 일을 드디어 해냈다. 바로, 내 손으로 술 빚는 일.


귀찮아서만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그랬듯이 산골에서도 자주 술과 동무하는 우리 부부. 직접 빚어서야 어디 그 양을 감당하며, 재료값은 또 어찌 채워 갈 것인가. 특히,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사서 먹으면 그 값이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싸고도 싼 것을. 


누룩과 효모를 먼저 발효되도록 잘 섞어 놓은 다음, 고슬고슬 지어낸 고두밥에 맑은 지하수까지 더해 큰 유리병에 담는다.


역시 시간이 약이었던가. 산골살이 제 아무리 좋고 좋아도 몸 여기저기 나이 먹어 간다고 보내는 신호마저 사라지는 건 아닐지니. 술 한 잔, 두 잔 이어질수록 예전 같지 않은 내 몸을 느낀다. 회식, 미팅 없는 서울살이보다야 훨씬 적게 술을 몸에 들이는데도 그렇다.  


살면서 크게 바라는 건 없는데, 평생 술과 행복하게 동무하며 지낼 수 있을 딱 그만큼의 건강만은 쫌 간절히 바라옵나니. 불혹 중반을 코앞에 둔 어느 날 큰 결심 하나 했다. 


“사랑하고 애정 하는 벗 ‘술님’과 언제까지나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몸에 좋은 술 직접 빚자. 귀하게 만들어서 지나치지 않게, 소중하게, 꾸준하게 먹어 보자!”  


그리하여 막걸리를 담갔다. 드디어, 정말이지 드디어! 


미리 발효될 수 있도록 먼저 누룩이랑 효모를 잘 섞은 다음, 고슬고슬 지어낸 고두밥에 맑은 지하수까지 더해 모두 다 큰 유리병에 넣는다. 이어서 긴소매 걷어붙이고 슬렁슬렁 손으로 젓고 또 젓는 순간, 손목에서 팔뚝까지 흘러내리는 부들부들한 그 감촉이라니! 언제까지나 손을 빼고 싶지 않을 만큼 흐뭇하고 기쁘고 행복하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시간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도 불끈불끈 일어난다. 


사랑하는 기타와 음반들 옆에 고이 모신 ‘반려 막걸리’랑 날마다 행복한 동거 중~.
뻥튀기한 듯 가볍게 부풀어 오른 밥알들이 유리병 밑에 두툼하게 깔렸다. 시원한 곳으로 고이 모셔야 할 때가 다가온 것.


술 만드는 길을 보여주고 또 전수해 준 빨간거북 언니가 사무치게 고맙다. 그동안 우리 집에 찾아올 때마다 듬뿍듬뿍 안겨 준 수제막걸리의 깊고 담백한 맛에 어느새 물든 산골새댁. 그 덕분에 술 빚을 욕망도 갖게 되었고, 결심에 이어 실천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내 삶에 처음 빚어 보는 막걸리, 다 한발 앞서 이 세계에 들어선 귀촌 동무이자 술 동무인 언니 덕이 크고 또 넓도다.   


언니랑 같이 막걸리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열심히 적어 둔 공책에서 알맹이만 다시금 되새겨 본다.   


하나, 누룩은 쌀의 십 퍼센트를 넣는다. 효모는 누룩 발효를 살짝 돕는 몫을 하므로 5그램 언저리로 조금만 넣는다.
두울, 20도 넘는 따뜻한 곳에서 일주일 안팎으로 발효 기간을 갖는다. 이때 막걸리 담긴 통 뚜껑을 살짝만 덮고 하루에 한두 번 저어 준다.  
세엣, 발효가 알맞게 되면 밥알들이 부풀면서 밑에 쫙 가라앉는다. 그때부터 시원한 곳에 2~3주 숙성 기간을 갖는다. 햇볕에 안 닿도록 수건으로 싸거나 상자에 담는다.  


술 빚는 비법 전수해 준 언니가 떠난 뒤로 날마다 막걸리가 든 큰 유리병을 들여다본다. 잠들기 전에 열어 보고, 눈뜨자마자 또 쳐다보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안고 뚜껑도 열어 본다. ‘뽀글뽀글 끼룩끼룩.’ 술 익는 모습과 소리가 눈을 지나 마음속으로 좍 스며든다. 입에 꼭 맞는 시원한 술 한잔이라도 마신 것처럼.   


날마다 막걸리가 든 큰 유리병을 들여다본다. 잠들기 전에 열어 보고, 눈뜨자마자 또 쳐다보고.
‘뽀글뽀글 끼룩끼룩.’ 술 익는 모습과 소리가 눈을 지나 마음속으로 좍 스며든다.


아, 행복해. 술 빚는 시간이 이토록 알콩달콩 재미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지.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시큼 들큼한 술 내음은 마음 구석구석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구나. 이건 그냥 술이라기보단 ‘반려 막걸리’라고 해야 딱 맞겠군! 


나무 주걱으로 막걸리 휘휘 저으며 마냥 흐뭇한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언니 말처럼 뻥튀기한 듯 가볍게 부풀어 오른 밥알들이 유리병 밑에 두툼하게 깔렸다. 시원한 곳으로 고이 모셔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로다. 아늑하게 그늘진 자리로 옮기고선 또다시 뚜껑 여닫기가 이어진다. 애틋하게 기다리는 어떤 ‘향기’를 그리면서…. 


빨간거북 언니가 그랬지. 술이 가장 맛있게 익었을 그때 바나나 향기를 닮은, 꽃 내음처럼 다가오는 향내가 피어오를 거라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잠시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술에서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를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인가! 


하루하루 숙성하고 있는 반려 막걸리. 누르스름하게 허연 때깔이 벌써부터 먹음직스럽네.


어제도 오늘도 틈만 나면 막걸리 병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본다. 누르스름하게 허연 때깔이 벌써부터 먹음직스럽네. 뚜껑을 여니 시큼하고 달콤한 내가 번갈아 콧속에 스민다. 누룩 내음도 슬쩍 실려 오는 듯하고. 바나나 향기랑 꽃 내음을 만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대신 말해 주는 듯하다. 반려 막걸리를 뒤로하고 나오면서 향긋한 상상을 시작해 본다. 


‘술이 다 익으면 사랑하는 벗님들과 향기로운 시간을, 그 맛을 함께 나누어야지. 과연 누가 귀하디 귀한 반려 막걸리의 주인공이 될까?’


막걸리가 술술 익어 가는 작은 산골짜기에서 그 시간을, 그리운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알딸딸한 행복이 온몸 가득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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