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이는 네온사인 없어도 좋아, 책과 함께라면!
괴산에 있다는 숲속작은책방. 나름 숲속(?)에 사는 나로서는 이름부터 왠지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곳. 책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먼저 알고 살펴본 이 책방이 무척이나 궁금하여, 괴산에 사는 선배 만나러 가는 길에 훌쩍 발걸음을 했다. 전라북도 어느 산골짜기에서 충청북도 어느 산골짜기에 이르는 데 세 시간도 넘게 걸리더구나.
책에서,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아담하고 다정하게 꾸린 책방 둘레를 엿보며 감탄, 또 감탄. 책방 안에 들어서니 우와~, 이건 정말 내가 꿈꾸던 그런 곳이 아니던가! 섰다가 앉았다가, 앉았다 섰다를 되풀이하면서 책방 안에 있는 모든 책꽂이를 눈으로 손으로 샅샅이 훑는다.
오로지 책 속에 쏙 파묻힌 이런 시간이 대체 얼마 만이던지, 감격스럽다ㅜㅜ 조용하고 아늑하고, 좁지만 넉넉한 이곳, 발도 엉덩이도 뜰 생각이 없구나.
어쩌다 서울 갈 때면, 어떡하든 서점 갈 참을 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죽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냥 책 속에서 서성이고 방황하며, 때로 내 마음 찰떡같이 알아주는 친구처럼 말을 거는 책을 만나는 그런 시간이 너무나 좋으니까, 애틋하게 그리우니까.
일박이일, 또는 이박삼일 서울살이를 위해 등허리에 짐 한가득 지고도, 오랜만에 만난 서울 공기에 허파가 힘들다, 갑갑하다 아우성치는데도 서점에서 마냥 죽치는 내가, 공기 좋고 분위기 따사로운 숲속작은책방에서, 더구나 무거운 짐까지 없으니 얼마나 오래오래 머물고만 싶던지. 그래도 다음 약속이 기다리고 있으니 애써 발걸음을 떼기는 했다. 마음에 쏙 드는 책 세 권을 기쁘게 품에 안고서. 한 권은 옆지기가 고르고, 두 권은 내가 짚은 것!
안 그래도 때마침 마음에 슬쩍 다가온 책이 있었다. <서점, 시작했습니다>랑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두 책과 마주친 순간, 느꼈다.
‘아, 이 책을 만나러 내가 여기에 온 것이로구나.’
집에 돌아와 새로 식구가 된 책들을 책상에 두고 날마다 야금야금 열어 본다. 바로 전까지 읽던 책은 미안하지만 슬쩍 옆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네.
“이 책이 서점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뭔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의 등을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서점, 시작했습니다>의 머리말을 보면서 괜스레 마음이 설렜는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설렘은 흐뭇함과 행복함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마디. ‘숲속작은책방에 가길 잘했네!’
“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을”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의 첫 글을 수놓은 저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아릿하게 두근거렸는데, 읽을수록 읽어 갈수록 시릿하게 아름다운 문장 속에 넘실대는 음식과 얽힌 삶에, 그 애잔한 이야기에 흠뻑 취해 버린다.
글쓴이가 먼저 남긴 <여자전>에서 본 느낌과 닮은 듯 다른,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이가, 영원한 자유를 찾아 이슬처럼 떠나버렸다는 김서령이 사무치게 그립더랬다. <혼불>을 보면서 최명희 작가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웠듯이.
그렇게 숲속작은책방에서 길어 올린 두 권의 책은, 일주일 가까이 ‘산골 밤의 책꽂이’를 아릿하고도 흐뭇하게 지키고 있다. 내 손길과 눈길이 닿기만을 기다리며.
한 장 두 장 아끼며 읽었음에도 내일쯤, 늦어도 모레쯤엔 다 읽을 것만 같은, 남은 쪽수 얼마 되지 않는 이 책을 이제 슬그머니 만나러 가야겠다. 책장을 넘기다 눈꺼풀 스르르 감기는, 내가 참 사랑하는 그 시간 속으로.
조금씩 사위어 가는 보름달이 넉넉히 비춰 주는 산골 토요일 밤. 번쩍이는 네온사인 없어도 나는 좋아, 책과 함께라면! (술 한잔 곁들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